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 뭔가 좀 다르다…

‘타기관분석 : 아름다운재단, 작은 규모지만 브랜딩이 잘 되어있음’

‘아름다운재단’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던 것은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팀 회의에서였다. 당시 내가 일하던 직장은 비영리기관 중 소위 메이저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기초 교육으로 진행된 타 기관분석 중, 아름다운재단은 ‘1%나눔 캠페인’을 통해 신뢰있는 브랜딩이 강점인 곳이라는 분석을 들었다. 그러나 규모가 큰 단체들에 비해 모금액으로도 종사자 수로도 한참이나 작았던 곳이기에 그리 귀담아듣지 않고 흘려보냈다. 그때는 아름다운재단이 나의 두 번째 직장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많고 많은 기관들 중 하나로 인식하고 있던 나에게 아름다운재단이 특별하게 다가온 날이 있었다. 옆 자리 동료가 우편물을 뜯다가 깜짝 놀라는 소리를 내어 많은 동료들의 눈길이 쏠리게 되었다. 동료의 손에는 낙엽이 들려있었다. 신기해하며 웃고 있는 동료의 손에 들린 낙엽에는 글씨가 적혀있었다.

희망은 지지 않습니다

손으로 일일이 작업한 흔적이 담겨있는 마른 낙엽에 ‘희망은 지지 않는다’라는 메시지라니. 대량 인쇄물도 아니고 이걸 일일이 손으로 작업해서 기부자에게 발송을 했다는 것이 같은 종사자로서 감탄스러웠다. 얼마나 정성을 들였을까 싶은 마음에 박수를 보내는 동시에, ‘희망은 지지 않는다’라는 문구에 호기심이 일었다.

그때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참 어둡고 힘겨웠던 2009년의 겨울이었다.

겨울이 오고 낙엽은 져도, 희망은 지지 않듯, 아름다운재단은 ‘절망에 지지 않고 희망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믿기에 ‘낙엽’을 통해 이웃과 사회를 걱정하는 당신의 마음을 적어 시민들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2009년 캠페인 문구 중>

‘가진 것의 1%를 나누자’는 메시지를 담은 ‘1%나눔 캠페인’을 하는 곳이라더니 뭔가 달랐다. 나에게 아름다운재단은 그렇게 각인이 되었다.

두 번째 인상, 허투루하는 법이 없다

또 한 번은 단체들의 동향을 살피던 중 아름다운재단 홈페이지에 방문하게 되었다. 세련되지 않은 홈페이지 디자인이 지금도 기억난다. 화려하지만 획일화되어있던 큰 단체들에 비해 오히려 소박하고 차별성이 느껴졌다. 홈페이지에 담긴 콘텐츠도 조금 달랐다. 지금이야 담당자가 글을 쓰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직원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드러내고 직접 쓴 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아름다운재단 직원들에게 힘을 내라며 지역의 특산물을 보내왔다는 글이 기억난다. 혹시라도 잘못 보낸 건 아닌지 확인하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새삼 투명해 보였고, 작은 것도 허투루 다루지 않는 곳이라면 믿을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순간들이 쌓여 어느샌가부터 아름다운재단을 특별하고 투명한 기관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직장이 된 아름다운재단

어느덧 5년의 시간이 흘러 나는 공허함과 번아웃을 느끼고 있었다. 비영리기관이 커진다면, 기부금이 많아진다면 빈곤과 불평등은 사라질 수 있는 것인가? 과연 사회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것인가? 나름의 비전과 꿈을 안고 비영리라는 곳에 뛰어들었는데 오히려 길을 잃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첫 직장을 퇴사하며 ‘비영리’를 떠나기로 결심을 했다. 잠깐의 공백 기간을 보내며 억울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을 하고 싶어서 선택했던 비영리였는데, 이렇게 포기하는 것이 맞을까. 이런 고민을 하던 중 아름다운재단 공고를 보게 되었다.

‘희망은 지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던 오렌지색의 마른 낙엽과 같았던 곳. 아름다운재단이라면 조금 다를까 하는 기대와 함께 입사지원을 했고 2014년 나는 다시 신입 직원이 되었다. 한 달 동안 신입직원 교육을 받고 부서에 배치되었을 때 재단은 ‘노란봉투 캠페인’을 막 런칭하게됐다. 당시 47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받았던 쌍용차 노동자들의 문제가 언론에 오르내리던 때였다.

노란봉투 캠페인

당시 아름다운재단에 보내주신 수많은 노란봉투들

노란봉투 캠페인은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직장해고와 손배소, 가압류로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와 가족을 지원하는 캠페인이었다. 이효리씨의 손편지와 기부로 인해 다양한 유명인사들도 동참을 하면서 많은 언론에서 기사를 다루었고 곧 사회에 이슈화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재단에 전화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전화로 기부신청을 하는 분들이 많았다)

‘고맙다’, ‘응원한다’는 말에서 업을 이어가는 이유를 찾다

아침 출근부터 퇴근까지 끊임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정신없이 며칠을 보내던 중 뭔가 조금씩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부 신청을 받으면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기부자님께 하는게 당연하고 익숙했다. 그런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화를 걸어온 모든 분들이 한 목소리로 나에게 ‘감사하다’고 하는 것이다.

기부를 하는 사람이 왜 나에게 “감사하다”, “응원한다”고 하지? 순간 어떤 생각이 내 머리를 탁 치고 지나갔다. “감사하다”라는 말은 내가 그렇게 필요로 했던, 첫 직장을 떠나며 고민했던 비영리기관의 존재이유였다. 누구나 더 나은 사회를 희망하겠지만 생업 전선에서 모두가 다 뛰어들 수는 없으니, 그들을 대신하여 사각지대 이슈를 발굴하고 건강한 관점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면, 비영리기관은 응원받고 지지받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사 두 달 만에 재단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얼마지나지 않아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겼고 전국적으로 기부금이 모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큰 단체들은 모금 캠페인을 시작했고 많은 기부참여를 이끌어내고 있었다. 아름다운재단의 캠페인 부서도 누구보다 빠르게 세월호 캠페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안산에 다녀오는 선배들을 보며 ‘조만간 캠페인을 시작하겠구나’ 라고 생각을 했지만 시간이 흘러도 오픈이 되지 않았다.

알고보니 모금을 먼저 받고서 사용처를 정하는 다른 단체와 달리,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지 먼저 확인하고 사용처와 필요한 지원을 기획하고 모금을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기관에서 모금을 했던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열고 사용처는 후에 사용하면 되는 것 아닌가.

다른 단체보다 뒤늦게 캠페인을 오픈을 한 후에 또 다시 놀랐다. 캠페인에 참여한 기부자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아름다운재단이 모금 캠페인을 열어주기를 기다렸습니다.”

이렇게 늦은 캠페인도 이해가 안 되는데, 이렇게 늦은 캠페인을 기다리는 기부자는 또 어떤 사람인가 궁금했다. 아름다운재단을 닮은 기부회원일 것이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다른 단체의 모금 실무자들과 회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까지 사용처를 정하지 못했다며 어려워하고 있었다. 비록 많은 모금을 한 것은 아니지만 모금액보다 제대로 사용하겠다는 의지는 아름다운재단다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레터 2015.04.14] 세월호 참사 1주기,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0416 캠페인

어느덧 10년이 더 지났다. 아름다운재단에서 일하면서 참 많이 들었던 말이, 아름다운재단다움’이다. “아름다운재단다운 거 맞아?”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도 없었고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여전히 지금도 아름다운재단다움을 정의내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재단은 남들과 다른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내가 경험했던 일들도 아름다운재단다움의 한 부분일 것이다. ‘아름다운재단다움’ 덕분에 지난 10년 동안 ‘열여덟 어른‘ 캠페인을 비롯하여 다양한 캠페인을 할 수 있었고, 정책변화와 지원확대등의 사회적 성과뿐만 아니라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안녕, 열여덟 어른’ 북토크 당시 재단 매니저들과 함께

“캠페인 메시지나 의제를 전달할 때 보면 빼빼 마른 애들 보여주면서 ‘도와주세요’ 호소하는 방식과 다르게 하더라고요. 아름다운재단이라면 좀 닥치고 믿는 편이에요.”

2025년, 아름다운재단은 25살이 되었다. ‘돈 버는 것에만 열중하는 사회에서 아름답게 돈쓰는 사회’로 바꾸어 보자는 25년 전의 소망은 여전히 유효하다. 비영리단체가 활동하기에는 현재 상황이 그리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공익활동’이 시민과 멀어지고, ‘기부’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많아지고 ‘사회문제’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현실을 맞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재단이 처음 생겼을 때 썼던 창립선언문도 여전히 유효하지 않을까.

창립선언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아름다운재단은 공익적 기부문화를 선도하는 재단이다.”

25주년을 맞아 기부문화를 확산하고 공익활동을 지원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우리의 존재이유를 다시 다짐하게 된다. 시민과 공익활동의 가교가 되려는 아름다운재단의 역할이 더욱 절실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재단 구성원이 하는 말이 얼마나 진정성 있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구성원으로서 10년을 일하면서 느낀 아름다운재단에 대한 생각은 이렇다.

“우리 사회에 아름다운재단 같은 곳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도 먼저 도전하고, 남들과 다르게 하고, 영향을 끼치며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25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아름다운재단다운 일들을 하고 있다. 추운 겨울 길거리에서 낙엽을 주워가며 희망은 지지 않는다고 말했던 구성원들이 있는 한 아름다운재단은 계속 아름다운재단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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