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장에서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이어가는 공익 단체들을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2025년에는 20개 단체가 각자의 자리에서 고민하고 실행한 프로젝트를 통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글에서는 참여 단체들이 직접 전하는 활동 이야기를 통해 작은 시도들이 어떻게 사회의 변화로 이어지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각기 다른 현장에서 시작된 변화의 시나리오를 지금부터 함께 만나보세요.
다중재난 사회, 인권에 기반한 재난 접근이 필요합니다.
지난 2024년 4월 16일, 어느덧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았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적참사특별법이 제정되었고, 재난 피해자의 권리가 최초로 재난안전법에 명시되는 등 우리사회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후에도 재난은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경주와 포항에서 잇따라 일어난 지진(2016/2017), 구례 수해(2020), 코로나19 팬데믹(2020~2022), 울진 산불(2022), 10.29 이태원 참사(2022), 7.15오송참사(2023), 아리셀 참사(2024), 제주항공참사(2024)에 이르기까지. 기후위기로 인해 더욱 잦아지고 깊어지는 기후재난(수해와 산불, 폭염 피해 등)의 여파는 순수하게 ‘자연적인 재난이란 없다’는 말을 다시금 주목하게 만듭니다. 모든 재난은 사회적 사건이며 복합재난의 성격을 띠고 찾아온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이유입니다. 반복되는 재난 참사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재난의 사회성’을 이해하는 것과 더불어 ‘인권에 기반 한 재난 접근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수적입니다. 또한 재난은 폐허 속에서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 낼 것인지를 가르는 갈림길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인권교육센터 들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전국 곳곳의 재난 피해자들은 물론, 피해자들을 조력했던 구호단체와 자원봉사센터, 시민단체 활동가 등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이러한 문제의식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수도권, 충청권, 강원권, 전라권, 경산권, 제주 등 전국 6개 지역에서 100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과 총 여섯 번의 집담회를 진행하였고, 이태원 참사, 울진 산불, 코로나19, 구례 수해 등을 겪은 네 곳의 재난 공동체를 심층 인터뷰하여 그 결과가 두 권의 작은 책자로 만들어졌습니다. <재난일수록 더, 존엄하게 : 구호현장으로 떠나는 당신을 위한 핸드북>과 <폐허 속에서, 기어이 : 엮이고 엮은 재난 공동체 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재난일수록 더, 존엄하게
“구호 물품이 오는데 각종 냄비, 바가지, 빗자루 이런 것들이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담겨왔어요. 그러니까 일부 주민들은 ‘우리를 이렇게 밖에 생각하지 않는구나’라며 자괴감이 든다고 하셨어요. 보통의 사람들은 소회되는 것에 분노하기 보다는 차별받는 것에 분노해요”
경상권 집담회에 참석한 최기철님(2025년 의성산불 피해자, 의성군 산불피해 주민대책위)의 이야기 중 일부입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다른 종류의 재난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였지만, 여섯 번의 간담회에서 나눠진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것은 구호와 회복의 과정에 인권의 관점을 견지하지 않은 순간 재난 피해 당사자들이 경험하게 되는 이중의 고통이었습니다.
재난구호현장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나 피해자의 존엄을 훼손하는 일들은 피해자 또는 재난약자에 대한 시혜적 접근이 뿌리 깊고, 재난 피해자가 보내게 될 시간과 그들의 다층적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얕은 탓일 것입니다. 재난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핸드북이 재난 구호 현장으로 떠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재난 피해자들의 곁에 서 있을지에 관한 방향과 구체적인 내용이 되길 바랍니다.
폐허 속에서, 기어이
“한 방송사 기자에게 유가족들에게 분향소는 ‘생명의 장소’라고 말한 기억이 나요. 분향소 생기고 전주에서 열리는 모든 집회는 다 분향소에서 했어요. 저는 분향소에서 연대라는 걸 배웠어요. 내가 혼자가 아니구나. 우리 유가족이 홀로 된 섬이 아니구나. 활동가들과 시민들이 옆에 와서 계속 힘내라고 하고 같이 싸우니까요.”
이태원 참사 전북 유가족 모임의 문성철님의 말씀입니다. 서울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이태원 참사 분향소가 마련되었던 전주 분향소는 유가족들의 말씀 그대로 ‘죽어 가던 유가족을 살려낸 공간’이자 싸우는 사람들의 연대가 확장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재난 공동체 사례집에는 이 외에도 산불 피해 보상 과정에 세입자에 대한 낙인과 차등 지급에 맞서 싸운 울진산불피해 세입자 이재민 대책위 이야기,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확진된 장애인의 곁으로 달려가 봉쇄와 고립을 뚫은 장애인지역공동체 이야기, 구례 수해 구호과정에 사람들의 시선 밖에 남겨진 사람들 서로가 서로를 도운 아이놀이모임이 만들어간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재난의 한복판에서 재난 공동체가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세우고 재난의 피해로 부터 회복해가는 과정을 만나는 순간은 경이롭기까지 했습니다. 재난 구호 시스템이나 체계와 더불어 재난 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고 재난 공동체를 지원하도록 요구할 필요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일상의 인권 역량이 재난 인권 역량과 직결됩니다.
강원 산불 피해 지역을 취재했던 신하림 기자는 저서 <산불은 마을을 어떻게 바꿔나>에서 ‘예방-대비-대응-복구’로 이어지는 재난 관리 체계의 마지막에 ‘학습’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재난이 닥치면 갑자기 인권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평소의 인권감수성이 위험의 발견을 돕고, 구호의 자세를 변하시키며, 재난 피해자와 연대하는 태도를 만든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또 평소 인권이 제도화되는 경험을 하는 것도 재난 대응력을 높이는 방안이 될 것입니다. 그 모든 길에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나온 두 권의 책자가 쓰임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글,사진 인권교육센터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