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삼양해변에 고아하게 솟아오른 원단봉. 오름길의 중간께 고즈넉한 계곡은 문시영(가명) 장학생만의 쉴만한 물가입니다. 새해의 소망을 다질 적에도 혹은 그해의 희망이 무너질 적에도 그는 홀로 계곡물에 발 담그고 앉아서 바다의 풍경에 빠져들곤 합니다.
수평선 너머로 아득한 바닷길……. 어쩌면 까마득한 인생길인 것도 같아서 더러 눈물도 지었습니다만, 결코 희망을 잃진 않습니다. 반짝반짝 등대 같은 존재들이 문시영 장학생이 삶을 항해할 수 있도록 꿈을 밝혀줬기 때문입니다.
홀로서기 위한 담금질
H대학교 호텔조리학과 4학년인 문시영 장학생에게는 하늘색 꿈이 있습니다. 바로 저명한 셰프로 발돋움하는 것. 어릴 적부터 요리가 좋았던 그는 소담한 음식도 곧잘 조리하였습니다. 그 같은 적성과 재능을 보육원장님이 염두에 두었나 봅니다. 고2 무렵 그에게 진로를 위해 조리학원을 장려하였습니다. 그는 흔쾌히 학원에 등록했고, 정성껏 요리를 배웠습니다. 이것저것 전문 지식을 학습하고, 하나둘 자격증도 취득하다 보니 그는 더욱이 요리사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고2 때 곧바로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딸 수 있었는데요. 이론 시험은 단번에 붙었지만 실기 시험은 세 번 도전했어요. 처음엔 옆의 아주머니들이 제 양념인데도 갖다 쓰시더라고요. 떨어졌죠. 다음엔 그래서 양념을 지켰지만 맛이 없었나 봐요. 하하하. 보통은 한식조리기능사가 관련 자격증 중 가장 힘들다고 하는데 저는 재미있더라고요.”
문시영 장학생은 물 흐르듯 호텔조리학과로 진학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싶었고, 이제는 경제적으로 온전히 자립하고 싶었습니다. 그건 그간 자신을 보살펴줬던 마음들에 대한 보답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다짐과 달리 삶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그대로라면 세상에 버틸 수 없을 것도 같았습니다. 고민 끝에 그는 특단의 결정을 취했습니다.
“제 정신력이나 의지력이 연약한 것 같더라고요. 단련할 필요가 있었죠. 그래서 병역이 면제였지만 병무청에 전화 걸어 입대하겠다고, 가능한 빠른 일정을 잡아달라고 부탁드렸어요.”
더는 외딴섬이 아니라고
문시영 장학생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전역 후 그는 한결 심신이 여물어졌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살이가 수월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전히 주된 학업과 고된 아르바이트의 병행에 지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쯤 보육원장님이 <아름다운재단>과 <아동자립지원단>의 ‘대학생교육비지원사업’을 알려줬습니다. 그 지원은 가뭄에 단비 같았습니다.
“평상시도 만만치 않지만 방학이면 학비랑 기숙사비도 마련해야 하거든요. 누구를 만나거나, 밥을 먹거나, 버스를 타거나 하면 천 원을 절약해야 하는 부분이 스트레스였는데요. 등록금에 생활비도 지원받게 되니 숨 돌릴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비로소 문시영 장학생은 학업에 점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지역의 요리대회에서 2등으로 입상할 수도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대학생교육비지원사업’은 의미가 남달랐습니다. 무엇보다 비슷한 환경에서 성장한 또래의 장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은 그동안의 외로움과 두려움은 자신만 겪는 슬픔과 아픔인 줄 알았습니다. 제주도에서만 나고 자라 더욱 그리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더는 외딴섬이 아니었습니다. 장학생들과의 소통과 공감은 이내 위로와 격려로 승화하였기 때문입니다.
“자치활동을 포함해서 장학생들과 모이는 순간은 저에게 항상 전환점이 되더라고요. 서로 얘기를 나누다 보면 스스로를 돌아보고 잘못된 부분은 고치게 되거든요. 그래서 장학생들끼리 깊숙이 교감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더 늘어난다면 좋을 것 같아요.”
바다 품은 꿈의 출항
‘대학생교육비지원사업’의 추억은 문시영 장학생의 가슴속에 켜켜이 쌓였습니다. 특히 장학생들이 제주도로 MT 왔을 적엔 가이드로도 활약했습니다. 돌이키면 ‘대학생교육비지원사업’에 지원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밤새 지도했던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각별하게 떠오릅니다. 감사합니다 할까 하니 수많은 선생님들과 후원자분들이 뇌리를 스칩니다. 세상이 막막해 마음을 닫으면 그에게 노크해서 삶을 열어준 존재들. 그는 그분들이 눈물겹게 아른거려 앞으로도 전심전력으로 살아갈 작정입니다.
“지인의 소개로 프랑스에서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분을 만났는데요. 함께 얘기하다 보니 제가 프랑스로 유학 오면 도와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졸업하면 현지의 레스토랑에서 그분한테 일을 배우고요. 불어를 익힌 다음에는 그곳에서 요리 관련 대학원 공부도 계획 중이에요.”
셰프를 꿈꾸는 미래의 여정이 뚜렷합니다. 그래서인지 문시영 장학생은 세간의 ‘샘킴’ 셰프보다 유명해지라고 응원도 듣곤 합니다. 한편으론 부담스럽지만 역시나 그는 그분들에 힘입어 꿈에 박차를 가합니다. 여담이지만 양식코스요리에 자신 있는 그는 이왕이면 어린이만을 위한 조리법도 계발할 예정입니다. 밥차 타고 난처한 형편의 어린이들에게 맛난 음식을 나눠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꿈의 나래를 펼치던 문시영 장학생은 그예 ‘대학생교육비지원사업’의 감동도 빠뜨리지 않습니다. ‘대학생교육비지원사업’은 마치 베개처럼 너무나도 포근했다고. 그런 베개라서 그는 눈감고 한껏 꿈을 꿀 수 있었나 봅니다. 문득 원단봉에서 한없이 바라보던 그의 바다가 그려집니다. 그 수평선 너머로 꿈꾸는 나라로 이제 그는 실제로 삶의 항로를 개척합니다. 아무렴 10년 후 그의 모습이 기대됩니다. 그쯤 그의 요리에는 바다가 들어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글 l 노현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