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로 알던 나눔이 가슴으로 내려오기까지
안녕하세요. 공익사업팀 박수진입니다. 아름다운재단에 함께한 지 어느덧 8년이 되었네요. 그 시간 동안 제가 가장 깊이 느낀 건 나눔은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이해하는 것이 다르다는 거였습니다. 재단에 오기 전, 저는 펀드레이징과 모금 소프트웨어 관련 일을 했어요. 나눔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론적으로는 익숙했습니다. 하지만 지식과 정보만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다는 걸 점점 더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배우고 싶다는 갈증이 커졌습니다. 그 무렵 아름다운재단과 ‘나눔교육 반디’ 외부 협력 파트너로 인연을 맺었고, 감사하게도 재단에 합류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 나눔교육 반디를 담당하던 연구교육팀에서 시작해, 이후 기부자와 재단을 잇는 기부자소통팀을 거쳐, 지금은 공익 활동을 지원하는 배분 사업 담당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세 부서를 거치며, 나눔이 무엇인지, 기부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지, 그리고 공익을 위한 일이 삶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 조금씩 몸으로, 마음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저의 지난 8년 여정을 돌아보며, 나눔이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나눔의 씨앗을 심는 즐거움 – 청소년과 함께한 ‘나눔교육 반디’
저의 재단 여정의 첫 페이지는 청소년 ‘나눔교육 반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청소년들과 함께한 나눔교육 반디를 통해 나눔의 씨앗을 심는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처음엔 사실 청소년이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졌습니다. ‘중2병’, ‘북한에서도 무서워서 내려오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처럼, 어른들이 만든 편견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함께 하는 반딧불이 선생님들과 “우리가 만나는 청소년만큼은 편견 없이 오롯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다려주고, 환대하고 지지해주자”고 마음을 모으면서부터 진짜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편견을 걷어내고 나니, 혼란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아이들의 진짜 모습이 보였습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잘하는지도, 하고 싶은 것도 모른 채 방황하던 아이들.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기회도, 결정권을 존중받은 경험도 부족했던 이들은 ‘나눔교육 반디’를 통해서 비로소 자신을 마주하고, 조금씩 ‘나와 다른 존재’, ‘우리 동네’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레 자신과 연결된 사회 문제, 주변 사람들의 어려움에 공감하며 작은 행동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의 감동은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2018년 나눔교육 반디 파트너 중간 공유회
어떤 친구는 동네 독거 어르신의 의료비 마련을 위해 벼룩 시장을 열고 모금을 했고,
또 어떤 친구는 치열한 입시 경쟁에서 지친 친구와 자신을 위해 출신 학교 차별 철폐를 위한 서명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사회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그들의 작은 실천은 비록 거창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삶과 사회를 연결하는 의미 있는 첫 걸음이었습니다. 사실 ‘나눔’을 ‘교육’으로 풀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많았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눔교육은 단지 나누는 법을 가르치는 게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시민으로 성장하는 삶의 배움이었습니다. 그리고 변화는 아이들에게만 변화를 가져온 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저에게도 ‘나눔이란 무엇일까’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이 끊임없이 사회의 사각지대를 살피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지원을 고민하듯, 저도 조금씩 깨달았습니다. 나눔은 제도나 의무가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결국 함께 살아가려는 삶의 태도라는 것을요.
따뜻한 마음을 잇는 연결고리 – 나눔의 동반자 ‘기부자소통팀’
청소년들에게 함께 나눔을 이야기하던 제가, 몇 해 뒤엔 이미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분들과 매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나눔교육이 씨앗을 심는 일이라면, 기부자소통팀은 그 나눔 씨앗에 물을 주고, 햇살을 비추는 일과 같았습니다. 기부자 한 분, 한 분 만날 때마다 저는 아름다운재단 정관 속 이 문장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은 우리사회와 이웃을 위해 나눔을 실천하는 일반 시민들이 주인인 시민 공익재단입니다.” 그 말처럼, 시민이 주인인 재단에서 ‘기부자 중심’ 철학을 가슴에 새기고, 각자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진심으로 소통하고 신뢰를 쌓아가고자 애썼습니다.

2019년 기부자 자녀 프로그램 광화문 러닝맨(Learning Man)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간 만났던 수많은 기부자님 중 잊을 수 없는 분들이 계십니다.
열여덟 어린 나이에 난데없이 일본군에 끌려가 겪은 시린 상처와 맞바꾼 5천만 원으로, 자신처럼 부모 없는 아이들이 배움을 포기하지 않도록 재단 1호 기금을 마련해 주신 故 김군자 할머니.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계속 마음이 쓰이고 미안해지는 일들에 대한 속죄와 위로하는 마음에서 나눔을 시작하신 유00 기부자. ‘60일 건강보험증 캠페인’을 보고, 시련의 골짜기 속에 작은 희망의 빛을 주고 싶어서 나눔을 시작한 양00 기부자가 그러했습니다. 이 외에도 ‘더 많이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분, ‘재단이 누구보다 잘 알아서 해줄 거라 믿는다’라며 신뢰를 보내시는 분 등 수없이 많은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이 울고 웃었습니다.

2020년 기부자소모임 서촌드로잉 김미경 작가와 멤버들
무엇보다 기부자님들의 나눔 덕분에 우리 사회에 작게나마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소식을 직접 전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물리적인 거리 때문에 쉽게 만날 수 없는 기부자를 만나러 부산에 내려가기도 했고,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필요할 때는 온라인으로 만났습니다. 때로는 취미 활동을 핑계 삼아 더 가까이 다가갔고, 나눔에 대한 마음이 대를 이를 수 있도록 기부자 자녀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어떻게든 만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기부자님들의 따뜻한 마음과 간절한 바람이 현장에서 어떻게 변화를 만드는지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이 결국 저를, 지금의 자리인 공익 활동 지원 사업으로 이끌었습니다.
나눔의 작은 씨앗이 큰 숲이 되기까지 – 공익활동 배분 사업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사회’
그 마음은 기부자님들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공익사업팀에서 공익 활동가와 단체를 지원하며, 나눔의 작은 씨앗이 숲으로 자라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소외된 이들이 없도록 더디지만, 묵묵히 애쓰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차별과 불평등에 상처받지 않고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를 지키는 사람들.
동물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생명의 공존을 위해 힘쓰는 사람들.
청소년이 경쟁이 아닌 삶 속에서 자랄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찾는 사람들.
누구나 자유롭게 이동할 자유를 위해 외면 받는 권리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
이주 배경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작은 생명을 지켜내는 사람들.
작은 나눔 씨앗이 숲으로 자라나는 길목 곁에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질문하고, 존엄한 권리를 위해 애쓰는 공익단체와 활동가들이 있습니다.

2025 공익콘텐츠제작지원사업 오리엔테이션
기부자들의 선한 마음이 모인 기금은 배분 사업을 통해 공익단체와 활동가에게 전해져 작은 변화를 일구고 있습니다. 배분 사업은 나눔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날 수 있도록 흙을 일구고, 길을 내주는 일입니다.
‘누가 가장 도움이 필요할까?’
‘지금, 누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을까?’
이 질문을 가슴에 품고, 우리 사회 곳곳을 꼼꼼히 살피고 있습니다. 기부금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동료들은 자원이 꼭 필요한 곳에서 닿을 수 있도록 책임을 다하며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공정하고 신뢰받을 수 있도록,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배분위원회와 함께 심사를 진행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기부자의 뜻을 존중하고, 사회의 신뢰를 지키기 위한 아름다운재단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모두를 위한 사회로 가는 길은 더디고,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 사회의 비영리 생태계가 단단하고 건강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저는 이곳에서 매일 배우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나눔의 여정 –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아프리카 격언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나눔교육, 기부자 소통, 배분 사업을 거치며 ‘나눔’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이들에 대한 작은 관심에서 시작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마음들이 모여 미세하지만, 분명한 변화를 만들어 내는 힘이 된다는 것도요. 느리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파동은 그 힘 얻어 결국 멀리 나아갑니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꿈꾸는 건 어쩌면 어리석어 보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때때로 서로를 몰라서 오해하고, 편견을 갖기도 하고, 상대에게 실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누군가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기부자와 공익활동가들을 통해 배우고 있습니다.
많은 분이 “좋은 일 하시네요”라고 말씀해 주시지만, 재단에 일하는 이들은 그저 기부자님들의 따뜻한 마음과 공익 활동가의 열정을 이어주는 작은 연결의 고리일 뿐입니다.
아름다운재단이 그 연결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건,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에 먼저 마음을 내주시고,
그 여정에 함께 하고 계시는 기부자님 덕분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