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부산이다! 

부산은 왠지 모르게 나에게 설레는 곳이다. 군 제대 후 부산을 찾아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였고, 재단 입사 직전에 또 다시 혼자 부산을 여행하며 각오를 다진 기억 때문인지 부산이 나에게 주는 감상은 조금은 특별하다. 그렇기에 서울에서 출발하는 부산 출장도 그리 낯설지 않았다. 이번 출장은 아름다운재단과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가 협력하여 진행하는 ‘2013 장애아동청소년 맞춤형 보조기구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장애아동 및 청소년에게 맞춤형 보조기구를 지원하는 현장을 참관한 것이다. 

외출

부산역에서 부산광역시보조기구센터의 선생님을 만나 대상자의 집에 방문하기 위해 차를 타고 가는 길은 꽤 험했다. 그렇지만 관광객 위주의 동네만 가보다가 진짜 부산 사람들이 사는 일반 거주 지역에 간다는 느낌이 들어 살짝 설레기도 했다. 우리가 처음 방문하기로 한 곳은 부산 서쪽 지역에 위치한 창우(가명)네 집으로 임대아파트 단지 안에 있었다. 단지가 조금 오래된 곳이다 보니 지하주차장이 없어 주차하기가 너무 어려웠지만, 수많은 차들 사이에서 발견한 작은 틈에 힘들게 주차하고 곧장 창우네 집으로 올라갔다. 

   

창우는 지체 아동으로 초등학교 3학년이지만 혼자 설 수가 없어 항상 누워 있다고 한다. 그리고 홀로 계신 어머니도 같은 증상으로 인해 창우를 도와주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활동보조인이 돌아가고 나면 창우나 그 어머니 모두 집 밖에 한발자국도 나갈 수 없었다. 감옥을 ‘외부와 단절되어 자아의 의지로 탈출이 불가능한 물리적 공간’이라 정의하고 이를 조금 과격하게 적용한다면, 10평 남짓한 그 작은 공간이 감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창우를 둘러싼 상황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우려와 달리 창우는 의지가 있는 밝은 아이였다.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립자세 보조기구 훈련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창우 역시 다리가 지탱해주지 못해 많이 힘들어했지만 창우의 눈빛은 정말로 진지했다. 나는 그 노력을 보며 언젠가는 창우가 목발을 짚고서라도 스스로 집 밖에 나서게 될 날이 올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을 의지로 이겨내는 미담이 내 주위에서, 그것도 창우로 부터 시작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맞춤형 제품이기 때문에 창우의 현재 신체상태에 맞춰 보조기구를 조절해야 한다

당연하지 않은 것

창우에게 보조기구를 지원한 후 우리는 간단히 점심을 먹고 동호(가명)의 집으로 향했다. 뇌병변을 앓고 있는 고등학생인 동호는 소파에 앉아 우리를 맞아주었다. 반갑게 인사한 동호는 우리가 준비해간 이동기립 보조기구(기립 휠체어)에 오르기 위해 바닥을 기어와 힘겹게 기립 휠체어에 올라탔다. 

동호에게 지원한 이동기립 보조기구는 이동 시에는 휠체어로 사용하다가, 훈련이 필요할 때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기립자세 보조기구로 전환되는 제품이었다. 휠체어에 자리 잡은 동호는 불편한 오른손이 아닌 왼손을 이용하여 버튼을 눌러 천천히 일어났다. 자리에 앉아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일어서니 상당히 키가 컸다. 이렇게 키가 크지만 항상 자리에 앉아 친구들을 올려다보았을 동호의 교실 풍경을 그려보니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이동기립 휠체어를 지원 받은 동호가 가장 좋은 하는 점은 무엇일까?

내 예상과는 다르게 동호는 냉장고를 이용할 수 있어 너무 좋다고 했다. 예전에는 냉장고까지 기어가도 일어설 수 없기에 윗칸에 있는 음식을 꺼내 먹을 수 없었는데, 이제는 윗칸에 있는 음식도 꺼낼 수 있다며 상당히 좋아했다.

솔직히 나는 동호가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낼 수 있어 좋다고 대답할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와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겼던 것을 그동안 동호가 얼마나 해보고 싶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無경험의 문제 & 지방의 문제

사회학을 전공한 나와 내 학과 친구들은 사회 불평등에 관심이 많아 빈곤의 문제 등 사회 부조리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특강을 오신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님이 소외된 지방의 문제를 설명하며 ‘너희 모두는 지방의 문제에 관심이 없지 않나?’ 라고 물어보셨을 때 우리 모두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서울에 살면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누렸던 것을 예전에는 특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깨어있는 대학생이라고 자부했던 우리에게 그 때의 기억은 지금도 부끄러운 모습으로 남아있다.

부산에서 그 기억이 떠오른 것은 우연만이 아닐 것 같다. 창우와 동호의 사례를 통해 내가 자연스럽게 누리는 것에서 배제되었을 때의 불편함을 깨달았고, 부산광역시 보조기구센터 선생님을 통해 지방 아이들이 수도권 아이들에 비해 소외되어 있다는 것도 알았기 때문이다. “같은 장애가 있어도 서울에 사는 아이들은 기회라도 있지, 부산의 아이들은 보조기구를 지원 받을 기회가 거의 없어요.” 라는 부산광역시 보조기구센터 선생님의 말은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 또 다른 열쇠였다. 

부산에 와서 지방 소외의 문제를 깨닫는 등 나는 현장에 나갈 때마다 숙제를 하나씩 안고 돌아온다. 다행히 아직은 부담스럽지 않은 이러한 숙제들을 하나씩 해결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부담을 뒤덮는 해결의 의지를 발견한 것은 또 다른 성과라 위안 삼아 본다. 

 


아름다운재단의 <사회적돌봄> 배분사업이 바라보는 복지는 “사회로 부터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권리”입니다. 주거권, 건강권, 교육문화권, 생계권을 중심으로 취약계층의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고자 합니다. 그 중 장애아동청소년의 교육문화권을 지원하는 맞춤형보조기구 지원사업은 아이들이 스스로 이동의 자유와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본 사업은 행복한동행기금을 기반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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