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스러운 첫걸음
재단에서 새롭게 사업을 준비 하는 팀에 ‘사회적 돌봄’ 영역의 담당자인 나도 참여하게 되었다. 단 두 명 뿐 이지만 팀이란 복수의 사람의 모임을 의미하기 때문에 우리 역시 팀이다. 우선 이주민에 대해 조사를 하기로 했는데, 이전에도 관련 이슈를 잠깐 다뤘던 사회학도인 나에게 은근히 기대되는 주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간단히 통계를 살펴보니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80만명이란다. 그 중에서 결혼이주여성은 14만명이고, 나머지는 이주민노동자다. 아직도 시골에 가면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란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고, 뉴스에서 결혼이주여성과 그 자녀들에 대한 보도를 쉽게 접할 수 있어 그 수가 상당한 줄 알았는데, 결혼이주여성은 아직도 이주민노동자의 1/3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정책을 보니 정부의 지원은 모두 결혼이주여성 가정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주민노동자에 비해 지원의 절대규모가 30배 이상 높았으며, 특히나 전혀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이주민노동자의 자녀와 달리 결혼이주여성의 자녀들은 모두 무료로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는 혜택까지 있었다.
나는 ‘사회적 돌봄’의 담당자로서 사각지대를 발굴해야 하기 때문에, 요즘 핫이슈인 무상보육에서 배제된 이주민 동자 자녀들의 상황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전국민이 무료로 자녀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시대에 이주민노동자의 자녀들은 어떻게 보육되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이들을 위한 전담 어린이집에 방문하기로 결심하였다.
대한민국? 대한민국!
입사 후 처음으로 재단 차를 끌게 되었다. 운전을 좋아하지만 자차가 없어 운전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나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재단을 출발하였다. 서울을 벗어나 푸른 녹음이 보이기 시작하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창문을 열고, 노래를 틀어놓고, 신나게 따라 부르기도 하며 느낀 것이지만 서울은 너무 복잡하다. 아무튼 도착지에 거의 다다를 무렵 갑자기 내 목의 레이더가 이상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기관지가 약한 나의 목은 먼지에 민감하기 때문이다!(그래서 혼자 자취하는 남자이지만 새벽 한시에 들어가도 청소기는 꼭 돌린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마석가구공단’인데, 생각보다 공기가 너무 좋지 않았다. 이주민노동자 자녀를 전담으로 보육하는 어린이집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지만, 과연 이 곳에 아이들이 살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마음 한 구석을 스쳐 지나갔다.
공단 내부를 보여 주시려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차를 타고 공단을 돌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내 목에 이상을 가져다 주었던 정체에 대해 알 수 있었다. 톱밥에서 파생되는 먼지들은 눈에 보일 정도였으며, 설상가상으로 본드 냄새에 머리까지 아파오기 시작했다. 외부에서 보이는 모습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었던 공단의 내부는 더욱 열악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와 동행한 선생님이 공단 깊숙한 곳에 위치한 한 컨테이너 박스를 응시하며,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가 사는 곳이라 설명했다. 공단 내부에 사람이 거주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잠시 안으로 들어가보니 더욱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집이야 밥 먹고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으면 되는 곳이라지만, 이 곳은 이러한 기본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순간 여기가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인가 싶었다.
아이들의 미래
어린이집에서 만난 아이들은 너무 예뻤다. 눈이 크고 이목구비도 뚜렷해서 정말 인형 같았다. 하지만 그 예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아이들의 미래에는 어두움이 드리워져 있다. 미국의 존스홉킨스 대학의 저명한 연구자 콜먼 교수의 콜먼보고서에 의하면, 학생의 성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학생집단의 사회계급적 구성’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연구에 의하면 학생들간 학업성취 격차는 가정의 영향으로 상당 부분 설명되기도 하는데, 이 외에도 영유아시기 발달의 중요성은 교육학 및 아동학과 관련된 여러 논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영유아기 시절의 발달은 중요하지만, 이주민노동자 자녀들의 현실은 너무 열악하기만 하다. 건강에 유해한 환경에서 지내면서, 제대로 돌봐줄 사람의 부재로 인해 발달에 필요한 자극들도 받을 수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의 부모는 한국에서 제일 가난한 집단에 소속되어 있으며, 신분도 일각에서는 불법이라고 칭하는 상태다. 하지만 부모의 이러한 책임이 모두 자녀에게 전가되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이주민노동자에 대한 여러가지 시각은 논외로 하더라도, 생명에는 불법이 없다는 절대진리가 이 아이들에게도 적용되었으면 좋겠다. 아프리카에 사는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는 어린 아이들의 생명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사회적 돌봄’ 영역의 담당자로서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사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다.
아름다운재단의 ‘사회적 돌봄’ 지원사업 영역이 지향하는 복지는 “사회로 부터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권리” 입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으로서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갖는 권리인 주거권, 건강권, 교육문화권, 생계권을 중심으로 취약계층의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고자 합니다.
빈곤1%기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