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의 밤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다. 어느 날처럼, 잠자리에 들기 위해 침대에 누워 습관처럼 핸드폰을 보다 우연하게 마주친 긴급 대국민 담화를 확인했다. 근현대사를 배울 때 등장하던 비상계엄령 선포였기에, 한동안 멍하게 침대에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고 머릿속은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졌다. 뉴스로만 보던 불안한 조짐들이 현실이 되었던 순간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다른 한편으로는 여기서 좌시하면 안 된다라는 생각이 교차되었다.

국회로 향하는 길, 두려움과 망설임

옆방에서 아이들을 재우고 온 아내의 “국회로 가봐야하지 않을까?”하는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이야기를 듣고 조금 망설였던 것 같다. “정말 가야 할까…? 이런 상황에 나하나 간다고 뭐가 달라질까?” 라는 생각이 앞섰다. 포고령에 따라 이미 움직였을 것 같은 무장한 군부대와 마주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상황일지 배운 것이 있었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2024년 12월 3일 국회 앞에서

여의도 국회 앞으로 시민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역의 사회문제가 있을 때 함께 연대하며 활동하던 지인이 단체 카톡방에 짧은 메시지를 보내왔다. “우리 국회로 가자” 두렵지만 가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두툼한 겉옷을 챙겨 입고 사람들과 함께 차량에 몸을 싣고 국회 앞으로 이동했다. 나중에서야 들었지만 집에 남아 있던 아내는 엉엉 울었다고 한다. ‘괜히 보낸 것은 아닐까? 혹시라도 잘못된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으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고 했다.

여의도 국회 앞에서 마주한 긴박한 밤

국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는 침묵만이 가득했다. 긴박한 뉴스 속보가 이어졌지만 말없이 스크롤을 올리며 기사를 확인할 뿐이었다. 그만큼 두려웠고, 걱정되었다. ‘경찰, 국회 주변 통제 시작, ‘국회 앞에 사람들 속속 모이는 중’이라는 실시간 소식이 계속되며 두려움이 아니라 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 길을 달렸다. 누군가는 막아야한다는 절박함이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던 것 같다.

국회앞에 도착하니 수백명의 시민들이 모여있었다. 경찰 병력이 있어 국회 정문과 외곽을 지키고 있어서 안으로 진입할 수 없었지만 “국회를 개방하라”며 함께 구호를 외쳤다. 국회의원이 들어가 본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라는 외침이었다. 국회 안 상황을 알 수 없어 답답해 핸드폰으로 전해지는 속보를 계속 확인했다. 직접 진입하던 탱크를 막지도, 국회에 집입한 군부대를 막아내지도 못했지만 헬기소리와 함께 엄습한 두려움을 이겨내며 불법 계엄을 해제하라며 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잠시 후인 새벽 1시경 “가결!” 이라며 누군가 외쳤고, 휴대폰으로 생방송을 보던 사람들이 일제히 두 팔을 번쩍 들었다.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는 소식에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몇몇 분들은 눈시울을 붉히고 계셨다.

시민들의 외침, 민주주의를 지켜내다.

그 후 4월 4일, 윤석열 대통령 파면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긴 시간 동안 여러 차례 경복궁역과 안국역 인근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혼자였다면 거리로 매번 나설 용기를 내기도 어렵고 쉽게 지쳤을 것 같다. 무엇보다 개인의 외침만으로 변화를 만들기란 쉽지 않아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민사회 연대조직인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의 1,700여개의 시민사회노동단체가 함께 자리를 지켜주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전방에서 묵묵히 땀 흘리던 그들은 광장과 남태령으로 나와 시민들을 도우며 함께했다.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온 가족을 친절하게 안내했고, 다양한 세대가 어우러질 있도록 안전을 지켰고, 우리의 목소리를 제도권에 전달했다. 따뜻한 연대의 손길에 우리의 외침은 더 이상 외로운 메아리가 아니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어깨를 맞대고 선 광장에서 함께 구호를 외치는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가까운 이웃이자, 동료 시민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희망이 되었다. 모두가 긴 겨울을 함께 견디며 봄을 기다렸다. 나아가 큰 위기를 이겨내는 기적을 만들 수 있었다.

2024년 12월 7일 국회 앞에서

한국 사회에서 시민사회는 단순히 정부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존재가 아니다. 민주화운동의 역사에서부터 경제성장 이후 나타난 복지 사각지대와 불공정을 해결하는 데까지 시민사회는 늘 맨 앞에 서 있었다. 이들은 때로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되고, 때로는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되며, 갈등을 중재하고 사회를 통합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최근 몇 년 동안 정부의 시민사회 지원 축소와 사회적 양극화, 이념 갈등 속에서도 이들은 묵묵히 우리 사회의 균형추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런 시민사회의 중요성을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 한 번 깊이 느꼈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대한민국은 특정한 이념이나 정파의 논리를 넘어, 모두가 안전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나라이다. 시민사회는 바로 그런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힘이다.

광장에서 피켓을 들고 서있다

2025년 3월 29일 경복궁에서

연대에 대한 소중함을 가슴에 새기며

국회앞에서 밤을 지낸 다음날인 12월 4일, 아름다운재단 구성원 중 선배 2명이 준 상장을 부끄럽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새로운 봄은 분명 그냥 오지 않는다. 작은 목소리라도 꾸준하게 내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손을 내밀고, 정의가 흔들릴 때 주저 없이 거리로 나서는 시민의 연대를 지켜낸 소중함을 알기에 준 상장일 것이다. 상장의 내용은 가볍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알기에 참 고맙고 감사했다.

아름다운재단에서 일하며 시민사회를 지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 아름다운재단은 시민들의 참여와 연대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플랫폼이다. 앞으로도 아름다운재단의 구성원으로서, 또 한 명의 시민으로서 이 길을 걸어가고자 한다. 12월 3일의 아픈 밤을 넘어, 꽃피는 봄이 지나면 진정으로 행복한 나라가 되길 바란다. 계엄이 우리에게 남긴 상처, 그것으로 파생된 극한 대립과 갈등을 봉합하고 민주적 국가를 훼손하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끊임없이 저항하며, 계속해서 교류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며, 공동체로, 좋은 이웃으로 살아가기를 포기하지 않겠다.

12월 4일 선배들에게 받은 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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