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은 많은 비영리 공익단체들이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 기회의 문을 넓게 열어두고 1%가 100%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다양한 공익활동을 지원합니다. ‘2024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에 참여한 해외주민운동연대의 활동 후기를 전해드립니다.

미얀마에서 온 이주노동자가 기록·상담 교육으로 교육자가 되어보았습니다

나는 한국에 온지 7년이 되었습니다. 나의 집은 미얀마 북서부에 있는 ‘여’(YAW)라는 (소수)민족지역입니다. 여는 미얀마 양곤에서 버스로 9시간을 가야 합니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경치가 아주 아름다운 농촌지역입니다.

2015년 미얀마 사회는 독재국가에서 문민정부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느꼈고 가난하지만 정직하게 살면 더 나은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서서히 발전하는, 이전과는 다른 자유와 평등을 알고, 피부로 느껴가면서 미얀마에서 산다는 것이 처음으로 좋았습니다. 한국에 온지 얼마지나지 않아 COVID 19이 미얀마의 결핍을 실감하게 했습니다. 모두가 불안하고 초조했지만 전 세계에서 일어난 질병인 만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도 있었습니다. 독재국가에서 벗어난지 얼마 안되었기에 의료품이 충분하지 않은 것도 그럴 수 있다고 이해했던 거 같습니다.

2021년 2월 1일 미얀마에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모든 미얀마 사람들은 당황했고 분노했지만 말도 안 되는 상황인 만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문민정부 아래에 군부가 있었기 때문에 무력으로 일으킨 쿠데타는 그리 오래가지 않을거라 생각했습니다. 시민들이 힘을 합쳐서 저항하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시민의 힘이 군부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우리는 대한민국을 통해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군부는 군사적 전략이 매우 튼튼했습니다. 학살, 체포, 구금, 고문, 방화, 폭격 등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것이 미얀마 군부라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산 채로 사람을 태우는 것은 물론, 아이들에게 총을 쏘고, 여성을 강간하고, 집의 살림을 모두 가져가고, 마을 주민을 시켜 주민을 감시하고 신고하였습니다. 인간 방패를 세워 마을 주민들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 문제는 평화적으로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항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군부에게 미얀마 국민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죽여할 할 적이었습니다.

미얀마를 위해 모든 것을 다했습니다. NUG(민족통합정부)에 돈을 보내고, PDF(청년방위군)들에게 군사비 및 무기 지원금도 보냈습니다. 토요일 부평 광장에서 매번 모금을 했습니다. 원데이 챌린지로 월급의 1/10을 매달 미얀마로 보냈습니다. 가족, 친구, 지인들의 생활비와 식량비도 보냈습니다. 그 일을 4년 동안 했습니다. 대한민국 3만 명의 미얀마 사람들 중에 안 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 것입니다. 군부의 공격은 더 강해지고, 시민들은 더 많이, 더 처참하게 죽었습니다. 점점 지쳐갔고 안하고 싶었지만 미얀마 국민들을 생각하면 안 하기에는 너무 죄송했고, 죄를 짓는 것 같았습니다. 한국에서 안전하게 일하는 것이 창피하고, 할 수 있다면 건너가서 총을 들고 싸우고 싶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우리도 직접 총과 대포, 드론을 만들었고, 우리는 더 많은 돈을 미얀마로 보냈습니다. 그것만이 군부를 물리치고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되찾을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공익 청년 교육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얀마 사람들을 위해서는 뭐든지 할수 있었기 때문에 이번 교육도 관심이 갔습니다. 코코 대표님의 활동을 존경하고 있었고, 미얀마 일을 우리 보다 더 열심히 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모토는 미얀마의 지역사회를 복원하는 것이었습니다. 미얀마의 다음 세대를 위한 역사를 현재로부터 기록하고, 갈라진 주민들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명하고 이름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을 기록하는 것이었습니다. 쿠데타 사건에 맞서 싸운 진술이 아니라 사람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민주주의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여진 힘이라는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나는 교육을 통해 활동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인간이면 알아야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교육에 있어서 하나의 같은 내용인데도 여러가지 입장과 생각, 해석이 존재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내말만이 옳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보면 아… 이렇게도 이해할 수 있겠구나,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구나 등 생각이 넓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진 하나 뿐인데도 해석이 여러 게 나온다는 것에 신기하고 사고의 틀을 더 넓혀야 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상담을 통해 긴 고통 속에 있었던 개인의 심리적인 고통과 트라우머는 치료하기가 어렵고, 바꾸기 힘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천천히 마음과 생각을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항상 같은 패턴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가 바꾸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순간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특히 교육을 늘 받기만 했던 내가 교육을 다시 해야 하는 것이 긴장되고 두려웠지만, 동료들끼리 부딪치고 이야기하고 다시 해보면서 즐거웠습니다. 토론하고 반대하고 의견을 내는 교육문화가 없던 저에게는 이 과정이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나게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하기에 바빴던 노동자인 우리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많은 것을 할수 있는지를 서로에게 배우고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촛불을 키고 미얀마에서 들어 온 청년들은 나에게 감동이었습니다. 매솟에서 불법 체류자로 살아가면서도 미얀마를 돕기 위해 뭐든지 하는 청년들 앞에서 나는 겸손해졌습니다. 나는 뭐든지 할수 있었습니다. 함께 교육을 받은 미얀마 청년들과 우리나라 미얀마 시민들을 위해 꼭 필요한 기록일을 하고 싶습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우리 민족 여를 위해, 나는 우리 커뮤니티 멤버들에게 함께 기록 교육도 받고, 기록도 하자고 말했습니다. 나는 포기하지 않는 것을 이번에 배웠습니다. 미얀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함께 기록하고 상담하면서 미얀마 지역사회를 회복해 갈 친구들이 많아졌습니다. 나는 이것에 행복합니다.

부족한 점은 시간입니다. 시간을 투자하고 배울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교육기간이 짧았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부족한 점은 일하면서 교육 받아야 하기 때문에 학습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하루 하루 배운 것을 학습하고 연습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교육에 개인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글, 사진 : 해외주민운동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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