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장에서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이어가는 공익 단체들을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2025년에는 20개 단체가 각자의 자리에서 고민하고 실행한 프로젝트를 통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글에서는 참여 단체들이 직접 전하는 활동 이야기를 통해 작은 시도들이 어떻게 사회의 변화로 이어지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각기 다른 현장에서 시작된 변화의 시나리오를 지금부터 함께 만나보세요.
개발 지도에는 있고, 생명 지도에는 없는 것
제주 본섬과 육지 사이, 거센 물살이 흐르는 추자도 해역은 현재 단일 사업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2.3GW급 해상풍력 발전 단지가 예정된 곳입니다. 총사업비만 최소 18조 원에 달하는 거대한 개발 계획이 수립되었지만, 정작 그 바다에 누가 살고 있는지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은 전무했습니다. 주민들은 말합니다. “찬 바람 불면 상괭이가 나타난다”고요.
하지만 국가의 데이터베이스와 개발 계획에는 추자도 상괭이는 ‘데이터 없음(No Data)’으로 처리되어 사실상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자료가 없어서 고려되지 않는 것과,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 것은 다릅니다.
‘상괭이 편 프로젝트’는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재생에너지 확대는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리 없이 사라질 생명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 우리는 ‘상괭이의 존재’를 시민들의 눈과 손으로 직접 증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연구자, 다큐멘터리 제작자, 활동가, 디자이너가 한 배를 타다
상괭이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사람들이 모여 <상괭이편 TF>가 꾸려졌습니다.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오랫동안 고래를 기록해 온 다큐멘터리 팀 ‘돌핀맨’, 과학적 분석을 맡은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 그리고 조사 대원이자 디자인과 기획으로 힘을 보탠 시민과학자들입니다. 돌핀맨의 조사선 ‘베롱호(제주어로 반짝인다는 뜻)’와 함께 매달 200km가 넘는 동일한 조사루트를 따라 항해를 했습니다.

새벽부터 해가 질때까지, 하루 종일 추자도 바다를 누비는 일은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우리는 추위와 폭염, 그리고 험난한 파도와 싸워야 했습니다. 날씨를 고르고 골라 갔지만, 예상에 없던 바람과 파도가 일기 시작하면 긴장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때로는 1박 2일로 계획했던 일정을 안전을 위해 2박 3일로 늘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흔들리는 배 위에서도 “3시! 100미터!” 하는 외침과 함께 상괭이의 등지느러미가 수면 위로 반짝일 때면, 모든 피로가 씻은 듯 사라지곤 했습니다.

“여기, 상괭이가 살고 있다.” 상괭이가 보내온 신호
1년 여간 총 12회의 출항, 27일간의 바다 기록. 우리의 땀방울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데이터 공백이라던 추자도 해역에서 우리는 1월, 2월, 4월, 11월에 상괭이의 실체를 확인했습니다. 단순히 지나가는 개체가 아니라, 어미와 새끼가 함께 유영하고 먹이 활동을 하는 모습이 포착되었습니다. 이는 추자도 바다가 상괭이에게 중요한 서식지이자 보금자리임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입니다. 특히 겨울철과 초봄에 집중적으로 관찰된 기록은 주민들의 구술 증언과도 일치했습니다,. 시민과학자의 눈으로 찾아낸 이 기록들은 이제 ‘최초의 추자도 상괭이 보고서’가 되어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기억에서 기록으로, 기록에서 공존으로
‘상괭이 편 프로젝트’는 단순히 상괭이 몇 마리를 보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개발 논리에 밀려 지워질 뻔했던 생명의 존재를 시민이 나서 ‘과학적 근거’로 남겼다는 것,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상괭이의 편에 서줄 더 많은 시민들을 모아냈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입니다. 우리가 만든 이 기록은 향후 해상풍력 입지 선정 과정에서 “이곳은 상괭이가 존재하는 곳 이니 보호 대책을 마련하라”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상괭이 편 프로젝트’의 항해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기록이 정책이 되고, 마침내 상괭이와 인간이 공존하는 바다를 만들 때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파도를 넘을 것입니다. 지금, 모두 ‘상괭이 편’이 되어주시길요.

🚢 [상괭이편TF와 현장조사로 함께한 사람들]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돌핀맨,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 김보은, 김소은, 이루리, 박지정, 김민수
글,사진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