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시험과 대적할 만한 나눔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당일이었다. 아침부터 온통 수능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예년보다 날이 따뜻하다, 후배들의 응원전이 풍자와 해학으로 넘쳤다, 부모님의 염원이 뜨거웠다, 학교를 잘못 찾아갔으나 택시를 타고 무사히 도착했다, 1교시 국어영역 시험이 어려웠다… 늘 그랬듯 모두의 초점은 ‘시험’에 맞춰져 있었다.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한 채 무한경쟁을 경험하는 바로 그날, 주위를 둘러보며 ‘나’처럼 ‘우리’를 고민하고 ‘공부’만큼이나 ‘나눔’에 몰입하는 반가운 손님이 아름다운재단을 찾아왔다.
4년 전부터 해마다 직접 방문해 손수 기부금을 건네주는 영동일고등학교 광고동아리 CAM. 학교 축제에서 직접 만든 액세서리를 판매한 수익금으로 시작된 기부가 이렇게나 이어질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야무지고 발랄한 여섯 명의 학생이 찾아왔던 2013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4년째. “동아리 전통으로 만들겠다”는 포부에 걸맞게 올해는 배로 늘어난 학생들이 찾아왔다.
“저희의 메인 활동은 수요 조사를 하고 필요로 하는 물건을 직접 만들고 팔아서 수익금을 만드는 거예요. 마케팅 조사도 하고 책도 읽죠. 굉장히 활발해요. 매년 말 학생회에서 평가하는 우수동아리이기도 해서 경쟁률도 세요. 면접을 통해 회원을 뽑는데 ‘창의적인 사고’가 기준이에요. 엉뚱한 질문도 많이 하고 그만큼 재밌고 독창적인 답변도 많아요.”
이를테면 ‘자신을 과일에 빗대어 표현하라’는 질문에 ‘망고’라고 답한다. 망고처럼 희귀한 인재라서 어디에서도 구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그런가 하면 아름다운재단 오는 길에 마주한 건강기부계단을 부지런히 오르며 단돈 100원이라도 기부하는 이들도 CAM이다. 주어진 것에 순응하기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그로 인해 얻은 경험을 주저 없이 나누는 사람들. CAM의 4번째 기부가 가능한 이유다.
12명의 서로 다른 나눔 이야기
“예전 선배들이 그랬듯 이번 축제 때도 팔찌를 만들어 팔았어요. 그리고 야심찬 품목 두 개를 추가했는데 디퓨저와 석고방향제였어요. 각 반을 돌면서 아이들에게 물어봤거든요, 축제 때 뭘 사고 싶은지. 그때 나온 것들 중 재료 구하기 쉽고 만들기 어렵지 않은 품목을 추렸죠. 판매할 때 전단지에 기부 목적을 적어서 크리스마스 씰처럼 좋은 의미로 시작했으니 동참해 달라고 이야기했어요. 반응이요? 당연히 좋았죠!”
총 매출은 60만 원여. 거기에서 재료비를 제외한 순수익이 334,100원이었다. A부터 Z까지 꼼꼼하게 살피고 전략을 세워 이뤄낸 결과였다. 많이 벌수록 많이 기부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달려온 쾌거랄까. 334,100원이라는 금액은 그저 아직 어린 학생들이 기특하게 모은 푼돈이 아니었다. 그것은 CAM은 물론 영동일고등학교 학생들이 꺼내든 속 깊은 마음이었다. 제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를 위해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한 나눔이었다.
기부금의 액수보다 기부하는 사람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진심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조우진, 실행으로 옮기지 못해서 늘 아쉬웠는데 이렇게 참여하게 돼서 기부에 한 발짝 다가선 느낌이라는 조용규, 대가 없이 주고 조건 없이 받는 순환하는 구조의 기부를 고민한다는 박상원.
한 가지 일로 두 가지 이득을 볼 수 있는 기부로 따뜻한 마음을 얻은 이정혁, 불편할 만큼 기부하고 싶다는 정재우, 친구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기쁘다는 문상유, 기부와 함께 근본적인 정책 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김지윤.
다양한 방법의 기부를 궁리중이라는 이현지, 직접 만든 물건을 팔아서 그 수익금으로 첫 기부를 할 수 있어서 뜻 깊었다는 송경진, 돈이 없어도 해피빈으로 기부 가능케 한 재단을 알게 돼서 기쁜 곽윤서, 수많은 기부자와 동참하기로 결심한 김민, 물건을 만들면서 또 수익금을 기부하면서 느끼는 여러 감정, 생각이 소중한 김수인.
나눔을 향한 저마다의 이야기는 모두 반짝거렸다. 자료를 통해 아름다운재단의 역사를 이해하고 공간 구석구석을 돌며 그간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깨달은, 제 자신을 닮은 나눔이라 더욱 빛났다.
기부에 앞선 기부
재단 소개를 듣고 난 후 CAM은 기부 영역을 두고 갑론을박을 펼쳤다.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 사회적약자지원, 아동청소년지원을 선택했던 역대 CAM과 달리 올해는 아동보호시설퇴소 대학생들의 학비를 지원하는 [김군자할머니기금]과 [나눔문화] 두 영역에 관심을 보였다.
지난해 ‘청소년자발적여행활동지원사업’을 지원하며 “또래를 응원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던 마음은 어느새 훌쩍 자라 좀 더 본질적인 것을 고민했다. 당장 누군가를 돕는 것만큼이나 ‘기부’를 어떻게 독려할 것인가, 나눔의 일상화를 무엇으로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에 집중했다.
“이제껏 돈을 많이 버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여기 와서 보니 꼭 돈이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아요. 이곳에서 일하면 액수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무엇을 하며 사는가에 초점을 둔 삶을 생각해 본 거예요. 그건 기부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계단 오르기로 장애아동을 도울 수 있고 해피빈으로 기부할 수 있듯이 돈이 없어도 충분히 나눌 수 있다는 게 인상 깊었거든요, 오늘! 그래서 우리 기부금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기부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됐어요.”
CAM 12명이 머리를 맞대고 선택한 기부 영역은 [나눔문화1%기금]. 직접 만든 물품을 팔아 생애 첫 기부 활동을 경험하며 온몸으로 깨달은 나눔. 그 과정에서 CAM은 ‘나눔에 대한 믿음’과 ‘함께 하는 마음’을 품었다. CAM은 수십 년이 흐른 뒤에도 잊히지 않을 학창시절의 한복판에 ‘나눔’을 심었다.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키워갈 나눔을 기대해 본다.
글 우승연 ㅣ사진 조재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