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1시. 2016년 청소년 자발적 사회문화활동 지원사업(이하 청자발)에 선정된 10개 단체 청소년들이 서울 NPO 지원센터 대강당에 모였다. 가장 멀게는 삼천포에서 올라온 팀을 포함해 경기, 강원, 전북 등 전국 각지에서 골고루 모여든 터라, 10개 단체의 출발지만으로도 국내지도가 그려진다. 야심차게 준비한 사업계획을 발표하고 공유하는 자리인 만큼 긴장과 설렘,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와 진중한 고민의 흔적이 매순간 교차했다.
청소년이 RE 디자인한 삶의 무늬
지난 해 발군의 프레젠테이션 역량을 선보이며 주목받았던 전북 기계공업고등학교 동아리 오픈소스는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직접 자동차를 조립해온 변준하 군은 시종일관 재치있는 화술로 웃음을 선사했다.교육의 정의와 평등을 추구하는 오픈소스는 올해도 작년처럼 배움의 기회가 적은 저소득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재미있는 과학교실을 운영할 계획이다. 아이들이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선택한 수업 교재는 과학상자다.
서울영상고등학교 광고제작 동아리 AD FOCUS는 직접 만든 광고를 통해 세상에 대한 청소년들의 시선을 보여주고자 한다. 중소기업 및 비영리단체, 전통시장을 대상으로 재능기부 형태의 광고 제작을 기획 중이며, 영상광고 및 지면광고를 관공서와 학교에 무료 배포하고 SNS에 업로드 할 계획이다. AD FOCUS는 숱한 광고전을 휩쓸며 화려한 수상경력에 빛나는 동아리답게 입단 경쟁률이 치열하다는 후문.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에 AD FOCUS를 검색하면 이들의 반짝이는 감각을 엿볼 수 있다. 9월, 서울영상고등학교 축제 때 진행할 광고전도 눈여겨 볼 일이다.
청자발 선정 단체 중 가장 먼 길을 온 팀은 삼천포에서 상경한 용궁문지기다. 삼천포 수산물시장인 ‘용궁시장’에서 착안한 모둠명과 ‘내 친구를 삼천포에 초대합니다’라는 프로젝트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 ‘삼천포 홍보대사’를 자임하는 청소년들이다. 열네 명의 모둠원 모두 삼천포에 단 하나뿐인 산부인과에서 같은 해 태어나, 같은 유치원과 같은 목욕탕을 다니며 형제처럼 어울려 자랐다는 것. 이른바 동네친구들끼리 내 고향 삼천포를 아끼는 마음으로 추진하는 사업으로는 ‘논길 프로젝트’가 있다. 폭이 좁고 돌부리가 많은 초등학교 주변 논길을 예쁜 그림으로 단장하는 것. 아이들의 시선을 끌어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즐거운 등․하교길을 만들기 위함이다. 또한 삼천포 지역축제를 알리는 플래시몹, 사천8경을 포함한 인기 관광지와 지역민들만 아는 비경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고 UCC를 제작해 홍보할 계획이다. 용궁문지기의 활약상은 페이스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좋아요’ 1000개를 예상한다고. 유쾌한 삼천포 친구들의 발표는 큰 호응을 이끌었다. 플래시몹, UCC 제작과 관련하여 AD FOCUS로부터 콜라보 제안을 받았을 정도. ‘내려오시면 무조건 숙식제공!’을 외치는 삼천포 친구들의 호쾌한 장담 속에, 서울-삼천포 간 장거리 우정의 연대를 가늠해본다.
세계 경제의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공정무역을 주목한 YG공정무역연구회. 여강고등학교 전교생의 반 이상이 참여할 만큼 인기 많은 동아리로, 공정무역에 대해 공부하며 학내 및 여주 지역 내에서 공정무역의 가치를 알리는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공정무역 관련 세미나를 진행하고 공정무역 페스티벌에 참여하여 부스를 운영할 계획이며, 세계 빈곤퇴치의 날을 위한 공정무역 응원 캠페인을 진행하고자 한다.
“공정무역이란 단어 자체가 왠지 접근하기 어렵게 느껴지지만, 공부하고 알아갈 수록 우리 생활 속에서 공정무역을 지지하는 활동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공정무역 커피, 초콜릿 등을 소비하는 것도 한 방법일 테니까요. 윤리적 소비의 보람도 있지만 맛도 좋습니다.”
부천 지역 중학생들로 구성된 짜금짜금은 2016년 청자발 선정 단체 중 최연소 팀이다. 모둠명 ‘짜금짜금’은 입맛을 짭짭 다시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모둠원 모두 잘 먹고, 먹는 데 관심이 많아 붙인 이름이다. 스마트폰과TV만 들여다보던 주말, 친구들과 재미있게 어울려 놀 방법을 궁리하다 모였다는 이들은, ‘±삶 디자인’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6, 7월 중 진행할 ±삶 디자인 1탄은 골목길에 버려진 재활용품을 활용해 어르신들이 쉴 수 있는 의자를 만든다거나 공용 쓰레기통을 제작해 비치하는 등 동네를 가꾸는 ‘골목길 RE디자인’ 프로젝트. 가을부터 진행할 ±삶 디자인 2탄은 부천지역 내 농장을 방문해 제철채소로 직접 제철밥상을 차려 먹는 이야기가 있는 밥상, 이름 하여 ‘밥상 디자인’ 프로젝트다.
짜금짜금 활동 보러가기
10개 단체의 프레젠테이션과 재단 측의 사업 수행 가이드로 3시간 남짓 이어 달린 오리엔테이션은 인기투표에 대한 시상식으로 마무리됐다. 프레젠테이션 역량과 발표자의 매력지수 를 감안한 인기투표에서 1위를 거머쥔 팀은 즉석 콜라보 제안까지 이끌어내며 이목을 집중시킨 용궁문지기였다. 가장 멀었던 상경 길에 대한 세심한 배려도 한 몫 했을 훈훈한 결과에, 모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우물밖청개구리와 나다wom은 동점자로 나란히 2등상을 받았다. 청소년 잡지를 만든다는 공통점 외에 수상의 기쁨까지 공유한 셈. 청소년의 목소리를 담아낸 매체에 대한 응원으로 봐도 좋을 듯 싶다. 적극적인 참여로 분위기를 돋운 팀에게 주는 참가상은 자동차를 조립해온 오픈소스와 콜라보 제안으로 활기를 불어넣은 AD FOCUS에게 돌아갔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뛰놀고, 교육의 기회가 재정 형편과 무관하게 균등하게 주어지고, 낙후된 골목과 지역이 생기를 되찾은 세상. 2016년 청자발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아주 불가능한 상상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얼마나 바뀌었는가’라는 결과보다는 질문을 멈추지 않고 완주하는 과정의 작은 변화들을 주목할 일이다. 보다 나은 사회를 꿈꾸고 고민하는 청소년들이 ‘RE디자인’한 세상을 기대해본다.
글 고우정 | 사진 조재무
▶ [1편보기] 2016 청소년 자발적 사회문화활동 지원사업 오리엔테이션 세상의 중심에서 ‘청소년다움’을 외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