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활동가 안전망 지원사업
아름다운재단은 청년활동가의 사회, 경제적 기초안전망 체계를 구축해 지속가능한 활동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경제적 어려움을 다소나마 해소할 수 있는 지원금을 지급하고, 사회적 자본이 될 수 있는 동료, 선배활동가와의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활동의 미래 비전을 설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지원사업에 참여한 활동가의 시선으로 청년 활동가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새벽에 깨서 창밖을 보니 온통 눈이 내려 있었다. 숙소 옆 주택의 옥상, 도로와 비닐하우스, 마을을 둘러싼 산자락까지 흰 눈으로 덮였다. 지리산에 몇 년 만에 내린 눈이라고 했다. 나와 S와 G는 괜시리 들떠서 숙소에서 교육 장소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눈이 햇볕을 사방으로 반사해서 눈이 부셨다. 눈 내린 논두렁에 발자국을 찍고, ‘쇼미더머니’와 ‘나는 솔로’ 얘기를 하고, 전깃줄에 눈뭉치를 던져댔다. 동료들과 야외 간이의자에 앉아 눈 내린 지리산을 바라보며 컵라면을 먹고, 신발과 양말이 축축해질 때까지 혼자 눈길을 걸었다. 2년 전 청년활동가 안전망 지원사업 일정으로 지리산에 머물렀던 기억을 떠올리면 배시시 웃음이 난다.
<청년활동가 안전망 지원사업>은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과 ‘아름다운재단’에서 2023년부터 시행해 온 사업이다. 활동가 경력 3년 미만의 청년들이 공익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도록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이들이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준다. 나는 이 사업이 생긴 첫 해에 참여하게 되어 지리산에 왔고 반짝이는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올해 안전망사업에 참여한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
두 청년이 활동가로서 살아가는 모습과, 안전망사업에 참여하며 어떤 경험을 했는지 담아보았다.
인터뷰어 / 정우석 활동가 (청년활동가 안전망 지원사업 1기 참여자)
인터뷰이 / 김태환(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 진수은(곶자왈사람들 활동가)

우석: 두 분 소개 부탁드립니다.
수은: 저는 제주도의 ‘곶자왈사람들’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진수은이라고 하고요. 제주에 ‘곶자왈’이라는 화산 폭발을 하면서 만들어진 용암 지대 위에 생긴 숲이 있어요. 숲이 엄청 울창하고 희귀한 동식물, 멸종 위기종들이 많이 사는데 이곳에 골프장이나 공장이나 호텔이나 유원지를 지으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희 단체는 난개발을 막고 고장을 보전하는 다양한 활동, 연구나 조사나 교육이나 또 직접적으로 시민 모금을 해서 땅을 사는 활동도 하고 있고요. 올해 20주년 기념으로 곶자왈의 땅 두 군데를 샀습니다. 그중 한 곳에는 멸종 위기종인 제주 고사리삼이라는 식물이 살고 있어요. 전 지구에서 곶자왈의 일부 지역에만 있는, 멸종위기 1급 생물인데요. 그곳을 보존하는 성과가 있었죠.


태환: 저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체에 2022년부터 합류해서 활동을 하고 있고요. 줄여서 ‘남함페’라고 불러요. 스스로를 성평등 활동가라고 소개하는 편이고 젠더와 얽혀있는 활동은 대부분 하는 편이에요. 글을 쓰고 모임을 기획하고 교육을 나가기도 하고, 조직을 운영하는 조직가, 행정가의 역할도 합니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에서는 공동대표로 활동을 하고 있고 주로 조직을 운영하는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희 조직이 되게 특별한 게 누구도 월급을 받지 않거든요. 본업들이 다 따로 있고 저도 월급을 받지 않고 전부 다 자원봉사를 하고 있고요. 조금은 더 열심히 하고 싶다는 분들이 운영위원으로 모여 있어요.
저는 운영위원들을 데리고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데 회의를 주재하고 사업을 기획하고 외부에서 사업 제안이라던가 연대 요청이 오면 그것도 응대를 해요. 일반적인 조직으로 따지면 사무국장이 하는 역할들을 제가 다 하고 있죠. 운영하다 보면 느끼는 건 ‘전업활동가란 게 참 쉽지 않구나!’ 단체를 운영하면서 내가 먹고 살 만큼의 돈을 버는 게 정말 어렵다는 걸 느껴요.

공감하고 공유하고픈 가치, 논리적이고 따뜻하고 납득가능한 위로
우석: 활동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요?
수은: 저는 원래 시민단체 영역에 관심이 없었는데요. 제주도가 고향이다 보니까 집에 들를 때마다 경치가 바뀌어 있고, 풍경들이 바뀌어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니까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제주도에 사는 사람들은 고층 건물 들어서고 해안가에 카페 생기는 변화를 되게 반가워했어요. 저는 제주도의 매력은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개발을 막는 움직임이 없을까 처음으로 생각하게 된 거죠.
졸업을 하고 제주에 다시 내려왔는데 제 2공항 건설 문제가 화제가 됐었어요. 그때 이 문제 때문에 활동가분들이 거리에서 서명 운동을 활발하게 하셨거든요. 전단지를 읽었는데 되게 심각한 문제란 생각이 들었어요.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동참하고 싶단 생각이 들어서 제주 녹색당에 가입을 하게 된 거예요. 도청 앞에 천막 농성할 때 천막 지킴이 당번으로 하룻밤 자기도 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도청 앞에서 피켓 시위하고, 이런 자잘자잘한 것들이 쌓여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졌어요.
돈을 없어서 회사를 다녀야했는데 출퇴근에만 3시간이 걸렸고 너무 바쁘다보니까 활동을 잠깐 다 멈췄었어요. 회사를 그만두게 된 건 그 곳에서 추구하는 가치가 저한테 맞지 않았어요. 회사에선 누군가에게 광고를 하고 팔아야하는데 제가 추구하지 않는 회사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게 너무 힘든 거예요. 그만두면서 어떤 곳에 이직을 해야 될까 고민을 많이 하게 됐어요. 내가 공감하고 공유하고 싶은 가치들을 사람들한테 알릴 수 있는 곳에서 더 편하게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민단체, 환경단체에 들어가야지’ 하다가 곶자왈 사람들의 활동가가 된 거죠.

태환: 대학 전공은 사회복지인데요, 당시에 사회복지를 선택했던 이유는 사실 중학교 때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거든요. 학생들이 나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을 했었고 학교 사회복지사를 하고 싶어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거예요. 대학교 다니며 책 모임을 했는데 우연한 계기로 어떤 친구에게 <페미니즘의 도전>을 추천받은 거예요.
그 책을 읽고 너무 좋았던 건 학교 폭력의 상처가 계속 남아 있었거든요. 저를 많이 때렸던 사람들이 남자답지 못하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예를 들면 남자가 왜 무릎을 꿇냐, 남자새끼가 왜 우냐, 이런 걸 가지고 엄청 공격했었기 때문에 들은 말들이 자기혐오로 강하게 남아 있었어요. 물론 제가 용기를 내서 신고를 했고 처벌이 되고 정리가 잘 됐는데…
우석: 용기 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진짜 멋지셔요!
태환: 제가 굉장히 마른 체형이었어서 내 몸에 대한 혐오도 좀 있었고 스스로의 남성답지 못했던 점들이 싫었어요. 학교 폭력의 경험과 내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게 계속 쌓여 있어서 힘들었는데 그 책에서 처음으로 내가 왜 그렇게 힘들어 하고 있었는지, 제 자기혐오를 논리적인 언어로 따뜻하고 납득 가능하게 설명해 줬어요. 그때까지는 그 누구의 말도 그 어떤 책도 위로가 되지 않았거든요.
우석: <페미니즘의 도전>이 내가 왜 힘들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해 줬다고 했잖아요. 이 얘기를 조금만 자세히 해주시겠어요?
태환: 페미니즘은 기본적으로 개인탓을 하지 않거든요. 어떤 문제를 바라볼 때 구조적으로 해석하려는 거고, 남성다운 것과 남성답지 못한 것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만들어져 있는지를 설명해 준 거죠. 예를 들어 남성다우려면 이분법적으로 사고해야 돼요. 남성과 여성을 분리해야 되거든요. 그 과정에서 당연히 퀴어들은 혐오의 대상이 돼요. 왜냐하면 이분법에서 논외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생물학적인 남성 집단에서 소위 말하는 여성적인 특징을 자꾸 보여 주면 그 남성 집단 안에서는 우리랑 다르고 이상하다고 배제되고, 그 그룹 안에 들어가야 남성으로서 인정받고 나의 존재가 인정받는 거죠. 여성혐오가 이분법적인 틀 안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는 데서 발동한단 걸 아주 논리적인 언어로 연구자의 시점에서 설명을 해 주셨던 거죠.
졸업 즈음에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성평등 인권 분과 활동도 조금 했었어요. 그 분과 담당 실무자가 지금 ‘남함페’의 창립자예요. 그 분이 단체를 만들었을 때부터 계속 같이 하자고, ‘이 활동 너무 좋아요, 태환 같은 사람 꼭 필요해요’라고 했었는데 부담스러웠고 그때는 제가 남성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해도 될지 한창 고민하던 시기이기도 해서 안 했어요. 계속 고민하며 활동을 하다가 2022년에 당시에 윤석열과 이준석이 여가부 폐지 정책을 갖고 나오면서 난리가 났어요.
그때가 대선 직전이었어가지고 남성 페미니즘 활동가들이 모여서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되겠냐’고 하면서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기자회견을 두 차례 했거든요. 거기 모였던 친구들이 ‘우리가 필요한 목소리를 내긴 했는데 모인 사람들이 이대로 흩어지기엔 너무 아깝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 사람들이 그대로 ‘남함페’로 옮겨갔어요.
단체가 사건 사고가 되게 많았고, 한 달에 한 번 하는 회의에 활동가 한두 명 모일 정도로 사람이 너무 없던 때여서 거의 망하기 직전이었거든요. 갑자기 확 불이 붙고 뭘 해볼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시작이 됐던 것 같아요. 저는 2022년에 처음 남함페로 들어와서 활동을 하다가 2023년부터는 공동대표를 하고 있습니다.

70%의 기쁨과 30%의 불안
우석: 각자 활동하면서 ‘활동이 할 맛 난다, 가슴이 두근두근한다’고 느끼는 때가 있다면 말씀해 줄 수 있나요?
수은: 이 질문은 대답하기가 조금 어렵게 느껴져요. 기쁜 일도, 보람찬 일도 많지만 나의 활동으로서 기뻐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어요. 우리 단체의 활동에서 성과가 있었을 때 사람들이 ‘덕분에 곶자왈을 지킬 수 있었고 너무 감사하다’고 하면 활동가로서 뿌듯하고 힘은 많이 되지만 나 개인의 성취라는 생각은 잘 안 드는 것 같아요.
최근에 있었던 일은 곶자왈 지대에 공업단지가 들어온대서 마을 주민들이 반대 모임을 결성하고 우리 단체도 이곳이 희귀종이 있는, 생태적으로 보존 가치가 높은 곳이란 발표를 하며 개발을 막아냈어요. 그런데 같은 마을에서 (다른 분들일 수도 있는데) 태양광 사업을 하겠다고 그곳을 또 개발한다고 하는 거죠. 개발 문제란 게 하나의 문제를 막아도 다른 문제가 있고 또 있으니까 안심할 수가 없어요. 활동하면서 가장 뚜렷했던 성과는 그 공업 단지 이전 중단이었는데 또 다시 개발이 된다니까 ‘이거를 일의 보람이라고 할 수 있나’란 생각이 들고,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우석: 환경운동에 100% 만족도는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선생님의 활동에서 개발하려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항상 있을 테니까요.
수은: 그래서 70%의 기쁨과 30%의 불안을 항상 가져가야 되는 것 같고, 그래도 이번에 땅을 사기 위해서 모금 운동을 엄청 열심히 했었거든요. 저희가 매입한 지역은 개발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그거는 되게 뿌듯한 성과인 것 같아요.
우석: 곶자왈사람들 활동을 소개한 유튜브 영상을 봤는데 이따금씩 회원분들이랑 곶자왈을 답사하시더라고요. 곶자왈을 탐방할 수 있다는 건 이곳 활동가들만 누릴 수 있는 혜택 같았어요. 곶자왈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대낌도 있겠지만.
수은: 그렇죠. 저도 곶자왈 갔을 때 느껴지는 것들이 있고, 탐방로가 있는 곳도 물론 아름답지만, 사람 발길이 닿지 않은 숲도 있거든요. 그런 야생의 곶자왈을 만나는 순간이 진짜 심장이 뛰고 동력이 되는 순간인 것 같아요.


회색 지대에서 발견하는 또 다른 가능성
우석: 태환님도 활동하면서 언제 보람을 느끼냐는 질문이 어렵게 느껴지셨어요?
태환: 저의 뿌듯함은 활동을 하면서 다른 사회운동가 분들이나 특히 페미니즘 활동하는 운동가들에게서 ‘남성 페미니즘 활동가들이 더 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였어요. 왜 특별히 더 보람차냐면 일종의 이중적인 투쟁도 있는 거예요. 남성들을 성평등의 세상으로 초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성분들 중에서도 왜 남성들이 페미니즘 활동을 하냐고 생각하시는 분들 꽤 있거든요.
근데 우리 활동이 그런 생각들을 조금은 뒤집을 수 있게 도움을 드렸구나, 남성들이 페미니즘 활동하면 다른 가능성이 있단 걸 보여드릴 수 있을 때 제일 보람이 크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세상의 절반은 남성이고 절반은 여성(물론 퀴어와 다양한 사람들이 있지만)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세상은 50% 사람의 생각으로만 바뀌지 않을 거니까, 양쪽에 있는 사람들보다 가운데 회색 영역에 있는 사람들을 더 많이 초대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우석: 회색 영역 사람들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분들인가요?
태환: 예를 들면 페미니즘에 대해 일차적으로 부정적인 인상을 가진 분들, 극단적으로 안티 페미니스트가 아니어도 페미니즘 얘기하면 불편해서 얘기 안 했으면 좋겠다는, 페미니즘에 무관심한 분들이 있어요. 그거는 자기 삶과 페미니즘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니까 그럴 수 있는 거거든요. 근데 남성의 삶에도 페미니즘이 연결되어 있단 걸 알려드릴 때 ‘아, 이게 관련이 있었군요’ 하며 관심을 보여요.
사실 저희가 처음 남성들을 설득할 땐 주변 여성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고 했거든요. 보통 그렇게 효과적이지 않았어요. 어찌 됐건 타인이기 때문에. 근데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라고 물으면 달라져요. 예를 들면 군대 문제, 또는 가부장으로서 바깥에서 돈을 벌어야 하는 문제, 가사노동의 문제, 그 다음에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이 굉장히 높은데 외로움의 문제도 다 남성성과 관련이 있는 건데 그게 페미니즘 관점에서 연결이 된단 말이죠. 그분들 삶에 연결될 수 있는 것으로 가까이 다가가려 했을 때에 회색 영역에 있는 분들이 납득하기 시작하는 거죠. 그럴 때 뿌듯함을 많이 느껴요.

다양한 동료 활동가를 만나 마음을 여는 시간
우석: 활동에 대한 절절한 고민이 느껴집니다. 안전망 지원사업에 대해서 얘기를 해 보면 좋으실 것 같은데요. ‘마음짓기학교’ 참여하고 나서 어떤 걸 느끼셨나요?
※마음짓기학교: 지리산에서 잔행되는 3박 4일간 네트워킹 프로그램으로 청년활동가들과 서로 연결되는 경험을 만드는 시간
수은: 사실 활동가라는 직업적인 정체성이 되게 약했거든요. 활동가는 거창한 의미가 있는 거라고 생각을 해서 어디 가면 활동가가 아니라 ‘환경단체에서 일한다’는 식으로 말을 하게 되고. 제가 부족하다고 느껴져서 제 입으로 활동가라는 말을 하기가 되게 부끄러운 거예요. 마음 짓기 학교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계속 얘기를 하다보니까 같은 의제를 갖고 활동하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비영리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 고민이 사실 다 비슷한 거예요. 서로 잘 모르니까 오히려 더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어요.
같은 지역에 있으면 누가 누군지 다 아니까, 좋은 얘기든 나쁜 얘기든 솔직하게 얘기하기가 힘든 것 같아요. ‘제가 활동가인지 잘 모르겠다’는 얘기를 하는 것도 조금 조심스러워요. 지역 내에서 얘기를 하면 저희 단체에 있는 선배 활동가들도 아니까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사실 단체활동에서 저 혼자 느끼는 어려움이고 고민인데 외부에서는 ‘선배들이 해야 할 역할을 하지 못한 건 아닐까’라는 식으로 오해를 할 수 있는, 저희 선배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도 있는 거죠. 내가 한 말이 곡해될까 봐 그런 것 같아요. 마음짓기학교에서는 얘기하고 고민 나누는 게 자유롭게 되는 분위기여서 점점 마음이 놓였어요.
우석: 특정한 활동가 상에 날 끼워 맞추는 게 아니라 그 활동에 대해서 내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활동은 내가 하면서 내가 느끼는 거잖아요. 사실 사람 속이 복잡하니까 일하면서 마음이 부대낄 때도 있고, 회의감이 들 때도 있고 내가 활동가가 맞나 의문이 들 때도 있잖아요. 그런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지 스스로도 자기 마음을 알게 되면서 활동을 이어 갈 수 있는데, 이게 안 풀린 채로 있으면 꿍하게 답답한 채로 활동하게 되고.
수은: 맞아요. 일반 회사에 다니거나 영리적인 직업을 갖고 있는 친구들 입장에서는 비영리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왜 이 직업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것부터 이해하기 어려워해서 제 입장에선 편하게 얘기하기 어려운 거죠. 그러니까 활동가라는 정체성에 대해서 자유롭게 고민을 나누고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저는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 마음짓기학교가 끝나고 나서는 제가 활동가라고 말을 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이게 마음짓기학교에 참여하면서 얻은 거죠.
우석: 태환 님은 마음짓기학교에서 지낸 3박 4일이 어땠나요?
태환: 처음에 명단을 봤을 때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궁금했거든요. 낯선 단체들도 있고 활동 주제도, 지역적으로 다양해서 더 궁금해지는 거예요. 어느 분야에서 활동을 하다 보면 똑같은 사람 계속 만나고 새로운 사람 만날 기회가 정말 적거든요. 다른 주제로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갔고 그 기대감이 충족됐어요. 환경, 평화, 동물, 북한인권… 정말 많았고 그래서 즐거웠어요.


응원과 지지로 만든 너와 나의 연결고리
우석: 청년활동가 안전망 지원사업 과정 전체에서 기억에 남는 활동가가 있나요?
수은: 저는 ‘펭귄의 날갯짓’ 이광호 활동가님. 펭귄의 날갯짓은 정신 질환을 갖고 있는 분들이나 고립은둔청년을 지원하는 단체인데요. 여기 와서 이런 단체가 있는지 처음 알게 됐어요. 어떻게 보면 저도 당사자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단체의 활동이 되게 인상 깊었어요. 본인 소개하실 때부터 나는 이런 정신질환을 갖고 있고, 그래서 이런 활동들을 하고 있다고 하셨거든요.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있어요. 저는 ADHD도 있고 우울증, 불안장애도 있고 공황장애도 있는데 그런 얘기를 꺼내면 나약하다, 일을 잘 못할 것 같다, 잘 적응하지 못할 것 같다는 편견들이 있어서 자유롭게 말하기가 어려워요. 광호님이 거침없이 얘기를 하시니까 이 단체가 너무 궁금했고,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도 이런 단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당사자로서 정신질환이 있는 분들이나 고립은둔 청년들이 이런 단체를 통해 지지받고, 편견 없이 한 명의 사람으로 인정받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거죠.
태환: 저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나비님. 감사했던 게 저희 활동에 되게 관심 갖고 응원해 주셨어요. 페미니즘 활동가들이나 단체들이 저희 남함페에 보내는 시선을 걱정할 때가 꽤 있었어요. 남함페 처음 만들었던 이유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싶어 하는 남성들이 갈 데가 없었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면 페미니즘 회원 모임이나 책 모임 하는 단체는 주로 여성 단체잖아요. 남성이 여성 단체 모임 가면 남성으로서의 고민이나 잘 모르는 여성의 삶을 말하기가 되게 조심스러운 거죠. 말 잘못하면 하나하나가 다 상처고 실수고 ‘잘못하면 어떡하지’ 이런 두려움이 있거든요. 그래서 남성들끼리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한 거란 말이예요. 근데 외부에서 봤을 때는 남자들끼리 모여서 페미니즘 한다고 하면 한계점이 많이 보일 거거든요.
그런데 나비님은 우리 활동을 너무 응원하고 지지해 주셨고 저도 한사성에 관심이 많아져서 한사성 후원의 밤 할 때 여기는 꼭 후원해야 한다고 우리 운영위에 강력하게 주장도 했죠. 그렇게 조금씩 동지의 느낌을 만들어 갈 수 있었고 지금도 종종 연락을 해요. 마음 짓기 학교 아니었으면 연결고리가 없었을 거예요.


‘말해줘서 고마워’, ‘고민해도 괜찮아’
경험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공감
우석: 마음짓기학교에서 나눴던 대화나 일화 중에 기억나는 게 있나요?
수은: 그러니까 돈이 없는 것에 대한 경험이었어요.(웃음) 돈이 없는 활동가이자 직업인이자 사회인으로서의 걱정과 고민과 경험들을 나눴고요. 너무 개인적인 얘기라 부담스럽지 않을까 했는데 오히려 이런 얘기를 나눠줘서 너무 고맙다고 하시는 거예요. 사실 비슷한 고민을 하던 분들도 계시고 또 이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없기도 하고. 자유롭게 얘기하다 보니 이런 고민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고 저런 고민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는 거예요.
얘기하고 나니까 속 시원하고, 활동가 분들 정말 어렵게 활동하신다는 생각도 들었고, 자조 모임처럼 많은 지지를 얻었어요. 제가 갖고 있는 고민들이 여기 있는 분들과 3박 4일 동안 얘기하며 편해진 거죠. 고민에 대해 지지와 응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너무 감사했어요.
태환: 당사자가 아니라면 하지 않는 고민들이 있거든요. 근데 당사자가 ‘이런 걸 고민하는 내가 이상한 게 아닌지’ 스스로를 의심하게 될 때 그 고민을 먼저 해왔던 사람이 나타나서 ‘이런 고민 할 수밖에 없는 거고 고민해도 괜찮은 거다’라고 딱 잘라주면 명쾌하게 풀리는 것들이 굉장히 좋다고 생각을 했어요.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관계망. 오며가며 인사할 수 있는 느슨한 연대
우석: 두 분 지원금은 어디에 사용하셨어요?
태환: 저는 딱 절반 떼서 예전부터 받고 싶었던 헬스장 PT 받는 데 썼고요. 나머지 절반은 공동대표하고 있는, 본업이 작가인 친구한테 그냥 줬어요. 그 친구가 원래는 활동가가 아닌데 올해 공동대표가 된 거예요. 저도 응원을 받았으니 열심히 활동하려는 친구를 응원하고 싶었어요. 이체하면서 조금만 덜 줄까 고민하다가 ‘아니야, 시원하게 주자!’ 마음먹고 딱 절반 떼서 줬어요.
수은: 저는 병원비로 많이 썼고요. 제가 작년에 교통사고가 난 거예요. 몇 주 동안 걷지를 못할 정도로 심하게 다쳤어요. 뼈에 이상은 없지만 MRI를 찍어야 된다는데 비용이 너무 비싸서 미루다가 안전망 사업 지원금으로 검사를 받았어요. 계속 미뤄 왔었던 ADHD 검사와 진단도 받았고요. 심리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도움이 많이 됐어요.
우석: 이 활동에서 생긴 관계망이 앞으로 본인의 활동에 어떤 영향을 줄 것 같나요?
수은: 서로의 활동을 지켜봐 주는 사람들이 생겼단 건 잘하든 못하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거잖아요. 누군가가 나의 활동을 지켜보고 있다, 활동가로서의 나를 응원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힘들다, 쉬어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조금 더 힘을 내서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활동할 수 있는 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태환: 집회나 행사 나가면 마주치거든요. ‘퀴어퍼레이드’때도 지리산에서 만났던 활동가들을 마주쳤어요. 마주치면 반가운 거예요. 꼭 필요한 일을 하는 거고, 내가 활동가니까 그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도 알고 있고. 그들을 응원하는 게 스스로를 응원하는 것 같은 느낌인 거죠.
그렇다고 주기적으로 연락을 하냐면 그런 건 아니거든요. 제가 그런 성격이 못 돼요.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 연결망을 잘 유지하면서 활동하다 어느 순간 딱 마주치면 너무 반갑고. ‘어떻게 지냈어요? 월급은 잘 나와요?’ 물어보고 얘기할 수 있는 동료가 생긴 게 소중하단 생각이 들어요.
우석: 마지막 질문인데 지난 일 년을 돌아봤을 때 ‘나한테 안전망 사업은 무엇이다’라고 한 문장으로 말해 줄 수 있을까요?
수은: 저는 멋있게 하려고 미리 적어 봤어요. 저에게 ‘안전망 사업은 핀이다.’ 지도에 핀을 꽂듯이 활동하면서 힘든 순간이 있을 때 핀 꽂아둔 곳을 보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활동가로서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잡을 수 있었기 때문에 핀 꽂아 놓고 계속 돌아보고 싶은 그런 시간인 것 같아요.
태환: 저는 ‘안전망 사업은 운동화다.’ 운동화 신고 뛰다 보면 닳잖아요. 열심히 뛰어다니려면 신발도 좋아야 되는데 새로운 운동화를 신은 것 같고 선물 받은 것 같아요. 안전망 사업은 아름다운 재단이랑 동행이랑 같이 하잖아요. 동행이 길을 같이 간다는 뜻인데 이 지원사업이 같이 걸어 준다는 느낌을 받아서 운동화가 떠올랐어요.


기록자 정우석
웅상노동인권연대에서 상근자로 일하고 있다. 일상의 경험과 사건을 연료삼아 글을 쓴다. 글쓰는 과정에서 삶이 조금씩 변하고, 그 글이 독자의 마음에 가 닿길 바란다. 쓴 책으로는 <아플 때마다 글을 썼다>, <일터의 얼굴들(공저)>이 있다. 33회 전태일문학상(가작)을 받았다.
사진 박승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