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가나 인정을 받기 위해 단체나 기관 따위의 문서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등록(登錄)’이라 한다. 등록은 양지의 영역. 사람이든 차량이든, 등록된 존재는 보호 받는다. ‘아닐 미(未)’자를 머리에 인 ‘미등록(未登錄)’은 음지쪽이다. 장부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으므로 ‘미등록’ 뒤에 따라붙는 존재는 ‘허가받지 않은-’, ‘인정받지 못한-’ 무언가가 되기 마련이며, 이는 ‘불법’과 ‘미완’과 ‘소외’와 ‘차별’의 뉘앙스를 포함한다.
‘미등록이주아동’이란 용어는 그래서 서글프다. 부모의 체류자격에 의해 자신의 체류자격이 결정되어 미등록이라는 사유로 출생부터 교육까지 관련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18세 미만의 아동. 출생등록이 되어있지 않은 아이는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 자체가 불법으로 규정된 아이에게 보육권, 교육권, 건강권 등이 제대로 보장될 리 만무하다.
아름다운재단은 2016년 신규 배분사업인 ‘이주아동 보육권리를 위한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아동권리 관점에서 본 미등록이주아동의 보육현황 및 정책연구’를 진행했다. 한국의 미등록이주아동 중 영유아의 중요한 권리이자 욕구인 보육 현황을 파악하고 향후 제도적‧정책적 방향을 제언하기 위함이다. 본 연구의 책임연구자이자 ‘이주아동 보육권리를 위한 지원사업’의 초기 자문부터 심사를 담당해온 홍현미라 배분위원을 만났다. 전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2006년부터 아름다운재단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재단과 오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미등록이주아동이라니, 대상 선정부터 아름다운재단답다 싶었어요. 법의 테두리 밖이고 사회적 인식도 좋지 않아, 지원이나 호응을 기대하기 힘들죠. 아무도 손대지 않는 음지 중에 음지… 가장 소외된, 인권의 사각지대를 발굴하는 게 아름다운재단이 늘 해왔던 일이잖아요. 굉장히 의미있는 사업이라 생각했고, 저도 적극적으로 돕고 싶었어요.”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
현재 국내 미등록이주아동은 2만 명 내외로 추정되나 정확한 현황은 알 수 없다. 연구를 시작하며 맞닥뜨린 첫 번째 난제는 그처럼 대상에 관한 기초적인 자료조차 전무하다는 것.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의 문제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본질적으로 다가가고자 설계 단계부터 첨예한 고민을 신중한 호흡으로 이어갔다.
“먼저 ‘공감’ 변호사분들과 사회학과 교수님 등, 미등록이주아동을 위한 권리운동을 했던 분들을 만나 자문부터 구했어요. 조사 대상으론 미등록이주아동을 가장 가까이에서 접하는 보육 현장의 실무자들을 선정했습니다. 연구방법으론 포토보이스 기법을 활용했어요. 참여자들이 특정 주제 하에 찍어온 사진을 매개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방법인데, 깊은 상징과 의미를 포착해내리라 기대했습니다.”
포토보이스 연구자료 중엔 쇠사슬 사진이 있다. ‘미등록이주아동으로 연상되는 이미지’란 주제 아래 수집된 사진이다. 쇠사슬을 찍어온 실무자는 이주아동이 쓴 다음의 시를 사진과 함께 제시했다.
학교 안엔 학교가 없다
그 모양만 학교다.
나라 안엔 나라가 없고
그 모양만 나라다.
나, *** 안에도 나는 없다.
껍데기만 *** 이다.
엄마 쇠사슬에 묶여있는 나는
나마저 잃어버리고
쇠사슬에 묶여간다.
“불법체류 신분의 엄마, 아빠들은 외출할 때 꼭 아이들을 데리고 다닌대요. 자기 존재가 드러날까 불안한 상황 속에서, 아이를 동반하면 단속으로부터 안전하다 생각하는 거죠. 부모보다 한국말에 능숙한 아이들은 부모의 역할을 일부 대신하기도 하고, 때로는 부모와 자신이 단속으로부터 피할 수 있도록 방패막이가 되기도 합니다. ‘불법체류’라는 부모의 체류자격에 묶여있는 자신의 처지를, 아이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정확히 꿰고 있어요. 부모와 나의 관계, 또 자기 존재의 본질을 그렇게 인지하는 아이들이 우리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게 정말 가슴 아픈 일 아닌가요?”
가려지고 감춰진 아이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연구지만, 한편으론 아이들의 개인정보가 드러나선 안 되는 딜레마를 품고 가는 프로젝트였다. ‘있는 데 없는 존재’로 살아가며 부대끼는 차별과 소외를 들여다봐야 하지만, 그 존재가 낱낱이 밝혀질 경우 강제추방과 같은 손해를 입을 소지가 다분한 까닭이다. 자칫 아이들에게 미칠 불이익을 최소화하고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이를테면 실무자와의 면담에 앞서 아이들의 정보가 드러날 수 있는 이야기는 일절 배제해 달라 요청하거나, 연구자료집에도 인적사항은 모두 모자이크 처리하는 식이었다. 전주대학교 생명윤리위원회로부터 IRB 승인을 받는 과정 또한 오래 걸렸다. 연구의 퀄리티 보다 먼저 아이들의 존재를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춘 작업이었다.
먼저 ‘아동’의 범주에서 바라볼 것
한국은 국제인권조약인 유엔아동권리협약의 비준 당사국이다. 이 협약은 구체적으로 ‘당사국은 자국의 관할권 내에 있는 모든 아동에 대해서 부모의 출신 및 신분에 관계없이 출생신고(7조), 보육시설(18조) 및 의료시설(24조) 이용, 사회보장(26조) 및 교육(28조)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에 따르면 유엔아동권리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
이처럼 법적으로 명백히 보장된 권리임에도 일각에서는 미등록이주아동이 한국을 위해 아무런 책임도 의무도 다하지 않기에 권리를 가질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유엔아동권리협약에 규정된 권리는 ‘아동’이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미등록’과 ‘이주’ 꼬리표를 떼어버리고, 먼저 ‘아동’의 범주에서 바라봐야 할 문제다.
“가장 시급한 사안은 미등록이주아동의 출생등록을 제도화하는 겁니다. 산부인과에서 출생을 등록하는 ‘보편적 출생등록’ 체계를 도입해 미등록이주아동의 이름, 출생지 등을 등록하는 거죠. 출생등록은 인간의 출생을 인정하는 공식적인 기록으로, 국가가 제공하는 사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국적취득 및 체류인정과는 별도의 사안으로 이해해야 해요. 또 한편으론 미등록이주아동의 부모가 자기 존재는 드러내지 않더라도 세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육비라든가 의료비 같은, 아동과 관련한 임시세금을 내는 거죠. 세금을 내고 당당히 서비스를 받게끔 하는 것도 필요할 거예요. 아울러 아동에 대한 관리는 산전 관리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봐요. 태아 때부터 은폐되고 관리 받지 못한 아이들은 질병의 요소를 갖고 태어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출산에 임박한 산모들이 안정적으로 도움 받을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한다면, 향후 출산 및 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 야기되는 건강상의 위험요소도 줄어들 겁니다.”
아름다운재단의 배분사업을 기획‧자문하며 홍현미라 배분위원이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소수자를 주목하되, 소수자의 문제에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보편성을 찾아내는 것이다. 가령, 미등록이주아동의 문제에서 찾아낼 수 있는 보편성이라면 국내 노동시장의 변화일 터. 소수자를 드러나게 하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가 이 문제에 본질적으로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포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아름다운재단의 ‘이주아동 보육권리를 위한 지원사업’은 한국 사회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이자 가려진 아이들을 드러나게 하는, 대단히 존재론적인 의미를 지닌 사업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유엔아동권리협약 비준 국가로서의 의무를 수행하는 첫 발자국이 되리라고 봅니다. 이 의미 있는 지원사업에 동참해주신 기부자들께 감사드리며, 나눔의 기쁨을 보다 널리 공유해주시길, 그래서 또 다른 누구가가 이 기쁨에 동참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글 고우정ㅣ사진 임다윤
아동권리 관점에서 본 미등록 이주아동의 보육현황 및 정책연구[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