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준비가 되었다. 네가 옳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따르겠다”
2003년 말, 강원도 고성군청 공무원으로 일하던 이정구 씨가 군수의 비리를 고발하기 전, 뜬눈으로 밤을 새웠던 그의 모습을 본 아버지가 한 말입니다.
아마도 그의 아버지는 내부 고발의 파장에 대해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내부고발은 제보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의 일상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주변의 질시와 따돌림, 조직의 회유와 협박, 해임과 법적 분쟁… 당사자와 가족들이 이 모든 고통을 감내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아들이 양심을 지킬 수 있도록, 자신도 함께 고통의 일상을 지키면서 버텨내겠다면서, “준비가 되었다”고 자신의 각오를 표현하셨습니다. 아들의 고민과 결심을 이해했으니까요. 그 날 이정구 씨는 가족까지 불행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와 가족의 ‘준비’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단단히 결심하고 이후의 벌어질 상황을 예상하며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조직의 전방위적 보복 조치를 버텨내기는 힘들었습니다.
공익제보 이후 고성군은 그를 즉각 해임했고, 고성군의 한 건설사에 다니던 그의 아버지도 직장을 잃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직장에서 군수 측 추종자의 전화에 시달리며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고통이 계속되면서 심지어 우울증과 단기기억력 상실 등을 겪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는 소청심사를 통해 복직하기는 했지만, 군청이 아닌 고성군 토성면 사무소로 배치되어 일하게 되었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양심과 일상을 모두 지키는 일이 왜 이렇게 힘든 일이 되어야 할까요?
양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도덕적인 마음이고, 일상은 누구나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입니다. 그런데 왜 이 양심과 일상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늘 싸워야만 하는 걸까요? 왜 고통받아야 하는 걸까요? 개인이 짊어지는 삶의 무게를 더하면서까지 말입니다. 우리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공익제보자들의 현실은 우리 사회의 단면이기도 합니다.
공익제보자들의 이야기를 접하면, 과연 나는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공익제보자들이 감내해야 했던 불이익과 고통에 움츠러들기도 하고,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으며 실천했던 행동에는 감탄도 나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들을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대단한 용기를 가진 사람들,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들, 사회정의를 위해서 앞장서는 사람들…
그러다 자칫 공익제보는 ‘나’의 일이 아니라 ‘그들’의 일로 생각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공익제보자들의 내부고발이란 거창한 목적과 이유 때문이 아니라 ‘아주 작지만 외면하기 어려운 양심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기 쉽습니다.
“민원인 가족이 평생을 모은 돈과 빌린 돈으로 산 땅이었습니다. 그 땅을 군수가 ‘자기 마음대로’ 건물을 짓지 못하는 땅으로 만들어 버리면, 그대로 그 사람은 전 재산 날릴 판인데 어떡합니까”
그가 내부고발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유는 한 사람의 민원인과 그 가족에 대한 공감이었습니다. 그는 “난 공무원이고,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그 민원인을 돕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행동은 ‘공무원의 직업윤리’이자 양심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용기라고 생각하는 그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양심을 외면하지 않고 살아가는 공익제보자들이 있습니다.
“다른 이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삶”
그 삶을 앞장서서 걸어가는 공익제보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건네는 사회를 희망합니다.
양심과 일상을 함께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꿈꿉니다.
공익제보자들이 홀로 그 모든 부당함을 짊어지지 않도록
함께 응원해주실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글 : 아름다운재단 박초롱 팀장
정영칠
문재인정권이 집권했는데도 그들의 명예 직장으로의 복귀와 충분한 보상 그들을 내쫓은 조직의 간부와 거기에 가담한 자들에 대한 모든조치(공식 비공식이든)를 시행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촟불시민혁명에 반하는 정권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