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오지에서 일구어낸 우정과 연대의 축제

공익사업팀 고용우 매니저

202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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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장에서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이어가는 공익 단체들을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2025년에는 20개 단체가 각자의 자리에서 고민하고 실행한 프로젝트를 통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글에서는 참여 단체들이 직접 전하는 활동 이야기를 통해 작은 시도들이 어떻게 사회의 변화로 이어지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각기 다른 현장에서 시작된 변화의 시나리오를 지금부터 함께 만나보세요.

“소멸을 거슬러 사는 사람들 – 청송에서 시작된 문화와 민주주의 실험”

지극히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경북의 지역 특성으로 인해 문화 정치적 입장을 자유롭게 펼쳐내기 어려웠던 젊은이들. 더 이상 스스로 위축되지 말고 지역에서 함께할 수 있는 활동을 만들어보자는 의지를 모았습니다. 소멸 위기에 놓여있는 농촌, 대도시의 식민지와도 같은 농촌의 현실을 넘어서기 위한 대안으로, 지역에 기반 한 문화예술 활동을 지속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하기 위한 문화 기획팀을 꾸렸습니다. ‘깨어있는 삶을 위한 읽기 모임(이하 깨삶모)‘입니다.

경북 청송 지역에서 살아가는 예술가, 청년, 교사, 문화 활동가가 주축이 된 ‘깨삶모’는 지역에 대한 환멸을 걷어내고, 지역의 고유성이라는 토대 위에서, 현재와 미래의 가치를 모색하는 문화프로그램을 기획하여 고립과 경계를 허물고 우정과 환대의 문화를 일구어보기로 했습니다. ’깨삶모‘는 소멸을 이야기하는 시골 오지에서 이곳을 여전히 살아 있는 장소로 붙들어 두자는 열망, 떠나지 않고도 삶을 풍요롭게 일굴 수 있다는 조용한 선언으로 시작하여, 지역에서 아름다운 삶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살아 숨 쉬게 하는 행위와 연결되었습니다. 동시대 사회 문제를 읽어내고, 지역공동체의 시민으로서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하는 과정에서 문화프로그램에 대한 상상은 자연스럽게 기획으로 이어졌고, 도시 청년과 지역공동체가 연결될 가능성도 구체적인 감각으로 다가왔습니다. 작고 느리지만, 분명한 변화의 감각입니다.

’깨삶모‘는 경북 지역에 고향을 두고 있는 권정생, 이오덕, 전태일, 조영래의 삶을 공부하며 노동과 인권, 생명 평화의 가치를 지역에 소개하고, 초청 강연회도 열었습니다. 김누리 교수와 이송희일 영화감독과 함께하는 강연회는 지역의 활동가들뿐만 아니라 지역민들이 참석하여 한국 사회의 정치와 교육 문제, 후기 파시즘과 기후 위기 같은 동시대 담론을 공부하면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이야기해 보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가난하고 불편한 삶으로 다가가는 작은 축제 “종지기 아저씨 만나는 날”

“모두가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 가난을 지켜야 한다. 가난이란 바로 함께 사는 하늘의 뜻이다.”라고 하시며, 몸소 그 삶을 보여주셨던 권정생 선생님을 기억하는 작은 축제를 열었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은 청송 현서(화목)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습니다. 선생님의 외가가 있는 현서면에는 어린 권정생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웃을 기억하며 동화로 엮고 글로 담아낸 곳, 몽실언니의 배경이 된 댓골, 선생님이 다니셨던 화목초등학교가 있습니다.

하지만 청송 지역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권정생 선생님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권정생 선생님의 삶과 문학정신이 지역에 깃들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함께 ’종지기 아저씨 만나는 날‘을 열었습니다. 청송과 경북 지역에 살고 있는 어린이, 청소년,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권정생 선생님이 우리에게 남겨준 생명 평화정신을 만나보는 작은 축제가 되었습니다. 축제를 함께 준비한 분들은 각자의 재능을 행사 프로그램으로 기획하여 지역 어린이와 가족에게 나누었습니다. 상업적인 이해관계가 아닌, 따뜻한 나눔과 호혜의 만남으로, 행사 참가자들에게 감동을 안겨 주었습니다.

’종지기 아저씨 만나는 날‘은 지역의 교사, 예술가, 문화 활동가들과 함께 매해 5월에 열리는 작은 축제가 될 것입니다. 권정생 선생님을 기억하고, 선생님처럼 가난과 불편한 삶으로 다가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만남과 우정이 두터워지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시골 오지에서 만나는 ’연극 전태일‘

“청송에서 전태일이라니, 대단하다, 용감하다” “우와, 대단하네요. 보수의 본거지에서 그것도 군수, 군의회가 100% 국힘당으로 구성되어 있는 청송군 공공 건물에서…” <연극 전태일>을 청송에서 기획하면서 받은 반응들입니다.

청송 지역 곳곳에 <연극 전태일>을 알리는 포스터와 현수막을 부착하고 ‘전태일’이 누구냐는 지역 주민의 질문에 정성껏 설명도 해드렸습니다.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불편하게 여기던 군청과 교육청 관료를 만나서 홍보하고, 지역의 공연장을 대관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겪고 풀면서 지역의 시설 관리자와 협업하는 첫 경험도 얻었습니다. 시골 오지에서 지역공동체와 함께 축제연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곧 민주주의 시민문화를 일구는 과정이었습니다.

서울, 제주, 대전, 대구, 청주 등에서 시골 오지로 모인 청년 배우들은 소비하는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 시골 오지에서 움트는 연극의 힘을 배웠습니다. 마을 한 가운데에서 매일 달리고 노래하고 연습하면서 노인들의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었고, 대학로와 같은 도시 한 복판에서 사고파는 연극이 아니라 지역공동체의 환대 속에서 함께 만드는 연극을 경험했습니다. 극 중 어린 여공 역을 맡았던 청송초등학교 어린이들과 학부모들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연극 작업에 참여하면서 문화의 소비자가 아닌 ‘축제연극’을 함께 만들어가는 자부심을 얻었습니다. 청송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을 올렸던 날, 청송 지역에서 전혀 만나보지 못했던 분들이 눈시울을 적시며 “청송에서 전태일 열사 이야기를 이렇게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손을 꼬옥 잡아주셨습니다.

’시골 오지에서 만나는 연극 전태일‘ 은 지극히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지역에 변화의 물꼬를 텄습니다. 청송 어린이들과 학부모들은 이와 같은 연극 작업이 지역에서 계속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주말학교 또는 계절제 학교 형태로 연극 학교를 만들자는 제안도 나옵니다. 우리는 지역의 학부모들과 어린이들의 희망을 엮어 지속 가능한 문화 기획의 내용을 모색하고 인프라를 구축하고자 합니다. 소멸하는 시골 오지에서 살아가는 예술가, 청년, 교사, 문화 활동가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지역의 고유성이라는 토대 위에서 우정과 연대의 문화를 창출하는 가능성을 계속해서 증명하고자 합니다.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에 힘입어 ‘시골 오지에서 일구는 문화 기획 프로젝트’를 지역에서 펼쳐낼 수 있었습니다. 모든 활동의 성과들은 지역의 풀뿌리 문화를 일구어가는 시작이자, 깨어있는 시민의 문화를 싹틔우는 밑거름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변화를 위한 시나리오를 새롭게 쓰고 그것을 지역에서 시연해 갈 것입니다.

글,사진 함께하는연극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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