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이자 기쁨, 어쩌면 그 이상의 무언가

나에게는 조카가 있다. 어린이는 종종 유치원에서 씨앗이나 콩을 받아와 화분에 심는다. 할머니 집 옥상 환경이 식물에게 이롭다하니 그 말을 들은 이후부터 줄곧 화분을 할머니에게 임시보호 맡기고 싹이 나면 알려달라 한다. 수일이 지나면 싹이 트고, 할머니는 그 소식을 전한다. 싹이 튼다는 건 6살 어린이부터 60대 이상 어른에게까지 설렘과 기쁨, 생명이 주는 힘을 전하는 무언가라는 걸 배운다.

카카오톡 메신저 대화 내용을 캡쳐한 이미지입니다. 엄마가 콩싹이 나온 이미지를 전송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손녀에게 싹이 되고 꽃이 된 콩의 근황을 알리는 할머니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아름다운재단은 참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조직이다. 공익활동지원, 사회문제해결, 기부문화확산 3개 분야의 30여개 사업을 하다 보니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곱하기 30 이상인 것 같다. 창립 이후 25년 간 게시글이 자그마치 6천건을 훌쩍 넘는다. 선배들이 쌓아온 자산이자, 재단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내가 속한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이하 브컴팀)의 주요 미션은 이 자산을 관리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생산·확산하는 일이다. 콘텐츠는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누군가에게 가닿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것을 위한 수단 중 하나로 2025 아름다운재단 홈페이지 개편이라는 미션을 받았다.

2025 전략 문서 중 일부 발췌, "향후 기대하는 아름다운재단의모습(상)"이라는 장표의 일부를 잘라 확대한 이미지입니다. 상세에는 콘텐츠플랫폼으로 전환(홈페이지)라고 적혀있습니다.

2025 전략 중 홈페이지 개편 내용

정보만이 아니라 이야기도 전하는 홈페이지, 그것 뭐예요?

2019년 10월, 입사한지 6개월이 채 안됐을 시점부터 이듬해 겨울까지 홈페이지 개편 작업을 했었다. 당시 목적은 홈페이지 접속자가 재단의 정보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게 하는, 기본 기능을 보완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2025년에는 홈페이지가 정보 제공 채널만이 아니라 콘텐츠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문을 받은 것이다.

물론 토스피드, 우아한형제들 기술블로그, 네이버피셜처럼 별도 콘텐츠플랫폼을 개설해 홈페이지에 연결하는 방법도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방식은 현재 아름다운재단 홈페이지 접속자 규모를 고려했을 때 트래픽이 분산되며 재단의 매력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에 적합하지 않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혜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의 든든한 동료, 콘텐츠 기획자 박주희 매니저와 대책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싹은 저절로 탄생하지 않는다. 필요한 게 많거든

우리의 목표는 두 가지였다.

1️⃣ 재단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많이&쉽고&재밌게 보여줄 것
2️⃣ 정보제공이라는 홈페이지 본연의 기능 또한 놓치지 않을 것

어떻게 이 두 가지를 해낼까? 막막함 속에 홈페이지라는 속성을 차치하고, 콘텐츠플랫폼부터 구상해보기로 했다.

1) 작명이 필요해

🌳 CI의 씨앗나무를 활용해서 아름다운재단은 단단히 뿌리 내리고 공익단체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메시지를 강조할까요? -RE: 항상 하던 말이라 너무 진부한데요?🥱
🐢 건강한 거북이는 평생을 산대요! 아름다운재단도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천천히 공익의 곁에서 함께하겠다고 하면 어때요? -RE: 거북이는 너무 뜬금 없는데요?🤔
🏃 지금 하고 있는 내부 프로젝트의 기획의도를 확장해서 아름다운재단이 공익섹터의 ‘페이스메이커’가 되겠다고 하면 어떨까요? -RE: 너무 재탕 아니에요?🙅‍♀️

그 밖에 공개할 수 없는 수준의 아이디어는 생략..

기획을 해본 분들이라면 이름과 컨셉을 정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사람을 미치게하는지 잘 알 것이다. 이성을 잃고 말도 안되는 농담을 주고 받다 보면 기어이 무언가 나오고야 마는데, 우리에게는 그게 싹이었다. 조그만 씨앗에서 울창한 나무가 되기까지, 변화의 생애를 상징하는 CI의 씨앗나무에서 착안해 레거시를 유지하면서도, 새롭고 상큼한 무언가가 필요하던 차였다. 회의실에서 몽롱한 머리를 부여잡고 “싹..은 어때요?”라고 읊조리던 첫 틔움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종이노트에 이런저런 메모를 남기며 브레인스토밍한 흔적을 담은 이미지입니다. 싹, 주황색, 씨앗, 싹, 씩씩해, 쑥쑥 등의 메모가 적혀있습니다.

낙서처럼 보이지만 아이디어 회의 때 적은 메모

 

2) 명확한 의미와 전략이 필요해

핵심 키워드를 결정하자, 자연스럽게 우리가 표현하고 싶었던 바를 기획의도로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 아름다운재단은 공익섹터의 도전이라는 ‘씨앗’과 변화라는 ‘열매’의 순환을 돕는 조력자임(아름다운재단의 ‘마중물’ 전략과 연결 🔗페이지 링크)
🌱 우리는 씨앗의 결과물이자 열매로 가는 필수 단계인 ‘싹’의 역할에 주목, 비영리 공익섹터가 싹을 틔우고, 키우며 변화를 만드는 과정을 전달하는 매거진을 만들겠음
🌱 이 매거진은 ‘싹’이 돋아나듯 콘텐츠가 계속 올라오는 곳임

그렇게 <싹 매거진>의 존재의 이유를 정리하고 나니 홈페이지가 콘텐츠플랫폼으로 기능하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이 정해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글을 담을 3가지 카테고리를 정해 콘텐츠의 추구미를 구체화했다.

마음은 콸콸콸, 우리 일은 싹싹싹, 변화는 주렁주렁 3개 카테고리의 의미와 사이클 구조를 설명한 도표입니다. 순서대로 연결되어 있음을 설명합니다.

각 카테고리의 의미와 사이클

3가지 카테고리는 마음을 쏟으면 곧 일할 동력이 되고, 그 동력이 변화의 싹에서 열매로 이어지길 바라는 아름다운재단의 지향점이자 사업의 선순환을 의미한다.

3) 매거진 안에 들어갈 글이 필요해

최근 몇 년간 아름다운재단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들은 대부분 지원사업의 진행 상황을 공유하는 목적으로 게시되었다. 물론 의미가 있고 필요하며 이러한 글을 선호하는 독자가 분명 있다. 하지만 우리가 콘텐츠플랫폼을 만들어야 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수행하고 있는 사업뿐만 아니라 아름다운재단만이 쓸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의제와 사회문제, 조직문화에 관한 살아있는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대학 진학의 꿈을 실현하고자 모인 자립준비청년을 만난 담당자의 소회와 관점, 청소년부모의 집 안에 들어가 살림살이를 도왔던 활동가, 방문의료가 필요한 어르신의 집으로 직접 찾아가 건강 상태를 진료한 의사 선생님만이 들려줄 수 있는 그 사업의 의미, 직접 발로 뛰며 소규모 공익단체 사무실을 방문한 매니저의 가치관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린다면 그건 곧 ‘사람’이 지닌 힘과 온기를 믿는 아름다운재단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일일 것이다.

"우리 일은 싹싹싹" 카테고리에 속한 4개의 글제목과 대표이미지를 캡쳐한 이미지입니다. 차례로 언론홍보, 8년 근속 이야기, 웹페이지 제작기, 유튜브 채널 개설 이야기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일하는 과정과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 <우리 일은 싹싹싹> 카테고리 글 모음

그렇지만 내부 구성원에게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를 털어놓으라고 요청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요청을 들은 사람은 누가 내 개인사에 관심이나 있을까 싶고, 공식적인 재단 홈페이지에 일기를 올리라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구성원이 걱정과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적극적으로 콘텐츠 작성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한 내부 프로젝트가 바로 ‘페이스메이커’다.(후후레터 vol.48편 참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 결단코 TMI(Too Much Information: 굳이 알 필요 없는 쓸데없는 정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인터넷 상 축약어)가 아니며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는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점을 알리고, 그 과정을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올해 1월부터 진행해오고 있다. 그러고 나니 어느새 <싹 매거진>에는 아름다운재단 구성원이 겪는 일의 기쁨과 슬픔부터 본인이 하고 있는 일과 재단의 가치를 자랑하는(?) 글이 다수 올라온다.

액자가 하나 있고, 안의 그림은 나무한그루가 있으며 사람들이 지문으로 찍은 새싹 모양들이 돋아나 있는 형상입니다.

아름다운재단 15주년 당시, 선배들은 이미 싹의 의미를 알았더라고

4) 새로운 비주얼이 필요해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브랜드 컬러 주황색을 짙게 사용하고, 비전의 첫 문장을 활용해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으니까 멈추지 않고 이야기해요!”라는 말을 배치하기로 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를 꾸준히 전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것. 그리고 <싹 매거진> 카테고리별 최신글을 다량 배치해 “멈추지 않고 이야기”하는 모습의 증거로 보여주기로 했다. 채널로서 힘을 키울 수 있도록 매거진 자체에 대한 홍보와 확산을 병행하는 것 또한 전략으로 설계해 인스타그램도 함께 새 단장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beautifulfund_ssak)

이렇게 기획 방향과 전략을 설정하자마자 웹 에이전시 디메인을 만났다. 디메인은 웹사이트 및 웹페이지 디자인, 개발을 전문으로 한다. 아름다운재단의 기부신청 웹사이트와 2023, 2024 연차보고서 웹페이지 등을 함께 제작한 브컴팀의 든든한 협력사다. 기획 방향에 대한 객관적이고 명확한 의견을 주는 우리의 첫 번째 대중이기도 해서 킥오프 미팅은 항상 설렘 반 긴장 반이다. 다행히 “싹”의 의미와 기획의도를 찰떡 같이 이해해주셨고, 즉시 상세 화면 설계와 디자인 시안 제작에 들어갔다.

아름다운재단 홈페이지의 새 모습 중 상단 일부를 캡쳐한 이미지입니다. 홈화면, 싹매거진 화면입니다.

아름다운재단 홈페이지 홈 화면과 싹매거진의 첫 화면(하단 화면 생략)

씨앗, 물, 싹 열매를 형상화한 아이콘 이미지를 나열한 이미지입니다.

홈페이지 곳곳에 사용한 4가지 컬러에는 각각 씨앗, 물, 싹, 열매를 상징하는 모티프를 배치했다.
변화의 열매를 향하는 아름다운재단 사업의 선순환을 상징한다.

 

흙 속 씨앗이 싹을 틔우고 변화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을 때까지

창립 25주년을 맞아 진행한 이번 홈페이지 개편은 아름다운재단의 이야기를 세상에 잘- 전하기 위한 첫 걸음이자 시작이다. 이야기를 담는 그릇을 만드는 데에 8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콘텐츠를 만들고 퍼뜨린다. 틔우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이야기가 오늘도 아름다운재단 60여명 구성원의 손 끝에서 돋아나고 있다. 브컴팀은 농부가 되어 그 싹이 자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밭을 일구고 머리를 쥐어 뜯는다.

성실하고 분주한 아름다운재단의 홈페이지와 싹 매거진이 어느새 울창한 나무가 되어 변화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기를 바란다. 나의 6살 조카가 할머니에게 화분을 맡기고 그 사실조차 잠시 잊고 지내는 사이, 어느새 뾱하고 돋아나 싱그러운 연둣빛을 내뿜으며 본인의 존재를 알리는 싹처럼.

작은 연두색 화분을 들고 있는 두 손을 확대한 사진입니다. 안에는 흙만 있고, 편집자가 임의로 씨앗 일러스트 그림을 합성해 마치 싹이 돋아난듯한 모습입니다.

원본 사진에는 없던 싹을 합성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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