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허진이 캠페이너는 지난 2019년 방영된 KBS ‘거리의 만찬’ 프로그램을 인연으로 지난 5년간 열여덟 어른 캠페이너로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허진이 답게’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들, 그리고 또 다른 후배들을 위해 정책, 제도에 대해서도 솔직하고 당당하게 이야기 해왔는데요. 그동안 많은 기부자님들께서 진이님의 이야기를 통해 열여덟 어른들을 응원해주시고, 함께 지켜봐주셨어요. 최근 허진이 캠페이너가 에세이를 출간하여 따끈따끈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허진이의 이야기를 마음껏 쓴 작가가 되었습니다

Q. 자립준비청년, 열여덟 어른, 소이 엄마, 아내 등 수식어가 많은데 책을 쓰고 하나가 더 생겼어요! ‘작가’가 된 기분이 어떠신가요?
어색한데 마냥 어색하지만은 않고 신분 상승한 느낌이에요.(웃음) 작가라는게 제 삶에는 없을, 저와는 다른 영역의 어떤 세계라고 생각했는데 저의 서사와 이야기를 마음껏 글로 썼다는 이유로 작가라는 호칭을 얻게 되니 그 경계가 되게 먼게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Q. 주변 반응은 어때요? 특히 가족들 반응이 궁금해요.
딸 소이 반응이 정말 귀여운데 소이는 표지가 자기 사진인 줄 알고 있어요. “엄마 책에 왜 내 얼굴이 있어? 이거 소이책이다!”라고 하더라고요. 엄마 어릴 때라고 말해줘도 엄마가 아기 때가 있다는게 아직 이해가 안되나봐요. 그래서 여전히 “얘는 소이야!”라며 소이가 볼 때마다 소이책이라고 해요.

허진이 캠페이너가 책 <비밀에 기대어>를 들고 있다

허진이 캠페이너와 책 <비밀에 기대어>

삶을 돌아보고 단단해지는 과정, 책을 쓴 첫 번째 용기가 된 열여덟 어른 캠페인

Q. 책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었는데 그 중에 마음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요?
‘탓이라도 해보며’라는 에피소드에요. 처음 캠페이너로 나서게 된 것도 저는 어릴 때 운이 좋아 많은 기회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시작했었거든요. 함께 보육원에 살았던 친구가 86명인데 모두 다르게 살고 있어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는 친구, 이미 생을 마감한 친구, 아르바이트로 생계에 급급한 친구, 길거리에 노숙을 하고 있는 친구도 있었어요. 이 격차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많은 분들은 개인이 열심히 살지 않아서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어떤 친구들은 ‘문제아’라고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자존감, 긍정적인 경험을 할 기회가 없기도 해요. 그래서 탓이라도 해보며 이 글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Q. 열여덟 어른 캠페인의 키 메시지는 지난 6년간 동일했어요. 열여덟 어른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 그리고 이들은 동정과 편견의 대상이 아닌 ‘보통의 청춘’이라는 메시지요. ‘보통의 청춘’이라는 진이님의 생각이 책에 녹여져 있더라고요.
소이를 키우며 부모가 있다면 어떻게 다른지 알겠는거에요. ‘너무 다른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어떻게 보통의 청춘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어린 시절에 보육원 친구들끼리 ‘고아 티’가 나지 않게 서로 옷매무새를 만져주고 머리를 다시 묶고, 선배들도 ‘고아티 내지 말라’고 혼을 냈던 순간들이 떠올랐어요. 그 때 고아라는 티를 벗어내고 싶었던 것은 ‘나도 똑같은 사람으로 봐달라’는 발버둥이었던 것 같아요. 각자 특별한 사연이 있고, 잘 살고 싶고, 잘 어울리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도 보통의 청춘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나도 보통의 청춘’이라고 믿기로 했어요.

어린시절의 허진이

어린시절의 허진이

Q. 진이님에게 책은 삶을 돌아보고 의미를 찾으면서 단단해지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열여덟 어른 캠페인을 한 5년의 시간도 다시 재정의하고 의미를 정리해봤을 것 같아요.
캠페인 활동을 했기 때문에 사실 책을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처음 재단과의 만남에서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라는 말에 몇 시간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털어놓았던 적이 있었어요. 당시에는 이야기를 너무 다 털어놓은 것 같아서 후회도 하고 불쌍해보이지 않을까 걱정도 했었어요. 그런데 캠페인 활동을 통해 그 때의 그 이야기가 자립준비청년들이 성취경험을 쌓아볼 수 있는 ‘보육원 강연 프로젝트’가 되고, 자립준비청년의 삶을 경험해보고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한 ‘투자설명회’ 프로젝트가 되었어요. 그리고 정책과 제도들도 많이 변화했고요. 그 과정이 저에게는 아름답다고 느껴졌고, 이야기는 묻어두기만 하면 의미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열여덟 어른 캠페인 경험이 이 책을 쓰는 첫 번째 용기가 되었죠.

자립준비청년에게 계속 관심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살아갈 이유를 만날지 모른다는 가능성과 희망 때문입니다. 그리고 살아야 할 이유가 생기는 일이야말로 건강한 자립의 모습일 것입니다. – 열여덟 어른 투자설명회 중

‘나 이때 진짜 웃겼는데’하는 그 순간의 기분 좋음이 제가 주고 싶은 선물이에요

Q.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행복해.’라는 에피소드였어요. 행복한 순간을 발견하고 싶은 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행복이라는 엄청난 가치를 제가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낯간지럽고 민망하기도 하지만 저는 ‘행복하려면 행복하다고 믿는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피자 너무 맛있어. 피자 먹어서 기분이 좋아’라고 느껴도 저는 굳이 “피자 먹어서 너무 행복해”라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 기분 좋음과 행복의 한 끝 차이는 이 ‘말’에 있다고 생각해요.

Q. 또 다른 열여덟 어른들도 이 책을 읽으며 공감하는 순간들도 많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떤 것을 남겨주고 싶나요?
책을 내고 “이 일도 진짜 재밌었는데, 저 일은 왜 안썼어? 우리 이런 이야기도 있잖아.”라며 보육원 친구들에게 연락이 많이 왔어요. 이 말들은 우리의 보육원 생활이 결핍만 있었던 게 아니라 재미있었고, 웃을만한 일들도 많았다는 거잖아요. 삶이 마냥 결핍되어 있던 것만은 아닌데 그동안은 부족한 것에만 집중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친구들이 제 책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재미있고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고, 생각할수록 자기 삶과 자신을 좀 더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나 이거 진짜 웃겼는데”하는 그 순간에 마음에 들어올 그 기분 좋음이 제가 주고싶은 선물인 것 같아요.

<비밀에 기대어> 책 일부

“허진이는 자기 삶을 살고 있구나. 진짜 진이답게 살고 있구나.”

Q.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진이님을 어떻게 기억하기 바라시나요?
어제 한 친구가 길에서 싸움이 났는데 “진이라면 이 때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라며 제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이 친구에게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생각에 정말 좋았어요. 이 책도 ‘허진이는 자기 삶을 살고 있구나. 진짜 진이답게 살고 있구나.’라고 잘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 같아요. 저 답게 잘 살고 있다고 느껴졌으면 해요.

Q. ‘비밀에 기대어’ 에세이를 쓴 허진이의 이후 챕터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요?
지금은 어떤 이야기를 쓸 것 같은지 딱히 떠오르는게 없어요. 근데 저는 그게 좋아요. 이제는 나답게 살고 있으니까 어떤 이야기건 나답게 잘 써내려가며 살 것 같아요🙂

책을 읽고 있는 허진이 캠페이너

허진이 캠페이너의 에세이를 통해 어떤 삶의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지, 또 자립준비청년 중 한 사람으로서 어떤 어린시절의 경험들이 있었는지 ‘비밀에 기대어’ 나눠주신 솔직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어린 시절의 힘들었던 순간, 그리고 그 속에서도 즐거움이 있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하며 조금 더 자신을 사랑하게 한 것 같아 참 다정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이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들이 오늘도 어딘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열여덟 어른들에게 잠시나마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게 하고, 안아주는 경험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아름다운재단은 2001년부터 열여덟 어른들이 ‘나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응원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열여덟 어른들이 건강한 자립을 당당하게 해나갈 수 있도록 함께해주세요.

📍허진이 캠페이너의 에세이 ‘비밀에 기대어’

🖋️공익마케팅팀이 책 ‘비밀에 기대어’를 읽으며 그은 밑줄

p32 누군가 나의 보육원 생활을 궁금해 할 때면 나는 가장 먼저 여름날 해수욕장을 향해 뛰어가던 이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토록 낭만적인 기억을 입 밖으로 꺼내기는 쉽지 않다.

p75 열여덟 어른 캠페인에서 ‘자립준비청년도 보통의 청년과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우리는 보통의 청년과 같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중략) 하지만 이제는 내 경험이 어떻더라도 보통의 청년과 다르지 않다고 믿기로 했다. 스스로 자조하며 고아 티를 벗어내려 했던 것의 진짜 의미는 우리도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고, 그렇게 봐 달라고 오래전부터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p101 적당히 기쁜 일에도 기꺼이 행복하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그런 단순한 끄덕임이 내가 발견한 행복의 비밀이었다.

p108 진심은 오래 기억되고, 내가 받은 진심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고, 또 누군가에게 전해진다. 우리는 이 선순환을 반복하며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진심을 담는 일’에 무감각해지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p129 같은 자립준비청년이라도 누군가에겐 홀로서기가 더욱 부단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들의 역량이 부족하거나 자립의지가 남들보다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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