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과 수평의 교차점에서
2023년 7월 1일. 15년간의 실무자 위치를 떠나 새로운 경계에 섰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었지만 재단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더없이 낯설기만 했다. 오랫동안 몸에 익은 재단의 공기, 익숙한 메일함, 편하게 웃고 이야기 나누던 동료들은 그대로였지만 나만 달라져 있었다. 마치 한 뼘쯤 큰 언니의 옷을 물려입은 듯 어색한 표정과 몸짓으로 사무총장실로 들어섰다. 동료이자 선배이고 후배였던 매니저, 팀장, 국장들과 서로 어색한 존댓말과 웃음을 보내며 하루를 보냈다. 수평적 관계 속에서 함께 일하던 사람들과 함께하면서도 수직적 위치에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경계에서 균형을 배우기 시작했다. 마치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처럼 왼쪽, 오른쪽 기우뚱거리며 내부선발 1호 사무총장의 자리를 시작하고 있었다.
무대와 발코니
리더가 된 후 가장 곤혹스러운 일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미소짓는 일이었다. 평소 무뚝뚝하기 그지 없는 성격에 잘 웃지 않던 내게, 때마다 미소를 장착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물심양면 도와주던 매니저들이 없었다면 그 힘든 시기를 어찌 보냈을까 싶다. 2년이 지난 지금은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레 미소를 장착할 수 있게 된 건 모두 구성원들 덕분이다.
나를 챙겨주는 매니저들의 시선에서 재단을 바라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리더가 된다는 것은 무대 위에 서는 일인 동시에, 발코니에서 무대를 내려다보는 일이다. 로널드 히페츠 등이 집필한 리더십 이론의 고전인 <Adaptive Leadership>에서는 “리더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 해결이 일어나는 환경을 조성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리더는 단지 방향을 제시하는 존재가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사람이란 의미일 것이다.
조직 안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충돌은 누군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열심히 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서로 입장은 달라도 그 중심에는 각자의 일에 대한 열정과 책임이 있다. 하지만 전체를 볼 수 없으니 가끔 경로를 잃는 것일 뿐.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시선이 달라져서였다. 무대 위에서만 보던 상황을 발코니에서 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리더란 한쪽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입장과 관점을 연결하는 조정자여야 한다. 리더십이란 두 시선을 동시에 가져가는 일이다. 개입할 것과 물러설 것, 말할 것과 침묵할 것을 구분하는 감각은 경험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끊임없는 성찰에서 자라는 것이다. 그렇게 난 두개의 시선을 갖게 됐다.

아름다운재단 옥상 위에서
전략보다 중요한 것들
총장이 되고 재단의 사안이 있어 관련 팀장, 팀원들 한분 한분을 면담한 적이 있었다. 총장으로서는 첫 면담이었다. 그때 여러 구성원들이 각자 자신이 재단에 일했던 만큼 겪어온 여러 시간의 모퉁이마다 쌓인 아픔을 꺼내놓았다. ‘아, 그랬구나. 그럴 수 있었겠구나.’ 그때 오래전 상처에서 벗어나 타인의 상처를 듣고 어루만졌다.
실무자 시절, 아름다운재단은 잦은 리더십 교체로 인한 혼란, 전략의 추진과 구성원들과의 공감대 차이에서 발생하는 간극으로 여러 난관이 있었다. 구성원들은 방향은 잃고, 에너지는 분산되었고 마음 속에 깊은 피로감이 쌓였다. 그 시기를 나는 매니저로, 중간관리자로 지냈다. 십수 년쯤 지을까? 문득 스스로를 돌아보았을 때 마음 밑바닥이 닳고 닳아 없어져 뻥 뚫려 있는 걸 발견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상처였을 것이다. 선의로 했던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위압이 되었고, 타이밍을 놓친 결정은 더 큰 불신을 낳기도 했다. 그 순간의 나는 ‘이게 최선이다’라고 믿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 최선이 누구의 것이었나’ 되묻게 되기도 한다. 리더십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감각의 문제다. 무엇이 맞는 선택인지를 따지기보다 누구에게 어떤 파장이 닿을지를 먼저 읽는 감각이다. 돌아보니 그 감각은 성찰 없이 길러지지 않는 것이었다.
조직을 오래 겪을수록, 일은 전략이 아니라 사람에 의해 굴러간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아무리 훌륭한 전략도, 그것을 실행할 사람의 동기와 마음이 없다면 종이 위에 멈춘다. 리더십은 그 간극을 메우는 일이다. ‘기획’보다 먼저 살펴야 할 것은 ‘기운’이다. 지금 이 조직에 흐르는 공기, 사람들 사이의 에너지, 침묵의 무게, 웃음의 온도 같은 것들이 전략보다 훨씬 중요한 것들이다. 나는 회의를 준비할 때 문서보다 얼굴을 먼저 본다. 어떤 보고서보다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말투, 눈빛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자료는 그날의 흐름과 정보를 주지만 사람은 조직의 체온을 보여준다. 감정은 조직의 소음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가장 정직한 신호다.
리더가 그것을 놓치면, 조직은 의욕 없는 실행에 머물고 만다. 전략이 실현되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 실행력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공감의 부재 때문이다. 그 전략이 ‘왜 필요한지’를 말하지 못하고, ‘무엇이 달라지는지’를 설득하지 못하면 실행은 방향 없이 흘러간다. 침묵을 말로 바꾸고, 저항을 질문으로 끌어내고, 피로를 성찰로 전환시키는 사람, 리더. 그렇게 사람을 이해할수록 전략은 단순해지고, 실행은 유연해진다.
바통은 뒤로 전달된다는 단순한 진리
총장이 된 이후 수많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 중 일부는 이미 내려졌던 결정을 다시 수정하는 일도 포함됐다. 7~8년 전 국장으로 관여했던 일이 다시 돌아왔을 때, 이제 총장이라는 위치에서 그 결정을 다시 마주해야 했다. 그 시절 나름의 최선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다시 조정해야 하는 일도 많다. 요즘 나는 결정에 앞서 두세 번 더 멈춰 선다. 지금의 결정이 1년, 3년 뒤 조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곱씹는다.
이런 수많은 변화와 결정의 과정에 동참해 준 많은 구성원들이 있다. 어려움이 불보듯 뻔한 부서의 장에 도전해 묵묵히 조직을 챙기고 있는 매니저나 전략 변화의 큰 책임을 함께 해준 매니저, 재단의 모금 성과를 도맡아 자기 일처럼 하는 매니저, 새로운 전략적 신사업에 더 큰 도전으로 사업을 추진한 매니저, 그리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허투루 하지 않는 재단의 매니저들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까지 시간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내부선발 1호 총장, 이 자리는 나의 것이 아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다음 사람에게 바통을 넘겨야 한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에는 내가 좋아하는 글귀가 있다. “선정은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善政不留跡).” 리더가 남겨야 할 것은 이름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 자리를 맡아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구조와 리듬이다. 사람은 떠나도 조직은 남는다. 나는 그 단순한 진리를 잊지 않으려 애쓴다.
아직 배워가는 중입니다
리더는 들어야 한다고 배웠지만 정작 나는 먼저 말이 튀어나가는 사람이다. 급한 성격, 순간의 감정, 어디선가 들려온 말에 마음이 출렁이는 순간들. “부화뇌동하지 말라”는 말을 알면서도 여전히 무슨 일이 생기면 심장이 먼저 쿵쾅댄다. 나는 내 부족함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때로는 스스로를 견디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때도 있다. 리더라는 자리는 성숙한 사람이 가는 길이 아니라, 성숙해지려는 사람이 끊임없이 멈추고 돌아보는 길이라는 걸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렇기에 오늘도 조금 더 느리게 말하고, 한 번 더 듣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문장들을 마음속에 삼킨다. 항상 옳지는 않지만 적어도 무게를 감당하고자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놓치지 않으려 한다. 나는 아직 진행 중이다. 하지만 내 흔들림이 조직의 흔들림이 되지 않도록, 내 성장이 함께 일하는 이들의 안전망이 될 수 있도록, 내 길을 내 속도로, 그러나 함께 걸어가는 중이다. 그것이 내부선발 1호의 자세라고 믿는다. 남겨야 할 것은 나라는 이름이 아니라, 사람이 흔들려도 조직은 흐름을 이어가는 리듬이다. 그 리듬을 매일 배워가는 리더로 나는 오늘도 발코니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