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암이 빚은 제주의 습지를 말하다

공익사업팀 고용우 매니저

202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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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장에서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이어가는 공익 단체들을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2025년에는 20개 단체가 각자의 자리에서 고민하고 실행한 프로젝트를 통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글에서는 참여 단체들이 직접 전하는 활동 이야기를 통해 작은 시도들이 어떻게 사회의 변화로 이어지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각기 다른 현장에서 시작된 변화의 시나리오를 지금부터 함께 만나보세요.

화산섬이 만든, 제주만의 습지

제주의 습지는 광범위한 면적을 가진 대규모 습지와는 달리, 대부분 점처럼 흩어져 있는 소규모 습지로 이루어져 있다. 작고 조용해 보이는 이 습지들은 화산 활동의 흔적 위에 형성되며, 제주라는 섬이 지나온 시간의 결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암석으로 이루어진 조간대에는 연안습지가 발달하고, 오름 분화구에는 물이 고여 화구호 습지가 만들어진다. 넓은 뱅듸 지대에서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암반 습지가 형성되었고, 평소에는 물이 흐르지 않지만 비가 오거나 계절이 바뀌는 순간, 야생동물의 주요 서식지이자 이동 공간이 되는 하천 습지도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습지는 물이었고, 삶이었고, 문화였다

물이 귀했던 제주의 자연환경 속에서 습지는 오랜 시간 사람들의 삶과 가장 가까운 물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습지를 생활용 수원으로 이용하며 하루의 삶을 꾸려갔고, 물을 함께 쓰고 지키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공동체의 질서와 문화가 형성되었다. 그렇게 쌓인 기억과 흔적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제주 습지를 단순한 생태 공간이 아닌 삶의 터전이자 시간이 머문 문화의 공간으로 바라보게 한다.

제주의 습지 보전 운동의 시작

제주 습지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움직임은 늦게 시작되었지만, 한 걸음씩 꾸준히 이어져 왔다. 우리나라가 람사르협약에 가입한 것은 1997년, 습지보전법이 제정된 것은 1999년의 일이었다. 제주에서는 그보다 앞선 1994년, 제주환경운동연합이 습지조사단을 발족해 도내 습지를 하나하나 찾아 나섰다. 약 4년에 걸친 현장 조사를 통해 물영아리오름의 생태적 가치가 밝혀졌고, 이는 2001년 제주 최초의 습지보전지역 지정으로 이어졌다. 이후 여러 습지가 람사르습지로 지정되며, 제주의 습지는 섬을 넘어 세계 속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올해의 습지 보전 운동, 무엇을 했을까?

올해 추진된 습지조사 사업은 그동안 축적된 조사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지켜야 할 습지를 찾아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단순히 위치를 기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중·장기적인 보전과 관리로 이어질 수 있는 기초자료를 마련하는 것이 목표였다. 조사는 구좌읍과 성산읍 일대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넓은 조사 범위를 고려해 두 개의 조사팀이 나뉘어 움직였다. 각 팀에 전문가가 함께하며 습지의 형성과 생태적 특성을 현장에서 해석했고, 이러한 지역 공동체의 노력은‘물찻오름 습지보호지역 지정’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현장에서 배우고, 함께 걷는 습지 기행

습지 정비 사업의 전과 후

조사 결과를 기록으로만 남기지 않기 위해 습지 기행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되었다. 참가자들은 습지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물이 고인 자리와 식생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했고, 그 자리에서 느낀 생각과 경험을 서로 나누었다.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나눈 이야기들은 습지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을 조금씩 넓혀주었다.

훼손 현장 대응과 시민 네트워크까지

정기적인 조사 활동과 더불어, 제주시와 서귀포시 일대에서 진행되는 습지 정비 과정 중 발생하는 훼손 사례에 대해서도 현장 조사와 대응을 이어갔다. 습지 매립과 관련된 민원 현장에서는 직접 발로 확인하고 의견을 전하며, 개발의 속도 속에서 쉽게 잊히는 습지의 가치를 다시 불러냈다. 또한 습지 복원과 보전을 주제로 한 워크숍을 통해 참여 기관과 도민들이 함께 만드는 습지 시민 네트워크의 방향을 논의하고, 앞으로의 보전 운동을 함께 이어가기로 뜻을 모았다.

조사에서 정책으로, 기록에서 실천으로

이번 사업은 전수조사에서 현장 기행, 그리고 워크숍까지를 하나의 흐름으로 엮은 과정이었다. 제주 습지의 현재를 기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의 보전지역 지정과 습지 복원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길을 천천히 닦아간 셈이다. 점처럼 흩어져 있는 제주의 습지들은 오늘도 야생 동·식물의 보금자리가 되어 섬의 생태축을 지탱하고 있으며, 우리는 사라지기 쉬운 내일을 오늘에 남기기 위한 활동을 지치지 않고 이어나갈 것이다.

글,사진 제주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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