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으로 직업까지 꿈꿔요’ 중증장애인의 가능성을 열어준 보조기기

모금기획팀 송혜진 매니저

2026.02.03

읽는 시간 0분

게임은 가장 대중적인 여가활동 중 하나이지만, 장애인에게는 하고 싶어도 닿지 않는 취미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은 카카오게임즈와 함께 ‘장애인 게임 보조기기 지원사업’을 진행하며 장애인들이 문화·여가의 선택지를 넓힐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본 사업을 통해 지체·뇌병변 장애인들은 각자의 운동능력과 환경에 맞는 기기를 지원받아 게임을 경험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지원사업 참여자 김신혜 님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신혜 님은 보조기기를 만나며 멈춰 있던 일상과 취미가 다시 이어지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신혜 님과 어머니 나희숙 님을 통해 삶 속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들어보겠습니다.

코로나와 맞물린 3년의 방황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신혜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유치원부터 특수학교에 다녔고, 지금은 영등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다니고 있습니다.”

마이토키(의사보조기기)로 인사를 건네는 김신혜 님. 그녀는 뇌병변장애에 언어장애를 동반하고 있습니다. 유치원부터 특수학교에 다녔던 신혜 님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활동적인 것을 즐기는 밝은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김신혜 님

“신혜는 학교 다니는 걸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즐기는 활달한 아이였어요. 그러다 학교를 졸업할 무렵 코로나가 시작됐어요. 외출이 줄고, 사람들과의 만남도 자연스럽게 적어지면서 신혜도 저도 움츠러들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3년이 흘렀죠.” – 나희숙 님

신혜 님과 어머니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찾아왔습니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지역 자조 모임이었습니다. 모녀는 다시 사회와 연결되기 위해 다양한 활동들과 모임을 시작했고, 이것은 신혜 님이 세상과 다시 만나게 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신혜와 제 사정을 잘 아는 엄마들이 이끌어 주어서 잃어버린 일상을 더 새롭게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서로의 상황을 깊이 공감하는 엄마와 아이들이 대화하고 다양한 체험과 활동을 함께 이어가다 보니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신혜도 저도 자조 모임 덕분에 성인이 되어서도 다양한 체험과 도전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나희숙 님

엄마, 나도 해보고 싶어요.” 게임과의 첫 만남

언어장애와 손 기능의 제약이 있어 활동에 어려움이 있지만, 자조 모임의 부모님과 아이들은 끊임없이 도전적인 활동을 시도했습니다. 수상 휠체어, 스노우 스키, 1박 2일 파자마 파티 등 다양한 활동에 용기를 내었습니다. 그 도전의 분위기 속에서 신혜 님도 ‘나도 무언가 새로 시작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겨났습니다.

여러 활동 중 신혜 님의 관심을 가장 사로잡은 것은 바로 게임이었습니다. 자조모임의 친구들이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게임을 즐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신혜 님도 게임에 대한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손의 기능이나 장애 정도가 비슷한 친구의 도전에 신혜가 자극을 받은 것 같아요. ‘나도 게임 해보고 싶다’라고 하는 거예요. 정말 오랜만에 아이의 눈에 호기심과 기대가 보이더라고요.” – 나희숙 님

처음에는 스위치의 간단한 버튼을 누르는 게임부터 천천히 시도했습니다. 조작은 어려웠지만, 화면이 움직이고 캐릭터가 반응하는 경험 자체가 신혜 님에게는 새로운 즐거움이었습니다.

중증 뇌병변장애가 있는 신혜 님에게 게임은 몸의 움직임을 훈련하는 재활이자, 또래와 함께 웃고 어울릴 수 있는 사회적 소통의 장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2023년부터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e-스포츠 대회에 출전하며 경험을 쌓았습니다. 때로는 예선 탈락의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 성장하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보조기기 지원사업을 통해 한발 더 나아가다

그러던 중 나희숙 님은 ‘장애인 게임 보조기기 지원사업’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신체 기능상 제약이 큰 신혜 님에게는 버튼 하나, 조작 하나가 큰 벽이었기에 ‘전문적인 맞춤 보조기기가 있다면 게임을 조금 더 편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지원 대상에 선정되자, 보조 공학 전문가 두 명이 가정을 방문해 신혜 님의 손 기능, 팔의 가동 범위, 힘을 줄 수 있는 각도, 반응 속도 그리고 평소 생활환경을 세밀하게 관찰했고,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기기를 하나씩 함께 실험하며 적합한 장비를 찾아갔습니다.

“전문가분들이 섬세하시더라고요. ‘게임을 할 때 어떤 자세로 하나요?’,‘보조기기를 어떤 위치에 두는 것이 가장 편한가요?’,‘이 각도는 어떤가요?’ 하고 세세하게 물어봐 주셨어요. 신혜가 조금 덜 힘들게, 조금 더 오래 즐길 방법을 함께 고민해 주셨고요. 그 과정 자체가 정말 감사했어요.” – 나희숙 님

신혜 님은 누르는 압력, 손이 닿는 위치 등을 고려해 그녀에게 꼭 맞는 크기의 스위치와 컨트롤러를 지원받았습니다. 기기를 설치하고 테스트용 버튼을 누르는 순간 크게 미소를 보이는 신혜 님을 보며 어머니는 “우리 아이가 게임을 할 수 있구나” 하는 희망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게임 보조기기를 사용해보고 있는 신혜 님

게임이 만들어낸 의미 있는 변화들

보조기기 지원 후 신혜 님의 일상에 작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원하는 타이밍에 버튼을 누를 수 있게 되었고, 게임 속 캐릭터가 내 손길에 반응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으며, 화면 속 세계와 소통하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꾸준히 게임을 하다 보니 손의 움직임도 자연스럽게 조금씩 좋아졌고, 게임 조작도 점점 안정되어 갔습니다. 무엇보다 “다음엔 게임 점수를 더 높여볼까?”, “레이싱 등수도 높여볼까?” 하는 가벼운 기대감이 생기면서 하루의 리듬이 달라졌습니다. 소소한 성공은 신혜 님에게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신혜가 게임을 할 때 즐거워하는 게 느껴져요. 예전과 비교하면 표정부터 다르거든요. 작은 변화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큰 의미예요.” – 나희숙 님

신혜 님은 e-스포츠 선수로 정식등록을 마친 상태입니다. 앞으로 장애인체육회와 연계된 훈련 프로그램, 지자체 기반의 게임 연습 공간 등을 통해 훨씬 더 넓은 경험을 쌓아나갈 예정입니다.

“실력이 좋은 건 아니지만 게이머라는 목표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기뻐요. 신혜가 집에서만 지내며 무기력하던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밝아졌고, 활기를 되찾았거든요. 중증장애인에게 직업 활동은 매우 제한적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신혜에게 게임은 단순한 여가의 수단이 아니라 직업의 가능성을 보여줬어요. 그게 보조기기가 만들어준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 나희숙 님

아이들이 무엇이든 배우고, 도전할 수 있는 기회 늘어나길

신혜 님의 어머니는 보조기기 지원사업을 통해 작은 소망이 생겼습니다.

“장애 아이들이 직접 만져보고, 시도해보고, 배워볼 수 있는 기회가 정말 많지 않아요. 보조기기 지원사업과 같은 다양한 체험이 조금만 더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는 결국 해보는 과정에서만 알 수 있으니까요.” – 나희숙 님

그리고 비슷한 환경에 놓인 가정에 현실적인 조언을 조심스레 전했습니다.

“처음부터 큰 목표를 세울 필요는 없어요. 아이에게 작은 경험을 하나씩 열어주다 보면, 그 안에서 취미도 생기고, 강점도 보이고, 더 나아가 진로의 가능성까지 발견할 수 있어요. 신혜도 게임을 잘해서 시작한 게 아니에요. 그저 한번 눌러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버튼을 누른 것이 시작이었죠. 그 작은 경험 하나가 아이의 하루를 바꾸고, 가능성도 조금씩 열어줬어요. 보조기기 지원사업처럼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기회가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문을 두드려보세요.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 나희숙 님

게임 보조기기는 신혜 님의 삶에서 단순한 편의를 넘어 의욕, 참여, 의사소통, 사회성, 그리고 진로의 가능성까지 확장하는 변화의 촉매가 되었습니다. 기술과 지원이 만나는 순간, 장애인의 삶은 분명하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은 신혜 님의 경험이 더 많은 이들에게 닿아 장애인의 문화 접근권이 실제 삶 속에서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다음 단계의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려는 모든 이들의 도전을 응원하며, 그 길을 함께하겠습니다.

 김유진 작가
사진 김권일 작가

목록으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