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안내 문자만 100여 개가 쏟아지던 날… 

2025년 7월 16일 수요일, 많은 비가 예보되니 유의하라는 안전 안내 문자가 왔다. 당시 재단 사옥 공사로 재택근무를 하던 나는 부모님이 걱정되어 충청도 본가에 있었다. 부모님은 늦은 장마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7월 17일 목요일 새벽 12시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갑작스럽게 쏟아진 폭우에 안전 안내 문자가 10분 간격으로 요란스럽게 울렸다.

안전 안내 문자 100여 개…

밤새 울리는 알람 소리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낮은 지대에 주차한 이웃들은 급히 한 명씩 나와 차를 다른 곳으로 옮겼고, 마당의 짐도 함께 옮기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부모님 출근길의 풍경은 참담했다. 집 앞 하천이 범람해 도로는 통제되었고, 겨우 갈 수 있는 길은 진흙과 부러진 나뭇가지, 물에 휩쓸려온 쓰레기들로 가득했다. 하천 옆 동네는 더욱 처참했다. 침수된 집과 비닐하우스들을 본 순간 우리 부모님은 ‘평범한 하루가 순식간에 공포로 바뀌었다’고 했다.

물 없는 여름, 불가능한 일상

집으로 돌아오자, 지하수 문제로 흙탕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금세 단수가 이어졌다. ‘며칠이면 해결되겠지’ 생각했는데, 무려 15일이나 계속되었다. 무더운 여름날, 물 없이 생활하는 건 전기 없이 사는 것과 비슷했다. 샤워하는 것도, 요리하는 것도, 화장실 사용하는 것도 불편해졌다.

지하수 문제로 흙탕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자체에서 생수를 지원해 주었지만 언제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우리 동네는 ‘시골’이라 불리는 지역임에도 흔히 생각하는 이장님의 안내 방송이 없었다. 생수가 왔다는 소식도, 단수가 어떻게 해결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인내하며 기다려야 했다. 이사 온 지 1년도 안 된 우리 가족은 연고도 없이 소식으로부터 고립되었다.

한줄기 빛과 같았던 이웃의 한마디, ‘똑똑똑, 지금 물 나눠준대요’

친한 이웃이 없어 카드 발급이나 우편물 외에는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없었다. 오랜만에 들려온 노크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처음 보는 이웃이 자신이 아는 모든 소식을 전해주었다.

지자체에서 지원받은 생수

“지금 정자에서 생수 나눠준다고 해요! 얼른 받으러 가세요.”
“단수가 생각보다 길어져서 숙소 제공해 준다고 해요. 00호텔로 가보세요. 혹시 잘 모르면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집 앞 목욕탕은 다행히 물이 나오고 지역 주민은 2천 원 할인해 준다고 해요.”

외지인과 다를 바 없던 우리 가족은 여러 소식을 여러 이웃을 통해 전해 들었다. 심지어 단수가 길어지자 제공해준 임시 숙소도 누군가가 자발적으로 나서 준비해준 선행이었고, 재난 속 가장 빠른 안내는 이장님의 안내 방송도, 온라인 속 정보가 아닌 이웃의 입소문이었다. 차가 있는 우리는 추가로 생수를 구매하는 것도,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임시 숙소 가는 것도,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나가는 것 모두 어렵지 않게 가능했다.

하지만 우리 집 앞 이웃집 할머니-할아버지 댁은 차가 없어 지자체에서 지원받은 물이 유일했다. 대피소로 배정된 마을회관 또한 거리가 멀어 집과 밭을 놔두고 가기엔 어려운 상황인 것 같았다. 무엇보다 생계 터전인 밭과 축사가 망가져 어르신들의 신체적 고단함과 심리적 절망감도 커보였다.

폭우 피해 이후, 우리가 새롭게 배운 것들

이번 경험을 통해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지 배웠다. 그 무력감은 노인, 장애인 등 취약한 이웃들에게는 훨씬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대피소까지 먼 거리를 가는 것도, 물을 사러 대형마트에 가는 것도 쉽지 않거니와 재난 문자나 재난 피해 지원금(특별지원금) 등을 온라인으로 신청하는 것도 어렵다.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정보가 닿지 않고, 지원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있다.

여기서 필요한 게 바로 아름다운재단과 같은 공익단체 아닐까. 얼마 전 아름다운재단이 경북 산불 피해 지원사업으로 진행한 ‘작은변화 만물트럭’ 현장에 다녀오게 됐다. 마을회관에 흩어져 있는 이재민 어르신에게 트럭을 끌고 찾아갔다. 일방적으로 구호품을 전달하지 않고, 주민들이 직접 원하는 옷과 양말 등을 고를 수 있도록 준비했다. 현장의 상황을 세심하게 살피고 필요한 물품을 신속하게 대응한 긴급 지원이었다.

작은변화 만물트럭

엉망이 되었던 부모님의 동네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가며 복구할 수 있었다. 단수 해결, 농작물 정리, 침수된 가구를 내놓고 집 안을 정리하는 일은 모두 사람의 손을 필요로 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람의 손’을 체계적으로 모으는 일 아닐까? 여지없이 많은 비가 퍼붓는 9월,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재난 앞에서 무력하게 있기보다 현장의 이해가 높은 공익단체들이 쌓은 경험을 자산으로 쌓아두면 어떨까? 개인의 선의를 모아 긴급지원을 진행하고, 이러한 과정에서 얻은 배움이 공적 지원에 반영될 때 우리 사회의 재난 대비 및 복구 능력 또한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댓글 정책보기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