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은 많은 비영리 공익단체들이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 기회의 문을 넓게 열어두고 1%가 100%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다양한 공익활동을 지원합니다. ‘2024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에 참여한 직장갑질119의 활동 후기를 전해드립니다. |
“상사에게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을 당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제 목에 상처가 난 것을 보고 어제 격렬하게 했냐고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목격자는 있지만 회사에 오래 다니려는 분이라 증언을 해주지 않을 것 같아요.”
“성희롱을 회사에 신고해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이후 대표가 저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며 퇴사 압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부장에게 성희롱을 당해 신고했는데, 회사는 부장과 제가 동갑이니 이번 일로 더 친해질 수 있지 않겠냐며 말도 안 되는 화해 종용을 했습니다. 거부하고 제대로 조사해 서면으로 결과를 달라 요구하자 퇴사 종용과 괴롭힘이 시작됐습니다.”
직장인들이 일터에서 경험하는 노동법 등의 위반 상황에 대해 상담을 진행하는 직장갑질119에 들어온 상담입니다. 이렇듯 ‘요즘도’, ‘설마’, ‘저런 일이 있겠어?’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현실에서는 여전히 버젓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터 성범죄 1년새 증가
직장갑질119는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을 받아 2023년 직장인들의 젠더폭력 경험과 인식, 그리고 젠더감수성을 진단할 수 있는 문항과 지표를 개발했습니다. 문항과 지표는 직장갑질119로 들어온 제보와 상담을 바탕으로 제작했습니다. 2023년에 이어 2024년도 해당 문항과 지표를 토대로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조사 결과는 어땠을까요? 직장 내 성희롱, 성추행‧성폭력이 지난 1년 사이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전체 근무 기간 중 직장 내 성희롱 경험은 22.6%, 성추행‧성폭력은 15.1%, 스토킹은 10.6%로 2023년 실시한 같은 설문과 비교해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피해 경험 기간을 최근 1년 내로 좁혀보면 직장 내 성희롱은 2023년 14.2%에서 20.8%로 성추행‧성폭력 경험도 2023년 14.2%에서 20.8%로 늘었습니다. 2023년 스토킹처벌법 개정과 스토킹방지법 제정‧시행에도 불구하고 직장 내 스토킹 피해를 최근 1년 사이 경험했다는 응답은 2023년 15%에서 2024년 16%로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성의 경우 직장 내 성희롱, 성추행‧성폭력 경험률과 심각성이 남성보다 모두 높게 나타났으며, 행위자가 하급자인 경우가 거의 없는 남성과 달리 여성은 상대적으로 하급자에 의한 폭력 피해가 더 많이 확인됐습니다. 직장 내 성범죄는 불평등한 위계만이 아닌 직장 내 성별 권력 관계로 발생하는 젠더 기반 폭력의 속성을 띠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결과입니다. 피해자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위의 상담에서 확인할 수 있듯 직장 내 성범죄를 신고한 피해자들은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고, 되레 일터를 떠나기를 강요받고 괴롭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피해자들이 법과 제도를 활용해 피해 사실을 알려내기란 쉽지 않은 현실입니다. 실제로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의 55.8%는 신고 대신 ‘참거나 모르는 척’했고, 12.7%는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특히 여성의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응답은 19.2%로 남성(6.3%)의 세 배에 달했습니다. 신고를 포기한 이유로는 ‘대응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가 53.6%로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2024년 대한민국 젠더감수성 ‘D등급’
2023년 직장갑질119는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을 받아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600여 건의 제보사례와 실태조사 결과를 분석해 ‘젠더감수성 지표’를 개발했습니다. 이 지표는 직장에서 벌어지는 젠더갑질에 대한 한국 사회의 ‘표준 인식’을 확인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들이 심각한지 점검할 수 있는 토대로, 2024년은 응답의 객관성을 더욱 넓히기 위해 문항을 그대로 유지하되 질문에 하나의 요청을 더했습니다. 2023년의 경우 “현재 일하고 있는, 혹은 최근에 일했던” 직장의 상황을 물어본 것과 달리 2024년 조사에서는 개인의 경험에 국한하지 않고 ‘직장의 문화나 분위기 등을 기준으로’ 응답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질문과 문항은 아래와 같습니다.
[질문] ‘직장의 성별에 따른 조직문화’와 관련한 질문입니다. 귀하가 현재 일하고 있는(혹은 최근 일했던) 직장의 상황에 대해 다음 항목별로 응답해주십시오. (개인의 경험이 아니더라도 직장의 문화나 분위기 등을 기준으로 응답해주십시오.)
문항 |
전혀 그렇지 않다 |
그렇지 않은 편이다 |
보통이다 |
그런 편이다 |
매우 그렇다 |
능력과 무관하게 특정 성별을 선호해 채용한다 |
100 |
75 |
50 |
25 |
0 |
동일한 업무를 하는데 성별에 따라 임금이나 노동조건에 차이가 있다 |
100 |
75 |
50 |
25 |
0 |
성별을 이유로 교육, 배치, 승진 등에 차이가 있다 |
100 |
75 |
50 |
25 |
0 |
전체 직원 성비 대비 특정 성별이 상위 관리자급 이상 주요 직책에 압도적으로 많다 |
100 |
75 |
50 |
25 |
0 |
임신·출산·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사용하기 어렵다 |
100 |
75 |
50 |
25 |
0 |
특정 성별에게 커피, 손님 접대, 회의 준비, 서무업무 등 잡무를 요구한다 |
100 |
75 |
50 |
25 |
0 |
아줌마, 미쓰김, 아저씨 등 특정 성별을 지칭하는 호칭을 한다 |
100 |
75 |
50 |
25 |
0 |
성적인 대화나 농담을 한다 |
100 |
75 |
50 |
25 |
0 |
야동(성적인 동영상·사진·짤)을 보거나 주고받는다 |
100 |
75 |
50 |
25 |
0 |
친한 동료들의 단톡방에서 성적 대화가 오간다 |
100 |
75 |
50 |
25 |
0 |
손잡기, 어깨동무, 포옹 등 신체 접촉을 한다 |
100 |
75 |
50 |
25 |
0 |
“여자가 예민해서”, “남자가 눈물을” 등과 같은 성별에 따른 특정 표현을 한다 |
100 |
75 |
50 |
25 |
0 |
특정 성별에게 애교, 웃음, 친절 등을 요구한다 |
100 |
75 |
50 |
25 |
0 |
예쁘다, 못생겼다 등 외모에 대한 평가를 한다 |
100 |
75 |
50 |
25 |
0 |
옷차림이나 화장에 대한 지적을 한다 |
100 |
75 |
50 |
25 |
0 |
사적인 만남을 요구하거나 원치 않는 구애를 한다 |
100 |
75 |
50 |
25 |
0 |
원치 않는 상대와 사귀라고 하거나 소문을 낸다 |
100 |
75 |
50 |
25 |
0 |
연애, 결혼, 출산 등 사생활에 대한 질문을 한다 |
100 |
75 |
50 |
25 |
0 |
성희롱 이슈 때문에 특정 성별끼리 회식이나 만남을 한다. |
100 |
75 |
50 |
25 |
0 |
성별을 이유로 해고나 권고사직 등 불이익이 있다 |
100 |
75 |
50 |
25 |
0 |
결과는 어땠을까요? 2024년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젠더감수성 지수를 조사한 결과 평균 66점으로 ‘D등급’을 기록했습니다. 응답자 개인의 경험만이 아닌, 응답자가 속한 일터의 분위기, 문화 등을 감안한 응답을 요청하니 같은 질문들임에도 2023년 73.3점, ‘C등급’을 기록했던 것보다 낮은 점수가 나왔습니다.
구체적으로 한 번 볼까요? 2024년 전체 평균 대비 젠더감수성 지수가 낮은 하위 다섯 개 지표는 ①주요직책(55.3점) ②모성(56.1점) ③노동조건(57점) ④채용(57.3점) ⑤승진(58.2점)으로 모두 50점대, ‘F등급’을 기록했습니다. 2023년 하위 다섯 개 지표는 ①주요직책(58.4점) ②모성(60.3점) ③채용(63.8점) ④노동조건(64.3점) ⑤승진(64.7점)으로 2024년과 순서의 차이가 있을 뿐 동일했습니다. 채용, 임금, 직책, 승진 등와 같은 지표는 직장 내 노동환경과 밀접하게 연관된 항목으로, 직장 내 젠더 차별적 문화가 얼마나 뿌리깊고 심각한 수준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직장 내 성범죄의 만만한 대상이 되고, 보호도 받지 못하고, 채용부터 승진까지 차별이 만연한 일터에서 한국의 여성들은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걸까요? 이러한 현실 앞에서 여성들을, 일터의 약자들을 보호할 법과 제도가 있는데 왜 이용하지 않냐는 질문은 공허할 따름입니다. 젠더화된 폭력과 차별이 만연한 일터에서 ‘무기력을 학습한’ 여성들이 상황을 타개할 최선이 정말 일터를 떠나는 것밖에 없게 놔둘 것인지, 여성들이 일터에서 사라지게 만드는 건 가해 행위자 개인이 아닌 회사의 시스템, 법과 제도, 정부의 ‘적당한, 때로는 적극적인 방관’이 아닌지 물을 때입니다.
직장갑질119는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으로 마련하고 확인할 수 있었던 이 지표와 통계들을 활용해 여성들이 지금처럼 만연한 폭력과 차별에 방치돼 무기력하게 일터를 떠나지 않도록 활용 가능한 제도와 행정, 문화를 만드는 노력을 이어가겠습니다. 이를 위해 앞으로도 정기적이며 연속적인, 한국 사회의 젠더 표준 인식 조사를 진행하고 방안을 만들기 위한 길을 ‘함께’ 찾아나가겠습니다.
글, 사진 : 직장갑질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