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에는 두 종류가 있다. 뭔가 하겠다고 결심하는 것과, 뭔가 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 앞의 것을 ‘작위(作爲)의 결심’, 후자를 ‘부작위(不作爲)’의 결심이라고 하자. 대부분의 결심은 뭔가 하겠다는 것이다. 돈을 모으겠다, 공부를 하겠다, 다이어트를 하겠다, 등등. 금연은 ‘담배를 피우는 것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이므로 부작위의 결심에 해당한다.
작위의 결심과 부작위의 결심 중에 어느 것이 더 쉬울까
아마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한 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움직여야 하는 사람에게 뭔가 하지 말라 하는 것은 고역일 것이다. 나무늘보 같은 사람에게 계속해서 뭔가 하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기’와 ‘하지 않기’의 본질은 다르고, 자신의 특성이 어느 본질과 더 잘 맞는가에 따라 더 쉬운 쪽도 다를 것이다.
작위의 결심이 성공하려면 그 결심한 행위를 어쨌든 빨리 습관화하여야 한다. 습관화는 머리의 기억을 몸의 기억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몸의 기억으로 옮기려면 몸이 그 결심을 계속해서 행동해야 한다. 결심 직후 동기 부여된 머리와 몸이 결심의 기억을 호출하고 행동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몸의 기억으로 옮기는 데에 성공하면 머리는 이내 쉴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머리가 계속 몸의 행동을 챙겨야 한다. 결심을 끊임없이 불러내고 되새겨야 한다. 시간이 지나도 습관화가 안 되면 그 결심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부작위의 결심은 그 성격이 좀 다르다. 부작위의 결심이 성공하려면, 결심하기 전에 머리와 몸이 갖고 있는 기억을 지워야 한다. 기억은 최근의 것일수록 생생하다. 몸과 마음이 모두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므로 처음에는 이것이 어렵다. 그러나 머리의 기억은 생각보다 빨리 잊힌다. 이따금 몸의 기억이 머리의 기억을 호출하지만, 시간은 기억의 편이 아니다. 안 하기를 하루하루 쌓아 나가다 보면 어느 새 ‘안 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몸과 마음의 기억이 몹시 강렬하거나 분명하다면 그 결심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금연의 본질은 ‘하지 않는 것’
‘담배를 피우지 않기로 결심’하였다면 담배에 관한 몸과 마음의 기억을 잊는 것이 필요하다. 그 방법이란 단순하다. 첫째, 담배를 피우지 않아야 하며, 몸이 흡연의 기억을 호출하지 않도록 담배를 피우던 상황에서의 행동을 다른 것으로 대체해야 한다. 여기에는 적당한 도움이나 기술이 필요한 경우도 있겠지만 본질은 ‘하지 않는 것’이다. 이 사실을 잊고 ‘하는 것’처럼 하면 잊어버려야 할 기억을 계속 호출하게 되므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금연에 몰입하는 행위는 어쩌면 흡연에 대한 강렬한 욕구와 동전의 양면일 수 있다. 사실상 나는 흡연을 억제하려는 바로 그 노력을 통해 끊임없이 흡연에 몰두하고 있다는 역설이 성립된다. 과잉보상 행위에 의한 이런 종류의 거부현상은 매우 흔히 일어나는 사례이다. 예를 들면 광신적 금연주의자들은 그런 식으로 흡연의 충동을 몰아내며, 광신적 음주 반대자들은 그런 식으로 자신들의 음주 욕구를 몰아낸다. 무릇 모든 광신적 태도는 흔히 그것과는 정반대의 충동을 감추려는 태도라는 의심을 낳는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중 한 단락에서 ‘포기’, ‘단념’이라는 단어를 ‘금연’으로 바꿔보았다.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래서는 담배를 끊을 수 없다. 나는 다른 결심들은 대부분 성공하지 못한 반면, 담배는 끊는 데에 성공했다. 내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한 성공 경험이다. ‘하지 않는 것’이 적성에 맞았고, ‘하지 않기’를 잘 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금연의 본질은 ‘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도 또 오늘도 금연하면서 세월이라는 순풍에 태워 조금씩 나아가는 일이다. 처음에 배를 띄우는 버거움에 비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힘의 무게는 가벼워지는 것이 금연과 같은 ‘부작위의 결심’의 특징이다. 느긋하게 세월을 낚아 보고 싶은 흡연자라면 금연의 배를 띄워 보는 것은 어떨까.
*이 글은 ‘써볼거당 (글쓰기) 프로젝트’로 진행됩니다. 간사들의 일상 속 다양한 시선, 생활의 기술/정보를 기록하고 나누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