아름다운재단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은 보호종료청년들이 안정적으로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학업유지 및 자기계발 기회를 제공합니다. 또한 자립준비를 위한 역량강화 및 지지체계가 만들어지는 데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 2024년에도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와 협력사업으로 50명의 장학생을 지원했습니다. 또한 6명의 장학생을 별도 선발해 캐나다 단기어학연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캐나다 단기어학연수에 참여해 두 달간 벤쿠버를 다녀온 장학생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
아마 누구나 한 번쯤 살면서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하루가 무진장 힘들었거나 부당한 일이 닥쳐왔을 때, 많고 많은 관계 속에서 서운함을 느낄 때, 나는 이렇게 힘든데 유튜브나 SNS에서 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행복해보일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왜 하필 많고 많은 나라 중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물론 누구나 해외에 나가면 느끼듯이 우리 나라만큼 좋은 나라가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늘 해외 영화를 보거나, 외국 향 머금은 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만약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피터였다면,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가브리엘이었다면 이렇게 살았을까?라는 아쉬운 생각들을 마음 한 켠에 묻어놓고 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와중,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지내고 있던 평범한 하루, 캐나다 단기어학연수에 갈 기회가 주어졌다는 전화 한 통이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어학원 수료증과 캐나다에서 사온 기념품들
어떻게 보면 캐나다는 내게 참 생소한 나라였다. 미국이면 미국이고 유럽이면 유럽이지, 내 머릿속 캐나다의 이미지는 그저 단풍잎이 그려진 빨간 국기 밖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캐나다는 생각보다 훨씬 매력적인 나라였다. 캐나다의 정체성은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울 만큼 상당히 다양한 문화들이 뒤섞여있는데, 내가 간 도시 밴쿠버만 하더라도, 한인, 중국인, 일본인, 인도인, 멕시코인 등 수많은 나라의 이민자들이 섞여있었고, 내가 본 진짜 캐나다인은 글쎄… 어학연수 선생님 두 명 정도가 전부인 것 같다. 마치 ‘홍철 없는 홍철 팀’ 같달까? 한 가지 재밌었던 것은, 제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모두가 각자만의 캐나다를 정의하고, 캐나다인이 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었다.
어학연수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들을 예로 들자면, 나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일본은 유독 남의 시선을 신경 쓰고, 사회가 정한 범위 내에서 크게 벗어나면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머리를 샛노랗게 탈색한 사람들이나, 작은 타투 하나만 가져도 크게 힐난하는 경향이 있단다. 그런 일본에서 온 친구들은 거의 모두가 캐나다에 와서 머리를 각자만의 독특한 색으로 염색을 하기도 하고, 한 친구는 짧게 삭발한 초록색 머리에 무늬까지 새기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피어싱은 또 어떤가. 이런 곳에도 피어싱을 할 수가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러 곳에 피어싱을 하더라. 그 모습을 보며 아, 일본인들은 캐나다를 ‘자유의 국가’로 정의 내렸나 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로키산맥 레이크 루이스에서 친구들과
남미 친구들은 전혀 달랐다. 캐나다에는 멕시코나 브라질과 같이 남미에서 온 사람들도 꽤 많았는데, 그 나라들은 캐나다보다 더 자유로운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어디선가 흥을 돋구는 노래가 나오면 다 같이 모여서 춤을 추기도 하고,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자기들의 문화를 알려주는 것을 좋아했다. 멕시코에서 온 사무엘이라는 친구는 그래픽 디자이너 일을 하다가 영어를 배우기 위해 캐나다에 왔는데, 30대가 훌쩍 넘는 아저씨였다. 그는 내게 해변에서 댄스 파티가 있다며 살사의 스텝을 속성으로 가르쳐주기도 하고, 아주 화려한 멕시코의 전통적인 페이스페인팅을 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놀다보니 어느 새 매일 어학원 일정이 끝나면 함께 놀러 다니는 소중한 친구가 됐다. 한국에서는 매일 놀러 다니는 30대 아저씨와 친구? 30대는 일하기 바쁠 나이일 뿐만 아니라, 20대는 어리다며 끼워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무엘을 비롯한 남미 친구들은 캐나다를 자기들만의 문화를 공유하는 ‘친목의 장’으로 삼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의 캐나다는 어떻게 정의되었을까? 캐나다에 있을 당시에는 몰랐었지만, 어학연수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누군가 내게 캐나다에서 가장 긴장됐던 순간을 물어본다면, 나는 홈스테이의 호스트인 ‘Romy’를 처음 만나는 순간을 꼽을 것 같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승무원에게 사이다 한 캔을 요청하기 힘들 정도로 영어 회화에 큰 자신감이 없었고, MBTI가 대문자 I인 사람이라 외국인은커녕 한국인과도 친해지기 힘든 성격이었다. 그런 내가 낯선 타국 땅에서, 일면식도 없는 외국인의 집에 거주하며, 영어로 소통하며 생활해야 하다니! 대한민국의 삼천만 I들이 기절할 법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던가. 캐나다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몇 가지 결심들을 세우게 되었다. 먼저 영어로 소통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그랜드캐년 여행 중 발견한 절경
그래서 캐나다에서는 어느 국적의 친구와도 영어로 대화하기, 매일 학원에서 배운 것들 공부하기, 영어로 생각하는 습관 가지기, 영어 자막으로 미드 보기 등 누구보다 독하게 영어를 쓰며 생활해보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영어로 대화하려는 노력을 하다 보니 내게는 점차 많은 외국인 친구들이 생겼는데, 나중에는 그 친구들이 연애상담을 해오기도 하고, 같이 맛집 투어를 하는 등 재미있는 일들이 점차 늘어갔다. 또, 학원이 끝나면 매일 친구들과 함께 해변에 가서 비치 발리볼과 수영을 즐기다 보니 가방에는 늘 슬리퍼가 준비돼있었다. 호스트였던 Romy와도 더욱 가까워졌는데, 한 번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서서 두 시간 동안이나 수다를 떨기도 했다.

윈도우 바탕화면으로 유명한 앤텔롭캐년의 별밤
이런 경험들이 쌓여서였을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친구의 생일파티 기념으로 모인 식사자리에서 누군가 내 MBTI를 물어왔을 때, 당연하게 ‘INFJ’라고 말하려다 캐나다에서의 나는 조금 달라지지 않았나 싶어 다시 한 번 검사를 해보니, ‘ENTP’로 완전히 바뀐 것을 알았을 때의 순간이다. 그래서 나는 캐나다를 ‘나’라는 사람을 발견하게 된 한 챕터라고 정의내리고 싶다. 여러 문화의 친구들과 영어로 생활하며 이런 삶도 있구나를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내가 진짜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무엇인지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내 인생을 소설로 쓴다면 이번 캐나다 어학연수는 클라이막스로 가기 위한 전 챕터가 될 것 같다고 느끼게 되었다.
어학원에서 누군가가 언젠가 알려준 설인데, 캐나다 국기의 단풍잎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가 잎의 몸통에서 하나로 모이는 것은 여러 문화권의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캐나다를 정의하기에 훌륭한 설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짧은 글에 담기 어려운 캐나다의 두 달이 여차저차 끝나고, 고맙게도 여러 친구들이 배웅을 해주었는데, 기분 탓이었을까? 그 때 바라본 친구들의 흔드는 손이 마치 펄럭이는 여러 개의 캐나다 국기와 겹쳐 보였다.

어학원 친구들의 메세지가 빼곡히 담긴 캐나다 국기
사진: 이현경,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 장학생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