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오늘, 우리의 이야기

애솔노리는 솔대노리협동조합에서 연원한 이름이다. 수원 송죽동의 옛 이름이 솔대마을이라 마을협동조합의 이름도 솔대노리이며, 이곳에 소속된 청소년 조합원들은 그들만의 자치단체를 꾸려 스스로 ‘어린 소나무’란 이름을 가졌다. 역사란 작금에도 유효한 ‘오늘, 우리의 일’임을 새기고자 떠난 2박3일간의 군산&대구행. 여행에서 돌아온 어린 소나무들의 키가 한 뼘 씩은 더 자란 것 같다.
 

기획 국내 애솔노리 팀

기획 국내 애솔노리 팀의 ‘평화의 소녀상과 함께 하는 근대로의 여행’

살아있는 역사와 마주하기

‘알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내 삶으로 끌어안을 수 있을 테니까. 역사교과서 국정화, 한․일 위안부 합의 등 역사를 둘러싼 최근의 논쟁을 지켜보며, 애솔노리 모둠원들은 이러한 이슈가 청소년 자신과 무관하지 않다는 자각을 공유했다.

애솔노리 대표 최혜강

애솔노리 대표 최혜강


“영화 <귀향>도 하나의 계기가 됐어요. 영화를 보기 전 보다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거든요. 하지만 영화나 책은 아무래도 간접적인 경험이라, 우리가 알아야 할 아픈 역사를 보다 가까이 접하고 싶었어요. 관심을 갖자고 말만 할 게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보자는 생각도 있었고요.” (최혜강)

‘평화의 소녀상과 함께 하는 근대로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여행지로 군산과 대구를 선택한 이유는 ‘근대 역사’를 키워드로 여행 루트를 짤 수 있었던 까닭이다. 호남, 충청의 쌀이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강제 수출됐던 만큼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가 오롯한 군산. 국채보상운동을 필두로 치열한 독립운동의 현장을 더듬을 수 있는 대구. 어떻게 처참히 빼앗기고, 또 어떻게 목숨 걸고 싸웠는지, 그 기억과 숨결이 깃든 골목과 건물들을 찬찬히 둘러보고 오리라 계획했다. 그리고 또 하나를 약속했다. 두 도시와의 첫 만남은 언제나 평화의 소녀상이어야 한다고. 

평화의 소녀상과 함께 한 여정

먼저, 수원 올림픽공원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부터 찾았다. 공원에 소녀상이 세워졌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지척에 두고도 찾아가 본 건 처음이었다. 평화의 소녀상은 가만히 들여다볼수록 서글펐다. 온전히 땅을 딛지 못하고 불안한 듯 뒤꿈치를 든 맨발, 뜯겨나간 머리카락과 주먹 쥔 작은 두 손, 소녀 뒤로 드리워진 할머니 그림자와 그 위에 앉은 하얀 나비… 마음에 남은 소녀상의 모습을 묘사하며, 아이들은 이내 숙연해졌다. 
 
군산의 소녀상은 국내 유일한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에서 만났다. 종교를 앞세운 식민 지배의 현장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소녀상을 세웠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참회하는 일본인들이 소녀상 건립을 위한 성금 모금에 동참했다는 사실이 미묘한 울림을 가져왔다.

아픈 역사의 현장에서 마주한 또 하나의 진실, 그것이 부끄러운 우리의 민낯일지라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아픈 역사의 현장에서 마주한 또 하나의 진실, 부끄러운 우리의 민낯일지라도,

“이번 여행 중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있었어요. 베트남 전쟁에 파병됐던 한국군이 민간인 학살과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고도 베트남에 사과하지 않았다는…. 일본과 다를 게 없잖아요? 우리도 사과를 해야 일본에 정당하게 사과를 요구할 수 있겠다 생각 했어요.” (이선아)

아픈 역사의 현장에서 마주한 또 하나의 진실. 그것이 부끄러운 우리의 민낯일지라도, 아이들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아픈 역사라도 흔적과 기록을 보존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어요

역사의 현장을 경험하며 치욕도, 슬픔도, 자긍심도, ‘오늘, 우리의 일’


“왜 치욕스러운 역사의 흔적들을 간직하고 보존해야 하나, 덮어버릴 순 없나… 솔직히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컸어요. 하지만 막상 가서 보니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가린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직접 보고, 경험하고, 느껴야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을 테고요 아픈 역사라도 흔적과 기록을 보존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어요.” (유지호)

대구여상 안의 소녀상은 그 또래 여학생들이 다니는 학교 안에서 만났기에 더욱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태극기를 두 손으로 꼭 쥐고 서 있는 대구 소녀상은 작고 가냘픈 체구에도 결연해보였다. 민수는 최근에 현장체험학습으로 수요집회를 다녀왔다. 여행을 다녀온 후라 그런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을 뵙게 된 마음이 각별했다. 2박3일 내내 함께 했던 소녀상의 애달픈 모습들이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 위로 겹쳐진 까닭이다.

우정이 꽃피는 뿌리 깊은 나무

마을 협동조합 안에 청소년 모둠인 만큼, 9명의 애솔놀이 모둠원들은 어려서부터 알고 지낸 동네친구들이다. 고1 친구들(가영, 혜강, 선아, 현욱, 민수, 재혁, 지호)의 경우 유치원 때부터 동창이라, 17년 인생 중 ‘11년 지기’가 대부분이라고. 2014년 애솔노리를 결성할 당시 목적은 하나, ‘학업에만 치이지 말고 즐겁게 놀자!’는 것이었다. 함께 음식을 만들어 장터에 팔기도 했고, 뜻 깊은 일을 해보자는 의견에 캠페인을 벌여 모은 돈을 몽골 나무심기 프로젝트에 전액 기부하기도 했다.

매주 토요일 마다 정기 모임을 가져왔기에 아이들은 공동의 프로젝트와 역할 분담에 익숙하다. 이는 두 살 터울 언니, 오빠들과 함께 여행을 도모한 중2 친구들(산, 은희)도 마찬가지. 심지어 차량 담당 은희는 견적서까지 뽑아 적정 가격의 미니버스를 섭외함으로써 모둠원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모둠대표 혜강은 가장 똑 부러진 멤버로 은희를 손꼽았으며, 이에 견해를 달리하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브레인, 은희’가 있다면 ‘카리스마, 산’도 있다. 과묵하고 차분한 이미지의 산이는, 알고 보니 혜강의 동생이었다. 9명의 친구들 중엔 이처럼 자매도 있고, 공개연애중인 현재진행형 커플도 있다. 사랑과 우정이 꽃피는 나무, 애솔노리의 현주소다.    

길 위에선 물음표와 느낌표, 말줄임표가 번갈아 찾아왔다. 더 궁금해지거나 가슴 깊이 각인된 장면이 있는가 하면, 먹먹하여 아무 말 할 수 없었던 순간도 숱하다. 아이들은 ‘교과서가 가르쳐주지 않은 것들을 알게 됐다’고, ‘잊지 말자 결심했다’고, ‘더 관심을 갖고 알아야겠다’고 입을 모았다. 역사의 현장을 밀착 경험함으로써 치욕도, 슬픔도, 자긍심도, ‘오늘, 우리의 일’로 가까이 느끼고자 했던 여행의 목적은 이렇게 이루어진 듯 싶다. 

글 고우정 ㅣ 사진 신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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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희망찾기란? 아름다운재단이 진행하는 청소년 자발적 여행활동지원사업 ‘ 길위의 희망찾기’ 는 2001년 부터 현재까지  아동청소년들에게 국내외 여행프로그램 지원함으로서’ 청소년 스스로 만들어가는 여행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획/비기획 부문으로 총 15개 단체에 지원되며, 2012년부터는 여행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트래블러스맵( http://www.travelersmap.co.kr/ )과 함께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비기획부문이란? 여행기획력이 부족한 단체의 경우 여행의 과정을 트래블러스맵 멘토와 함께 기획함으로써 공정여행의 기획과정을 경험케하고 자발적 활동을 통해 스스로 여행을 만들고 진행할 수 있도록 진행되는 부문입니다. 2016년에는 총 국내 3단체, 해외 2개 단체로 총 5개의 단체가 비기획부문으로 선발되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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