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이 스민 아름다운재단과의 인연
목적지는 인천광역시 연수구였다. 기부자소통팀 서수지 간사가 서울을 빠져나와 그곳으로 2시간여를 내달렸다. 아름다운재단의 오랜 기부자 박혜지 씨를 만나러 가는 길목. 그녀가 기부를 시작한 게 2004년 여름이었으니 벌써 12년이 지났다. 그녀는 그 긴 시간 단 한순간도 기부를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무엇이 그녀를 오랜 기부자로 만들었을까? 박혜지 기부자는 서수지 간사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과거가 후루룩 되감겼다.
첫 직장이 외국계 회사였는데 일하기 참 좋은 환경이었어요. 그런데도 늘 갈증이 있었죠. 한 번 사는 인생 사적인 일보다는 공공의 일을 했으면 좋겠다 싶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일을 해도 만족스럽거나 행복하지가 않고. 그래서 회사를 그만뒀어요. 출장 다니면서 알게 된 프랑스 해비타트(Habitat)에 가서 일하겠다고 마음먹고서요. 그때가 30대 중반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용감했죠(웃음).”
이직을 준비하던 어느 날이었다. MBC 교양프로그램에서 아름다운재단의 ‘소원우체통’ 캠페인 을 방영 중이었다. 장애를 가진 아동양육시설 아이의 소원을 들어주는 내용에 박혜지 씨는 감동했다. 그리고 ‘프랑스까지 갈 것 없겠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좋은 단체가 있는데!’ 생각했다. 운명처럼 아름다운재단 신입간사 채용 공고가 떴고 그녀는 응시했다. 무려 300대 1의 경쟁을 뚫고 당당히 입사한 게 2003년이었다.
“아름다운재단 간사로 일하면서 사회에 대한 정의와 사랑이 넘치는 유능한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에 비해 저는 능력이 부족하더라고요. 마음과 다르게 제가 간사로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어요. 이전 직장보다 아무래도 월급이 적었거든요, 하하. 이런 저런 고민 끝에 그리 오래 일하진 못했어요. 대신 기부로 재단의 뜻에 동참하겠다 결심했죠.”
투명한 운영과 다양하고 특화된 배분
기부한 돈이 정말 필요한 곳에 쓰이는 지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곳. 박혜지 씨의 기부 기준은 운영과 배분이 분리돼 있는 투명한 단체였다. 그것이 그녀가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퇴사하면서 반드시 아름다운재단의 기부자가 되겠다고 결심했어요. 일해 본 곳이라 그 투명성을 확신할 수 있었죠. 결혼한 뒤엔 남편 또한 기부자로 만들었고요(웃음). 사실 자동이체를 걸어두고 대개 잊고 지내요. 연초에 가계 상황에 따라 금액을 조정하고요. 제 연봉이 인상되고 부수입이 생기면 기부액이 더 올라갈 거고 가계 규모가 줄면 그에 맞게 조정이 되겠죠. 그래도 꾸준히 계속 나눌 거란 건 변하지 않아요.”
그녀는 현재 아동청소년과 사회적약자지원 사업에 기부하고 있다. 남편 역시 함께 아동청소년을 지원하기 시작한 지 7년째이다. 그뿐인가. 한때는 공익활동을 지원하는데 힘을 보탰고, 아동청소년여행지원사업과 한부모여성가장창업지원사업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재단에서 어떤 사업들을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똑 소리 나는 기부자가 아닐 수 없다. 정말 구석구석 온 사업을 두루 살피는 그녀는 이처럼 구체적인 배분사업을 특히 좋아한다.
“정부가 하지 못하는 복지사각지대를 위한 다양하고 특화된 배분이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하게 만듭니다. 정부는 정책과 예산에 맞춰 복지를 실행하지만, 아름다운재단은 실제로 어디에 돈이 필요한지 발로 뛰어서 욕구를 파악하고 알맞은 지원을 해주는 게 마음에 듭니다. 실제로 이 부분은 제 딸 서영이가 살아갈 사회, 함께 지낼 사람들을 위한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똑같은 평수인데도 어떤 동네에 사느냐, 최대 몇 평짜리 아파트가 있는 단지인가에 따라 달라지는 친구들의 ‘우리집’ 평가가 이상했는지 서영이는 “엄마, 우리 집은 부자야? 우리 집은 가난해?”라고 물었고 그때마다 박혜지 기부자는 “우리는 평범하다”고 답해준다. 그리고 세 식구 살기에 불필요하게 더 넓은 공간은 사치다, 그 돈이 있으면 기부를 하겠다고 덧붙인다.
나는 변하지 않았는데 달라지는 것.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마음을 딸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나눔을 이야기하게 된다. 서영이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 관심을 가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 맥락에서 그녀는 기부자가 참여할 수 있는 아름다운재단 차원의 행사를 제안한다. 아이와 함께 참여해서 아이에게 엄마가 기부하고 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 왜 나눔이 필요한지를 보여줄 기회를 희망한다.
나는 왜 기부하는가
“어린 시절 살던 집 부엌에 쪽문이 있었고 동네 거지할아버지가 그 문 쪽 골목에 항상 앉아 계셨어요. 아직도 생각나는 게 엄마가 새벽에 갓 지은 밥과 반찬을 거지할아버지에게 주셨던 거예요. 부모님이 안 계셔서 등록금 때문에 학교에 못 가는 학생들도 도와주셨죠. 그때 보고 배운 것들이 나눔을 당연하게 만든 것 같아요.”
그녀에게 기부는 돈이 있거나 누군가를 돕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다. 밥 먹듯이 당연한 것. 정치학을 전공하며 자유와 평등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는지 고민한 그녀에게 기부는 굉장히 유용한 도구이기도 하다.
“이 세계를 동그란 파이라고 가정할 때 우리는 각자의 능력과 재능에 따라 서로 다른 파이 조각을 차지하고 있어요. 그 전제에서 저는 늘 생각해요. 만약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파이를 가지고 있다면 나보다 파이를 못 가진 사람이나 훨씬 적게 가진 사람과 나눠야 한다고. 그건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 자신을 자유롭고 평등하게 만드는 일이죠.”
박혜지 기부자는 무시로 스스로에게 ‘왜 기부하는가’ 질문한다. 신뢰는 의심을 발판 삼아 더 굳건해진다. 이것이 언제나 첫 기부를 결심하던 그 자리에 서 있는 그녀만의 노하우다. 12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기부할 수 있는 아주 당연한 이유다. 그래서 나눔의 의미를 묻자 곧바로 “나눔이란 ‘사랑’이다”라고 답한 것일 테다. 망설임 없이 단번에 써내려가 오히려 물어본 간사가 흠칫 놀랄 만큼, 그녀는 늘 나눔을 생각한다. 그렇기에 인터뷰를 마치며 그녀가 덧붙인 아름다운재단과 간사들을 향한 응원은 그 울림이 남다르다. 오래도록 기억되어 든든한 뒷심으로 자리할 것이 분명하다.
“제가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해서 해주고 계셔서 늘 감사합니다. 꾸준한 기부로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글 우승연 ㅣ 사진 조재무
아직도 살아있는 입사선배
박혜지 기부자님! 간사님이라고 부르는게 더 익숙한 두땡땡 간사입니다.
나눔으로 계속 재단과 함께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반가웠습니다.
저 아직 살아있다!!!고 인사드리고, 기부자 행사에서 꼭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