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짝 나아간 그곳에서 상상하고 희망하다
어둔 골목을 밝힌 ‘참신나는학교’
온갖 상점과 프랜차이즈, 원룸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도열된 동묘역 거리는 종일 부산스럽다. 몇몇 가게는 새 단장을 이유로 벽을 허물고 장식을 덧대느라 분주하고, 몇몇 원룸은 들고나는 방주인을 맞이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 뒤로 큰길에서 갈라져 나와 이리저리 뻗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3,00여개의 봉제공장이 밀집된 창신동 나타난다. 짐을 옮기고 손님과 이야기하느라 왁자한 그 기운을 밟고서 골목 모퉁이를 돌아 성큼 걸어 들어간다. 소규모 봉제공장 돌아가고 오토바이 짐꾼이 좁은 길을 누빈다. 세월을 가늠할 수 없는 이곳은 처음 온 사람은 길 찾기가 쉽지 않은 동대문 의류시장 부근. 그곳에 ‘참신나는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워낙엔 동대문지역 영세사업장 여성봉제 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과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목적으로 2003년에 설립한 단체 ‘참여성노동복지터’(이하 ‘참터’) 건물이에요. 지역아동센터 ‘참신나는학교’는 그 ‘참터’의 정신을 이어받아 의류봉제 노동자들의 육아문제 해결을 위해 사단법인에서 운영하고 있어요. 방과 후 보충수업과 저녁식사 제공하는 등 일하는 여성들에겐 든든한 버팀목으로, 아이들에겐 신나는 공간으로 자리하려고 노력합니다.”
참신나는학교 아이들의 부모님은 주변 봉제공장에서 일한다. 밤새도록 만들어서 아침에 출하하는 패턴이라 방과 후 아이들은 방치되기 쉬웠다. 낙후된 건물 사이 좁고 어두컴컴한 골목을 돌아다니는 아슬아슬한 일상. 참신나는학교는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2003년에 설립해 13년여 동안 운영되고 있다.
“이 지역에 지역아동센터만 6개예요. 흔치 않은 일이죠. 그만큼 열악하다는 이야기인데 다문화, 한부모, 저소득층, 차상위계층 아이들이 많은 지역이고요. 저희 센터를 이용하는 아이들은 현재 초등학교 1학년에서 6학년생까지 모두 35명입니다. 방학이나 학기 중이나 상관없이 오전 10시부터 저녁까지 학습프로그램과 특기적성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돕고 있어요. 아름다운재단과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아동청소년 특기적성활동 지원사업 (아티스트웨이)이 후자인 특기적성프로그램 중 하나입니다.”
뮤지컬을 배우며 여럿이 함께 빛나다
참신나는학교가 ‘2016년 아동청소년 특기적성활동 지원사업’ 아티스트웨이에 지원한 건 지난해에 이어 올해로 두 번째다. 전문 뮤지컬 강사를 섭외해 5월부터 11월까지 7개월 동안 매주 한 번씩 무려 30여 차례의 뮤지컬 수업을 진행한다. 기존의 기악수업 외에 더 많은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 스스로를 자유로이 드러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프로그램이다.
수업의 목적은 아동청소년의 다양한 특기와 적성을 개발하고 스트레스 해소와 정서적 안정을 꾀하는 것. 부모의 소득에 따라 아이들의 경험이 달라지고 그 차이가 진로 선택에 미치는 영향을 조금이라도 바꾸려는 노력이다. 참신나는학교의 권소연 생활복지사는 음악으로 아이들의 내일이 다르게 그려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2016년 아티스트웨이에서는 뮤지컬과 바이올린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바이올린 수업은 지난해 배웠던 아이들을 대상으로 연속 지원하고 있고, 뮤지컬은 전체 아이들이 무대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매주 월요일마다 걸어서 10분 거리인 주민센터에 가서 <라이온 킹>을 연습합니다. 뮤지컬이 좋은 건 다른 수업과 달리 모든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경험을 나누고 함께 하려고 서로를 배려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아티스트웨이를 경험한 아이들의 눈에 띄는 변화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악기를 지속적이고 전문적으로 배우면서 높이게 된 자존감이다. 학교 행사나 장기자랑 발표가 있을 때 아이들은 주저 없이 자신의 악기를 떠올린다. 다른 사람 앞에 나서는 데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자신이 배운 악기를 또래와 나누려는 모습은 굉장한 변화다. 설레는 마음으로 수업을 기다리는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반짝반짝 빛이 난다. 자신을 믿고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이 빚어낸 아름다움. 그것이 두 번째의 변화 ‘더불어 나아가기’를 이끈다고 권소연 생활복지사는 귀띔한다.
“무리 중에 발달이 조금 더딘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의 돌방행동이 뮤지컬을 방해하곤 했어요. 그때 다른 아이들이 쟤 때문에 망할 수 있겠다, 불안해했고 그 주제로 아이들과 충분히 이야기했어요. 작년만 해도 힘들어서 피하기만 하던 아이들이 올해는 ‘이렇게 하면 안 돼’, ‘손 씻고 와’ 하며 말을 걸고 함께 하려고 노력하더라고요. 뭔가 어려워하거나 당황하는 듯 보이면 주변의 아이들이 무엇 때문에 그런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먼저 물어봐요. 물론 함께 하는 게 쉽지 않죠. 그래도 그 아이와 함께 가기로 아이들이 결정했고 그 과정을 서로 배려하며 나아가고 있어요. 성공적인 무대만큼이나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경험이 다른 내일을 호출하다
선배의 소개로 참신나는학교와 인연을 맺게 된 아르떼 소속 선은미 문화예술강사는 아티스트웨이로 2년째 아이들과 만난다. 뮤지컬에 필요한 스토리 구성, 노래, 안무를 가르치며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는 선 강사는 쉽지 않은 수업을 지치지 않고 따라오는 아이들이 대견하다.
“다른 곳에선 이런 시간이 없잖아요. 직접 몸을 움직이고 노래를 부르며 자기 생각을 자유로이 표현하는 시간이요. 자신의 에너지가 어떻게 분출되는지 느끼고 그것을 조율하는 것도 이 과정 안에 녹아있습니다. 사실 그 과정 중심의 교육이 중요하죠. 그리고 그 숱한 과정을 거쳐 무대 위에서 공연을 치러내며 지치고 힘든 순간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걸 배우게 되죠.”
내가 해냈어, 라는 성취감은 지난 과정을 의미 있게 곱씹게 만든다. 초등학교 때 경험한 별 것 아닌 한 순간의 기억은 이후 맞닥뜨리는 과제 수행의 든든한 뒷심이 된다. 뮤지컬이나 악기를 배운다는 건 경험의 다양성뿐 아니라 스스로를 믿는 계기인 셈이다. 바로 자신감을 획득하는 순간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지루해서건 어려워서건 한계에 부딪쳐 자기 통제가 안 되는 순간은 항상 존재하게 마련이므로. 그럴 때는 굳이 끌어당기지 않고 잠시 쉬게 한다. 억지로 이끌면 외려 튕겨나가기 십상이다. 다만 재밌는 시간을 펼쳐주면 된다. 다른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순간 ‘나도 해볼까’ 싶어 엉덩이를 들썩이는 게 아이들이다. 중요한 건 자발적 참여다. 참신나는센터와 작업하며 선 강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다.
“어떤 상황에서건 자신의 감정과 에너지를 건강하게 발산하는 방법, 자신의 생각을 건강하게 얘기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을 돕는 여러 방법 중 하나가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예술 프로그램이에요. 과정 안에서 자신의 의견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수용되는지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거든요. 안전하고 즐겁게 자발적인 동기를 쥘 수 있어요.”
선 강사는 아티스트웨이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지원이라고 덧붙인다. 오랫동안 아이들과 만나며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달아서다. 참신나는학교의 권소연 생활복지사 역시 마찬가지다. 소득의 격차로 아이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결핍이 상실과 좌절로 이어져서 성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라며, 그런 이유로 미래의 가능성을 체념하지 않도록 경험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일주일에 1시간 동안씩 길어야 2년을 뮤지컬을 연습하고 바이올린을 배운다고 대단한 변화가 생기는 건 아닐 것이다. 아티스트웨이가 굉장한 희망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게 무엇이든 ‘희망을 품어볼만하구나’ 스스로를 응원할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전보다 한 발짝 나아간 곳에서 세상과 만날 수 있다. 아름다운재단과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의 ‘2016년 아동청소년 특기적성활동 지원사업’ 아티스트웨이가 꼭 필요한 이유다.
글 우승연ㅣ 사진 임다윤
달리
빵과 장미…라는 말처럼 아이들에게 빵만 줄 수는 없겠지요. 장미의 아름다움, 도도함, 자신감을 아이들에게도 잘 전해지고 있다니 참 뿌듯하고 기쁩니다. 아이들이 사진 속에서 처럼 일상에서도 저렇게 건강하게 웃으며 살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네요.
아름다운재단 공식블로그
의견 고맙습니다!! 달리님 말처럼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들이 더 많아져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웃으며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