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사와 세무사에게 3월이 대목이라면, 아름다운재단 장학사업담당 간사에게는 2월이 대목중의 대목이다. 장학금 지원 대상자에게 개별연락, 장학금 지원을 위한 서류 접수와 지출결의, 장학증서 전달식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탓에 배분팀으로 이적한지 몇 달 안 된 ‘준신입’ 간사는 맨붕에 빠져버리고 만다.
그래도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 어찌어찌 구르다보면 2월도 지나가고 장학금 지원업무도 종료되는 법. 하지만 3월 초가 되도록 나의 집요한 전화, 문자, 이메일 공세에도 연락이 안 닿는 이 분은 대체 누구신가? 다른 장학생도 아니고 ‘양육시설거주퇴소대학생을 위한 교육비 지원사업’의 대상자인 이 학생, 혹시 어려운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하지만 연락에 응하지 않는 학생을 마냥 기다릴 순 없다. 학교마다 등록금 납부 시기가 다르지만 3월 초면 대부분 등록 마감. 다른 장학금 혜택을 받으셔서 장학금 지원이 필요가 없어졌나보다….. 라고 애써 생각하며 사업을 마무리 하려던 찰나, 내게 이메일이 한 통 배달되었다.
‘앗, 이 이름은 내가 그토록 찾던 그 학생?’ 눈이 똥그래져서 메일을 읽어나갔다.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안녕하세요. 무례한 것 같지만 이렇게 메일을 씁니다.
아름다운재단 이사장님을 비롯한 여러 관계자 여러분의 도움을 받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공부해야하는데…. 마음먹은 대로 성적도 안 나왔고 기대에 보답해 드리지 못한 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공부에 집중도 되지 않고 마음가짐이 흐트러져 학업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잠시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만만치 않은 책값에 한 달을 보내야하는 식비나 생활비 같은 금전적 문제도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습니다. 다른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들을 생각하니 제 자신이 미련하고 뭐 하는 짓인가도 싶었습니다. 그래서 학업보다는 차라리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죄송한 마음 때문에 연락이 와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염치불구하고 마지막으로 한번만 용서를 구해 보려고 합니다.
믿어주시고 한번만 도와주신다면 이사장님을 비롯한 재단 관계자 여러분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턱없이 부족한 성적이지만 노력해보겠습니다. 많이 늦은 시간이라는 것 알지만 기회를 주신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방황의 시간이 있었지만 다시 최선을 다해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 김 OO
이 학생은 이 메일을 쓰기까지 자신의 진로와 대학생활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나는 내가 처리해야 할 ‘등록금 처리 업무’ 중의 하나로만 생각했던 것 같은데…..
연락이 안된다며 툴툴대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가슴이 먹먹했다. 정신 차리고 서둘러 답장을 썼다.
김OO 님, 안녕하세요.
아름다운재단 임주현 간사입니다. 연락이 안 닿아 걱정하고 있었는데 메일 주셔서 감사합니다.
힘든 시간들을 겪고 있었네요… 이번 학기까지 교육비 지원을 받으실 수 있으니 염려마세요.
다만 대부분의 학교가 등록기간이 지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OOO대학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기한이 지났더라도 등록금 고지서를 보내주시면 학교 담당자와 소통해서 처리하도록 할께요.
그럼 꼭 연락 주세요.
감사합니다.
3월 초, 다소 늦은 시간이었지만 감사하게도 학교에 ‘추가등록기간’이란게 있어 무사히 등록금 지원을 완료했다. 가족이나 친척들의 보호와 지원 없이, 다른 학생들 보다 좀 이른 독립의 날개짓을 해야 하는 양육시설퇴소 대학생. 주거, 생활비, 교육비 모두 홀로 부담해야 하는 이 학생의 무거운 짐을 여러 기부자님들 덕분에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부디 이 학생이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졸업할 수 있길, 멋진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마음 모아 기도한다.
「아동양육시설 퇴소‧거주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이란?
아동양육시설 퇴소, 거주 대학생들의 학업유지 및 졸업을 통한 안정적인 사회정착을 위해 등록금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아름다운재단의 재단1호 기금인 ‘김군자할머니기금’을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김군자할머니기금」이란?
“어려서 부모를 잃고 못 배운 탓에 삶이 그렇게 힘들었던 것만 같았어. 가난하고 부모 없는 아이들이 배울 기회만이라도 갖도록 돕고 싶어.’ 평생을 종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던 김군자 할머니. 부모 없는 아이들을 위해 평생 힘들게 모은 전 재산 1억원을 아름다운재단에 장학기금으로 기탁하신 분입니다. 고아로 자라면서 야학을 8개월 다닌 것이 평생 배움의 전부라며 부모 없이 자라는 고아들이 잘되는 데 보탬이 된다면 여한이 없겠다고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