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시나리오] 이름으로 진행되는 여러 사업 중에서 유일하게 활동가 개인을 지원하는 사업이 있습니다. 2002년부터 매년 진행하는 ‘활동가 재충전 (휴식/해외연수) 지원사업’으로 활동가 스스로 쉼과 회복을 위해 기획한 재충전의 기회를 실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2016 변화의시나리오 활동가 재충전 해외연수부문 지원사업]은 2014년에 신설되었으며 소속된 단체에서 활동하는 이슈와 관련하여 해외 단체 또는 지역탐방을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2016년에는 총 7팀 27명의 활동가가 선정되어 해외연수를 다녀왔습니다. 김용구님은 기업의 인권책임에 대한 UN의 동향을 살피고자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2016 기업과 인권에 관한 UN포럼』에 참석하였습니다. 이후 인권단체들과 공동으로 포럼 내용을 공유하고 UN기업과 인권 이행지침 확산을 위한 연구와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2016년 2월쯤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해외진출 한국기업의 인권침해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는 기업인권네트워크 관계자였다. 유엔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이 5월에 한국을 방문하는 데 투자와 공공조달 관련 이슈로 한국 상황에 대해 정보를 전달해줄 것을 제안해왔다. 실무그룹은 방문 목적은 여러 가지였겠지만 그중 하나는 인권경영과 관련해 한국정부와 기업들이 국가의 인권보호 의무, 기업의 인권존중 의무, 인권 피해자에 대한 효과적인 구제책을 제공할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도 진행 중이지만 가습기 살균제 제품으로 인한 인권침해에 관련 기업들은 책임회피로 일관해왔었고, 국가는 이들 피해자에 대한 구제에 무관심했다. 국민연금 또한 관련된 대부분 기업에 투자를 하고 있으면서도 이들 기업의 인권존중 책임을 증진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정부는 공공조달 정책을 통해 조달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인권을 존중하는 활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데도 무관심했다.
그때의 모든 상황이 지금은 달라졌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최소한 국가적으로 관련 이슈가 인권과 연관되어 관심이 고조되었고, 기업의 인권책임을 위한 국가 기본정책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고, 소비자 권리와 구체를 강화하기 위한 여러 움직임이 일고 있으며, 사법기관은 관련 기업과 정부부처의 대응에 대해 조사했고,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작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기업인권네트워크와 사회책임투자포럼의 이종오 사무국장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2016년 1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유엔기업과 인권포럼에 참석하게 된 것은 당시 활동과 경험을 좀 더 체계화하고 전문화 하는데 매우 유용한 기회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포럼에서 다루고 있는 유엔기업과 인권이행지침이 기업인권네트워크와 진행했던 당시 내 활동의 나침반이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2008년 전후부터 매우 익숙하고 활동에 유용하게 활용해온 지침이지만 그것이 만들어지진 현장에서 그 진전과 확산을 위한 논의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 2,500여 명의 전세계 정부, 시민사회, 전문기관, 기업 관계자와 네트워크를 생성할 기회를 얻는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벅찬 경험이어서 오롯이 체화시키지 못할 정도였다. 그렇게 다 담지 못한 체험들은 현지에서 함께 했던 국내외 참가자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채워가고 있다.
귀국 직후에는 포럼 현장에서 만났던 일본의 변호사가 2020년 도쿄올림픽의 환경영향에 대한 이슈 관련 활동을 하는데 평창 동계 올림픽의 환경영향과 관련 활동하는 한국의 시민사회 단체에 대해서 물어왔고, 인권과 개발 관련 국제NGO 관계자는 녹색기후기금의 이행기관 선정과정에서 한국의 산업은행에 대한 사회·환경 정책에 대한 한국 시민단체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채널이 있으면 활용하고 싶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국내 네트워크를 통해 해당 메일은 전달되면서 정확한 답변을 해줄 누군가를 찾아갔으며, 최초 도움을 청한 이로부터 얼마 후 감사 메일이 도착했다.
유엔 제네바 사무국 정문 앞에는 한쪽 다리가 부러진 의자가 거대한 조각상으로 전시되어 있다. 사람을 죽이지는 않으나 발목이 잘리는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발목지뢰처럼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지뢰의 피해를 알리기 위한 메시지로 한쪽 다리를 다친 사람을 형상화한 것으로 이해했다. 인권과 평화, 개발을 중요한 이슈로 다루는 유엔에 어울리는 조각상이다. 부러진 한쪽의 다리는 평화일수도, 개발(경제발전)일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인권임에는 틀림없다. 안전과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를 누리는 것도 모두가 인권 이슈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조각상 앞에서 사진을 찍는 많은 이들은 무언가가 채워지지 않는 자신, 어떤 불안정에 공감했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도 이번 해외연수가 부러진 의자의 한쪽 다리가 무엇인지 개인적 차원에서 또 사회적 차원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글ㅣ사진 김용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