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경험으로 위축된 자존감을 이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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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으로 산과 물 등 자연자원이 풍부하고 풍광이 좋은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산촌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포도화동지역아동센터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으로 산과 물 등 자연자원이 풍부하고 풍광이 좋은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산촌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포도화동지역아동센터


경험의 폭, 자존감을 쥐락펴락하다

고즈넉한 신작로를 밟고 도착한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이소리.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으로 산과 물 등 자연자원이 풍부하고 풍광이 좋은 화동면, 그 중에서 이소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촌마을이다. 해발고도 250m여가 넘는 고개와 골짜기가 품어 안은 고랭분지의 비옥한 토지에선 쌀과 인삼, 오이, 포도 등이 재배된다. 동남쪽으로 흐르는 두 갈래의 하천은 천혜의 쾌적한 자연환경의 백미다. 그 풍요로움 때문인지 예부터 인심 좋기로 유명했다. 바로 그곳에 자리한 게 2009년 7월에 문을 연 ‘포도화동지역아동센터’다. 화동면사무소와 화동전력공사, 화동면파출소가 있고 500m 반경으로 화동우체국, 화동면보건지소, 화동초등학교, 좀 더 걸으면 화동중학교가 자리하는, 이른바 이소리의 중심부가 이 지역 아이들의 아지트다.  

“이 지역은 초등학교 50여명, 중학생 30여명의 아동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요즘엔 귀농, 귀촌 요인이 있어서 조금씩 증가하고 있는 추세예요. 이곳은 자연 환경은 좋은데 문화적으로나 교육적으로 다른 활동을 할 수 없어요. 관공서 외엔 다른 시설이랄 게 없고, 아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지역아동센터 외에는 없어요.”

2009년 12월부터 센터를 맡아온 이혜경 센터장은 현재 초등학교 저학년 열세 명과 고학년 여섯 명, 중학생 한 명을 포함한 스무 명의 아이들과 여러 프로그램을 경험하고 있다. 그녀가 신경 쓰는 부분은 두 가지다. 아동들이 방과 후에 시간을 안전하게 보내는 것과 하고 싶은 욕구를 충분히 표현하고 실현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 7년 동안 아이들과 부대끼며 거머쥔 포도화동지역아동센터 운영의 궁극적인 목표다.

이혜경 센터장은 센터 아이들이 자신의 욕구를 통해 내적인 힘을 확인하는 경험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이혜경 센터장이 신경 쓰는 부분은 아동들이 방과 후에 시간을 안전하게 보내는 것과 하고 싶은 욕구를 충분히 표현하고 실현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 두가지이다


“경험의 폭이 좁아서 사회성이 많이 결여돼 있어요. 여러 대인관계를 통해 사회성 키울 텐데 텔레비전을 제외하면 그 기회가 없어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이곳에서는 활개를 치고 다니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위축되고 기가 죽어서 자기 기량을 뽐내지 못하죠. 수줍어서 대화도 제대로 안 될 정도이고. 그러다 보니 자신이 지닌 내적인 힘이 얼마인지 알 수 없어요. 그래서 저희 센터에서는 자신의 욕구를 통해 내적인 힘을 확인하는 경험을 제공하려고 노력합니다.”

자기 안의 보물을 발견하기까지

주체는 아이들이에요. 스스로 호기심이 생기고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는 게 중요하죠

주체는 아이들이에요. 스스로 호기심이 생기고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는 게 중요하죠


포도화동지역아동센터는 자신이 보물을 품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보물찾기를 제안한다. 그리 발견한 보물을 어떻게 가꾸는 게 좋은지, 어디에 활용할 수 있는지 함께 살핀다. 아무리 별 것 아니라도 제 안의 뭔가를 확인하고 ‘보물’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만으로 용기가 샘솟는다는 것을 아는 까닭. 세상과 맞장 뜰만큼 자존감이 상승하는 순간이다. 이 센터장은 그런 맥락에서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문화예술을 경험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자유로이 스스로를 탐색하는 데 그보다 좋은 도구는 없다고 덧붙인다. 그래서 아름다운재단과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아티스트웨이가 고맙다. 아이들의 보물을 캐낼 때 필요한 수단이나 다름없는 지원이다.

“주체는 아이들이에요. 스스로 호기심이 생기고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는 게 중요하죠. 그걸 담아내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샌드아트’를 알게 됐어요. 스토리가 있는 샌드아트! 내레이션과 배경음악이 들어가는 융합장르라서 더 의미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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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지원을 받으며 샌드아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지원을 받으며 샌드아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사막 모래와 라이트 박스, 그리고 영상을 도구로 이뤄지는 샌드아트는 이 센터장이 직접 지도한다. 아이들 스스로 작품을 선정한 뒤 콘티 작업에 들어간다. 줄거리를 요약하고 그 안에서 무엇을 그려서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내용에 맞는 그림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프로그램 지원을 받고 있어요. 작년에는 초등학교, 중학교 구분 없이 모든 아이들에게 기회를 줬어요. 모두 하고 싶다기에 아이들 욕구대로 흘러간 거죠. 1년쯤 하고 나니 누가 어떤지 알겠더라고요. 호기심에 시작했지만 반복적인 작업에 싫증내는 아이, 모래그림이 마음대로 안 되자 포기하는 아이, 잘 하진 못해도 성실한 아이, 재능을 보이는 아이… 그래서 올해는 조금 더 업그레이드해서 10명으로 팀을 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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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서서히 변화했다

아이들의 눈빛이 샌드아트에 몰입하며 달라졌다. 눈을 반짝이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아이들은 서서히 변화했다. 학교 성적처럼 점수로 치환되지 않는 마음의 변화가 쉬이 드러날 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센터장은 아이들이 분명 달라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심드렁하거나 산만하거나 주눅 들거나 화가 난 아이들의 눈빛이 샌드아트에 몰입하며 달라졌다. 눈을 반짝이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두드러진 변화는 이른바 ‘나 샌드아트 하는 사람이야’라는 의식이다. 소소하지만 학교에서 샌드아트 배웠다고 자랑을 한다든지, 공연을 마치고 ‘우리가 하는 게 다른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는 거구나’ 느끼며 자부심을 가지는 것. 아이들은 샌드아트를 경험하며 위축된 스스로를 이완시켰다. 이 센터장이 아티스트웨이를 통해 닿고 싶은 결과였다.

샌드아트 위에서 성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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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는 도로시의 모험을 담은 <오즈의 마법사>와 센터에서의 하루를 시간 흐름으로 구성한 <센터 이야기>로 무대에 올랐다. 배경음악도 직접 선정할뿐더러 생생한 느낌을 가지려고 내레이션도 라이브로 진행했다. 되도록 여러 가지 실험으로 더 적극적이고 자유로운 공연을 준비하고 싶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아이들의 욕구를 더 잘 드러내기를 바랐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올해 공연에선 내레이션을 배경음악과 함께 녹음해서 사용할 거예요. 어떤 것을 하느냐고요. <관계>라는 동화와 아동권리 중 15개를 선정해 그에 맞는 장면을 준비했어요. 배울 권리, 놀 권리, 안전할 권리, 평등할 권리,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보장받을 권리, 부모로부터 양육 받을 권리, 의료와 건강권 등을 아이들이 직접 골랐어요. 놀라웠죠. 아이들 스스로 자신이 욕구를 드러내는 순간이었거든요. 필요한 것을 선택하며 그 이유를 장면으로 나타냈으니까요.”

아이들은 샌드아트 위에서 성장하고 있다

아이들은 샌드아트 위에서 성장하고 있다


<관계>의 콘티를 구성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관계란 뭐지?”라는 대사를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하는지 함께 이야기 나눌 때 아이들은 서로의 의견에 깊이 공감했다. 별 생각 없이 뛰어노는 듯 보이는 아이들은 자기만의 언어로 세상을 이해하고 있었다. 먼저 배운 아이는 새로운 아이에게 이미 터득한 방법을 알려주고, 누군가 조금밖에 그려낼 수 없다면 다른 이들이 좀 더 부지런히 움직였다. 재능이 없는 아이는 기죽는 대신 기술을 익혔다. 아이들은 샌드아트 위에서 성장했다. 알지 못했던 자신을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수용한다. 자신을 맘껏 탐색하고 관계를 실험할 수 있는 안전한 토대가 바로 샌드아트다. 아티스트웨이를 지원 받았기에 가능한 아름다운 변화다.

글 우승연ㅣ 사진 임다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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