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이 무성하던 5월 19일 기부자소통팀 서수지 간사와 정희은 간사의 마음은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했다. 바로 <찾아가는 기부자 서비스> 디데이였던 것.
주인공은 고등학교 기술 교사인 곽OO 기부자.(쑥스러운 마음에 이름은 공개하지 않으시기로^^) 13년 동안 그는 한결같이 아름다운재단에 나눔을 지속했다. 두 간사는 그의 나눔에 녹아있는 얘기가 듣고 싶어 그가 거주하는 과천으로 가뜬히 달려갔다. 초인종을 누르자 곽OO 기부자가 사람 좋은 인상으로 이들을 반겼다. 그런데 그의 신체가 다소 불편한 듯했다. 최근에 운동하다가 다리를 다쳐서 두 달간 병가를 신청했다고. 그래도 만면에 웃음을 짓고서 손님을 맞이한 그는 이내 나눔 대담을 시작했다. 어느새 ‘나눔’ 한마디로 교감하며 그들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뭉클한 추억, ‘야학, 제자, 그리고 나눔’
무엇보다 곽OO 기부자는 우리사회가 건강하고 행복하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학생들을 돌보는 교사로서 그 소망은 실로 간절했다. 지난겨울, 그는 그래서 아름다운재단에 기부금을 2배 이상 증액하며 사회참여영역, 건강영역, 교육영역으로 나눔을 확장했다. 아름다운재단을 향한 그의 신뢰를 엿보며 10년 이상 지속된 인연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아름다운재단과 인연은 대략 15년 정도 됐죠. 청량고등학교 재임 시절 제자들이랑 뚝섬 아름다운나눔장터에서 자원봉사를 함께했는데요. 토요일이면 모여서 기증받은 물품을 판매했습니다. 그 계기로 아름다운재단을 알게 됐고, 홈페이지를 찾아 살펴보며 기부를 시작했죠. 그것이 금전적으로 했던 제 첫 기부였습니다(미소).”
그날 이래로 그의 나눔은 지경을 넓혔다. 도움과 지지가 필요한 곳곳에 일시기부와 정기기부를 병행했다. 그는 총각시절에는 원래 수입의 10%를 기부액으로 계획했다가 지금은 5%로 하향 조정했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기부가 무척 자연스러운 말투에서 가늠되듯 그간 그에겐 나눔의 스토리가 켜켜이 쌓인 것 같다. 그래서 손꼽는 나눔의 에피소드를 물었더니 잠시 고민하던 그는 아스라한 90년대 초의 추억을 더듬는다.
“2년 동안 야학에서 재능 기부하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군 제대 후, 대학생 때 친구의 부탁으로 야학교사로 들어갔었죠. 형편상 중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학생들을 비롯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함께했는데요. 수업을 마치면 학생들을 모집하는 포스터를 붙이기도 했어요. 지금도 그때의 동료들을 만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던 순수했던 그 시절 옛 얘기를 해요.”
우선은 야학의 추억을 언급했지만, 실제로 그에게 소중하지 않은 나눔은 없었다. 그는 나눔이란 그 자체로 울림이 가득하다 했다. 다만, 제자들과 함께했던 나눔활동은 그에게 한결 애틋하게 느껴졌다. 당시를 회상하는 그의 표정이 한층 해사했던 까닭이다.
“학교에서 채워야하는 봉사시간이 학생들에게 의무감에 형식적으로 하게 만들어 나중에 오히려 거부감을 느끼게 하진 않을지 우려가 되기도 해요. 하지만 그런 경험이 전혀 없다면 나눔의 시작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니까. 그런 부분을 알게 해준다는 건 좋은 것 같아요. 그때 같이 장터에 참여했던 학생들을 만나면 그저 너무 더웠다며 투정부리듯 이야기하지만 그런 추억이 나중에 가끔 생각이 나겠죠?(웃음)”
최근 몇 년간은 담임을 맡지 않아 반 학생들과 나눔 활동을 함께 하지 못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시 그런 활동들을 이어갈 계획이 마음 안에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나에게 나눔은 ‘한 그릇 식사 같은 일상’
나눔의 추억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이제는 나눔의 일상을 교감할 차례였다. 그 맥락에서 곽연웅 기부자에게 현재 나눔에 대한 가족의 반응을 물었다. 아무리 가치 있는 나눔이라도 가족이 반대하면 여간하지 않다. 예상대로 가족은 그의 나눔을 지지했고, 함께했다. 생물 교사인 아내는 환경 관련 기부에 관심이 많고, 초등학생 딸인 승효도 또래 해외 아동을 위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승효가 7살 무렵 집사람이 나눔을 권했어요. 사정이 어려운 친구들이 있는데 우리가 도와주면 즐겁게 생활할 수 있겠다고, 이미 엄마아빠는 기부 중이고 같이 도와주겠다고 설득했죠. 다행히 수긍하더라고요. 그 후, 승효는 자신의 용돈을 쪼개서 기부하고 있죠(웃음).”
간사들은 승효가 참 기특했다. 보통은 부모가 아이의 이름으로 기부를 대신하는 경우도 많고, 게다가 아직은 나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만도 한데 일주일에 몇 천원 남짓의 용돈에서 일부는 저축까지 하며 또래를 돕는다니 말이다. 그때였다. 때마침 수업을 마치고 승효가 귀가했다. 구김살 없이 기부자소통팀에 인사한 승효는 피겨스케이팅을 타겠다며 곧장 떠났다. 잠시간 조우했지만 곽OO 기부자의 얼굴이 묻어나는 명랑한 승효의 모습에서 왠지 나눔을 실천하는 미래가 그려졌다.
“서로의 소식을 주고받으며 어릴 때부터 내가 커가듯 친구도 함께 커간다는 것을 자연스레 느끼면 나눔의 가치를 받아들이기 쉬울 것 같아요.”
아빠의 바람이 딸에게도 분명 잘 전해졌을 것이다. 곽OO 기부자는 이처럼 학교는 물론 가정에도 나눔이 배어있었다. 이쯤에서 빠질 수 없는 질문, 나눔의 의미가 참으로 궁금해진다.
“나눔은 ‘일상적인 거’ 같아요. 밥을 먹듯 매일 계속해야 하죠. 제자들한테도 자원봉사하면서 일회성으로 그치지 말자고 당부하곤 했는데요. 저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대신 여유 있는 것에서만 하기보다는 ‘조금 더, 조~금은 더!’ 하는 마음으로 그걸 내 주변에 나누면 나도 좋으니까 하고 있어요. 그렇게 작게나마 나눔을 계속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세상을 변화할 만큼 영향력이 생기겠죠. 말보다 행동으로 앞장서면 우리 사회가 나눔으로 뒤바뀔 것 같아요.”
자그만 소원이라면 ‘늘 지금처럼 아름다운재단답게’
나눔은 ‘일상적인 거’라는 표현에 두 간사는 수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나눔의 생활화는 아름다운재단의 비전인 터. 공감대를 형성하던 그들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나눔의 투명성으로 연결됐다.
곽OO 기부자는 소식지를 통해 기금운용을 확인한다 언급하며, 잇대어 아름다운재단에 기대하는 바를 제안했다.
“새롭게 사업을 확장하기보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더욱 집중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아울러 소소하게나마 기부자끼리 소통하는 축제의 장도 마련해준다면 나눔의 폭이 넓어질 텐데요. 그때는 저명인사가 함께하면 더 고무적일 듯합니다(미소).”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나눔을 망설이는 이웃을 위해 메시지를 전해달라고도 요청했다. 실제로 장기기부자의 한마디는 잠재기부자의 용기를 북돋우기 때문이다.
“일단은 관심이 선행돼야 나눔이 부담되지 않고 저절로 실현되는 것 같아요. 제가 아름다운나눔장터에 참여한 계기도 편하고 신나게 나눔을 실천하려는 이유였거든요. 사실 고아원이나 양로원은 경우에 따라 마음이 무거울 수 있어요.
기부가 아닌 사소한 것이라도 관심을 두고 놀듯이 쉽게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다음부터는 자연스럽게 누군가가 이끌듯이 하게 되니 사람들에게 기부문화의 확산을 위해 처음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즐거운 참여의 장을 많이 만들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경험이 묻어나는 소중한 조언. 장기기부자는 아름다운재단 제2의 자문위원인 듯하다.
그토록 나눔대담에 젖어 드는 사이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아쉽지만 <찾아가는 기부자 서비스>를 매듭지을 순간이다. 마지막으로 조그만 카드를 내밀며 아름다운재단 간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응원의 한 마디를 부탁했을 때 그가 써 내려간 글귀, ‘늘 지금처럼 잘해달라’는 것’. 그 응원은 아름다운재단 간사들의 마음속에 새겨지리라. 정말이지 오랜 기부자가 곁에 있어 참 다행이다.
글 노현덕 | 사진 임다윤
<인터뷰를 마치며> 가장 좋은 건 ‘보고 배우는 것’이라며, 아이들이 머리보다 마음으로 느낄 수 있도록 어른들이 잘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곽OO 기부자님은 영락없는 좋은 선생님이자 아빠였다. 학생들에게도 하나뿐인 딸에게도, 나눔을 즐겁게 실천하는 모습은 말간 거울을 비추듯 자연스레 닮아가게 만드는 힘이 될거라 믿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