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X 에이팟코리아
산불피해 긴급 지원사업 이렇게 합니다! 

빨간 고무대야에 아무렇게나 담겨 있는 물건들, 여기저기 척척 쉬이 널려 있는 옷가지, 양손 가득 검은 비닐봉지, 덤 하나 달라는 실랑이, 요리조리 물건을 살피는 주름진 손, 굽어진 허리를 더 숙여 고무대야 속으로 들어갈 것 같은 자세. 시골의 장터 같지만 이재민 어르신들이 필요한 물건을 실어 가져가실 수 있도록 아름다운재단과 에이팟코리아가 함께 준비한 ‘작은변화 만물트럭’의 모습이다.

작은변화 만물트럭 왔습니다!

물건 가득 싣고 왔습니다!

트럭 앞에 사람들이 서있다

주민들과 만날 준비를 합니다

작은변화 만물트럭, 마을회관 앞에 정차한 이유는? 

아름다운재단은 경북, 경남 지역에 발생한 대형 산불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지원하고자 에이팟코리아와 긴급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흩어져있는 이재민들에게 맞춤형 지원을 하기 위해 유튜버 ‘청춘만물트럭’과 영덕 지역을 다닌다. 4월 16일을 시작으로 22일까지 일주일 동안 작은 대피소부터 수련원 같은 대형 대피소까지 하루에 4~5곳씩 다닐 예정이다. 

현재 이재민들에게 구호물품으로 온 헌 옷들은 사이즈에 맞지 않고, 빨아 써야 하거나 어르신들이 입기에는 조금 어색한 옷들이 많다. 이에 취향저격 꽃무늬 몸빼 바지 및 일바지, 예쁜 봄 티셔츠, 바람막이 점퍼, 꼭 필요한 속옷과 양말 등 5가지 품목을 사이즈 및 디자인을 다양하게 준비해 싣고, 산 굽이굽이 돌아 있는 마을회관형 대피소에 만물트럭을 펼쳤다. 여담으로 이번 협업을 진행하고 있는 ‘청춘만물트럭’은 바구니나 칼 등 물건을 주로 취급했던지라, 어르신들의 옷을 사는데 애를 먹었지만 대구 서문시장에서 어르신 드릴 물건이라고 하니 상인들이 많이 깎아주었단다.

이재민들은 대형 대피소(수련원, 체육센터 등)에도 머무르고 있지만 생업이 앞에 계신 어르신들은 마을회관에 20~30명씩 남아 생활하시는 곳도 있다. 집이 전소되었어도 산을 돌아 체육센터에서 낯선 이들과 대피 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고 이재민 보호시설이 포화상태라 들어갈 수 없는 탓이다.

양말을 고르는 어르신

삼화2리 마을회관 앞에서 생긴 일

4월 16일 오후 3시, 삼화2리 마을회관에 만물트럭을 펼치자 보행 보조기기를 끌고 나오신 한 어르신이 손바닥을 가르키며 “요맨한, 손바닥 만한 팬티를 갖다 주더라, 난 큰거 무조건 큰거~”라며 큰 사이즈 팬티를 요청하셨다.

마을회관에 거주하는 이재민 어르신들은 낮에는 소일삼아 밭에 가시기도 하고, 전소된 집을 돌보시기도 하고, 밤에는 같은 동네 어르신끼리 모여 공동생활을 하신다. 물론 식사, 구호물품 등은 에이팟코리아 같은 재난 전문단체와 이장님들이 실어 날아 나누어 드린다.

빨간 고무대야에 펼쳐진 봄 점퍼를 보시던 어르신의 눈빛을 캐치한 ‘동네언니 협동조합’ 자원봉사자는 “어머니 잠바 보여 드려? 요거 괜찮네, 요걸로 드릴까요? 색은 요 색있고, 이런 색 있어요”라며 어르신 맞춤 색과 사이즈를 골라 대어 주며 어르신의 취향을 저격했다.
※동네언니 협동조합: 포항에 위치한 마을기업으로, 2022년 울진산불 때부터 에이팟코리아와 함께 현장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옷을 찬찬히 살펴보는 어르신

무료한 공동생활에 작은 활력이 되셨기를 바라며

“됐다 됐다, 딱이다. 이쁘네.”라며 어르신들이 고른 옷을 칭찬하며 옷 고른 재미를 더욱 배가 시키는 에이팟코리아 성종원 이사, “큰 사이즈 바지 여 더 있어요. 꺼내 드릴까에?”하며 만물트럭 위를 쉬이 오르는 청춘만물트럭 주인장 등 만물트럭에 만물상이 가득하여 이재민 어르신들이 오늘 하루 ‘나의 맞춤 옷’을 고를 수 있었다.

70여년을 살아오며 취향을 구축해온 어르신들이 일괄 배포하는 구호 물품 속에서 사이즈에 맞는 옷을 갖기란 쉽지 않다. 이번 ‘작은변화 만물트럭’은 그런 수동적인 이재민의 위치를 바꾸어 마치 장에 가서 자기 옷을 고르듯 사이즈에 맞고, 취향에 맞는 옷을 갖게 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 특히 여성 속옷은 사이즈가 작거나 불편한 경우가 많아 큰 사이즈 팬티와 와이어리스 런닝브라가 인기가 많았다. 남성 옷은 산 사이를 몰아치는 바람을 막을 얇은 점퍼가 잘 나갔다. 신발도 없어 슬리퍼나 털장화만 신고 나와 다음번에는 작은변화 만물트럭에 다양한 신발을 준비해 갈 예정이다.

지품리 마을회관에서는 어느 한 어르신이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눈물을 훔치셨다.

“옷은 문제가 아이라… 간장, 된장이 문제라. 나올 때 된장독이 터졌는데 에고 아까버서… ”

몇 십 년을 해가 뜨면 잘 말리고, 바람불면 바람들랴 뚜껑열어 주고, 비오면 살포시 닫으며 애지중지 담가온 장들. 그 장을 잃은 어르신의 말 속에는 삶의 터전이 그대로 한순간에 사라진 슬픔과 다시 시작하려니 까마득한 앞날이 묻어 있는 듯하다. 그 슬픔을 모두 헤아릴 수도, 단기간에 위로할 수도 없음을 잘 안다. 그러나 작은변화 만물트럭이 정차한 시간, 취향에 맞는 옷을 고르고 왁자지껄 이야기한 순간이 삶의 작은 활력이 되기를 바랐다.

아름다운재단과 에이팟코리아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놀이치료, 웃음치료 등을 통해 무료한 공동생활을 위로하려 한다. 추후 거주지가 확정되었을 때도 찾아 뵈어 심리상담 등을 진행하며 일상의 회복을 도울 예정이다. 지금과 같은 꾸준한 관심이 이어진다면 일상으로의 복귀도 조금은 빨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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