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무인도는 처음이지?
다섯 명의 소년이 서해의 무인도를 찾았다. 화성시 전곡항에서 한 시간 남짓 배를 타고 들어가는 입파도란 섬이다. 몇 가구 되진 않아도 엄연히 주민이 거주하고, 선착장 인근에 민박과 식당까지 갖추었으니 문자 그대로의 무인도(無人島)는 아니다. 하지만 선착장 반대편 해안가는 거친 바위산을 병풍처럼 뒤에 두르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어, 충분히 무인도라 믿을 법한 풍경이다.
오로지 하늘과 바다와 모래뿐인 고적한 해변. 그곳에 베이스캠프를 구축하고자 산 하나를 넘는 동안, 소년들은 완전군장 행군에 비할만한 혹독한 경험을 했다. 때는 한여름으로 치닫던 6월 하순. 한껏 달구어진 뙤약볕 아래 아이들이 짊어진 짐의 무게는 어마어마했다. 텐트와 침낭, 식량을 나눠 꾸린 배낭에 한 사람당 2리터짜리 생수병을 대여섯 개씩 담고, 혹여 땔감을 구하지 못할까봐 미리 준비해온 장작까지 얹은 채 40분쯤 산길을 걸었으니, 제아무리 돌도 씹어 삼킬 열일곱․열여덟 살이라 해도 입에 단내가 폴폴 날 수 밖에 없었으리라.
고난의 행군으로 시작된 무인도 여정은 아이들이 일찌감치 이 여행의 테마로 잡았던 ‘생존’과 ‘야생’을 생생히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장작을 구하러 산에 올랐다가 길 아닌 길로 들어 의도치 않은 암벽등반을 하고, 텐트 바로 앞까지 들어온 밀물에 자다 말고 부랴부랴 텐트를 옮기고, 날카로운 돌로 장작을 쪼개고 평평한 돌 위에 삼겹살을 굽고, 구덩이를 파서 만든 자연 화장실에 용변을 본 후 수세식변기에 물 내리듯 흙을 한 삽 퍼 덮고, 땀이 나면 바다 수영으로 샤워를 대신하는 것. 기실, 무인도에서 보낸 2박3일 여정을 정리하면 이 한 줄로도 충분하다. 집을 짓고, 불을 피우고, 밥을 지어 먹었노라고.
도착하자마자 텐트 치고 장작을 구해오니 저녁 먹을 시간이었어요. 불 피우고 돼지고기 듬뿍 넣은 김치찌개를 끓여먹고, 또 불 피우고 모여 앉아 이야기 좀 하다가 하나 둘 잠들고, 아침 되니 또 불 피워 밥 지어먹고, 장작 구하러 갔어요. 금세 점심 먹을 시간이 되더라고요. 그 다음도 똑같아요. 불 피우고, 밥 하고, 장작 구하러 가고… 원래는 섬 트래킹도 일정에 있었는데, 장작 구하러 다니다보니 섬을 구석구석 돌게 되서 따로 트래킹 시간을 낼 필요가 없었어요.”
장작을 구해와 불을 피우고 밥을 짓고 또 장작을 구하러 가는 이야기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이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는 마태복음 속 족보처럼 끝없이 이어졌다.
우리가 무인도를 꿈꾸는 이유
여행명 ‘정글의 아이들’. 이름에 담긴 의미를 풀어보자면 ‘<정글의 법칙>을 꿈꾸는 <세상을품은아이들>’ 쯤이 될 것이다. 무인도 생존여행을 기획한 다섯 명의 소년은 위기청소년 공동체 ‘세상을품은아이들(이하 세품아)’에 적을 두고 있다. 가정․학교․사회로부터 소외된 아이들의 치유와 자립을 돕는 ‘세품아’는 음악과 여행 중심의 교육을 진행하는데, ‘길 위의 희망 찾기’에 지원한 것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였다.
어디를 가고 싶은지, 어떤 여행을 꿈꾸는지 이야기하던 와중 무인도를 다녀온 선생님 한 분이 자신의 체험담을 들려줬고, 이에 몇몇 아이들이 단박에 눈을 빛냈다. ‘가서 <정글의 법칙> 한편 찍고 오자! 작살로 물고기가 잡힐까? 달인 데리고 가면 좋을 텐데…’ 이렇게 와글와글 설레고 꿈꾸다 보니 어느새 정글 멤버가 모였다.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진규(이하 가명), ‘극복! 행복!’을 다짐하는 희서, 조금 더 밝아지고픈 기철, ‘혼자 이기는 거 말고 누군가와 같이 이겨내고픈’ 은호, 힘들 때 되새겨볼 만한 추억을 만들고픈 유민. ‘내 인생의 야생은 어디였습니까?’라는 질문에 ‘중학교 때, 아무도 없는 집’이라 답하는, 저마다 상처를 간직한 소년들이다. 아이들이 직접 작성한 여행지원신청서를 보면, 자신이 꿈꾸는 여행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자유’란 단어가 깃든 답변이 유독 많았다. 아름답고 쾌적한 여행지를 놔두고 굳이 고생길이 훤한 무인도를 원한 이유는 그것. 다다를 수 없는 나라처럼 그리운 ‘자유’ 때문이었다.
모닥불 앞에서 야식 먹고, 이야기 하고… 모기 때문에 괴롭긴 했지만, 불 앞에 앉아 있던 밤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아무 이야기 안하고 있어도, 불만 바라보고 있어도 좋았어요. 바람을 이용해 반대편에 앉은 친구에게 불씨를 튀기며 놀기도 하고, 또 장작에 바세린을 발라 불을 붙인 뒤 그걸 모래사장에 푹푹 꽂아놓고 보기도 하고요. 바세린을 바르면 오래 타거든요. 되게 예쁘더라고요. 마지막 날 밤엔 늦게까지 다 안자다가, 하나 둘 지쳐서 잤어요. 끝까지 안 자려고 버텼는데, 어느 순간 저도 잠들었어요.”
불 피우는 소년 옆에 불 지키는 소년
희서가 장작을 구하는 데 누구보다 열심이었다면, 진규는 불을 피우는 데 앞장섰다. 냄비밥과 김치찌개, 돌판구이삼겹살까지, 기철은 선생님을 도와 보조 주방장으로서 실력 발휘를 제대로 했다(맛이 어딘가 부족한 찌개엔 라면스프 한 봉지를 탈탈 털어 넣어, 절대 망할 리 없는 MSG 신공을 발휘하기도 했다). 텐트 치는 데 놀라운 솜씨를 보여준 유민, 모두 마다하는 정체불명의 조개류를 불에 구워먹고 바다 수영을 즐기며 무인도의 낭만을 적극적으로 즐긴 은호까지, 다섯 명의 아이들은 제각각의 캐릭터로 그들만의 섬과 바다에 녹아들었다.
사실, 기대와는 많이 다른 무인도였다. 응당 반짝이는 은모래와 에메랄드빛 바다를 꿈꿨건만 흙모래에 자갈밭이었고, 물안경을 쓰고 바다 속에 들어가 낙지라도 잡아보리라 했던 기대는 탁한 서해 바닷물의 특성상 영 불가능했다. 바다에 던진 낚시줄은 번번이 자갈에 걸려 끊어졌고, 결국 물고기 한 마리 낚지 못한 채 작은 게와 조개만 조금 주웠을 뿐이다. 가져온 장비라곤 달랑 맥가이버칼 하나라 그 안에 든 작은 톱으로 땔감을 자르며 얼마나 고군분투했던지. 지나치게 완벽한 준비는 야생과 생존을 테마로 한 무인도 체험의 본질을 흐릴 여지도 있겠으나 톱과 모기약만큼은 못내 아쉬웠다.
그 모든 아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철이 마지막 날 밤에 쉬 잠들지 못한 것도, 유민이 입파도를 떠나는 배 위에서 멀어지는 섬을 한 점이 될 때까지 바라본 것도. 혹여 ‘내 인생의 첫-’ 리스트를 작성할 기회가 있다면, 다섯 소년은 이에 ‘내 인생의 첫 무인도’란 항목을 추가해도 좋겠다. ‘첫 해외여행’, ‘첫 직장’과 같은 평범한 항목 아래 ‘첫 무인도’란 이색 항목은 반짝반짝 빛날 테니까. 생의 모든 첫 번째 경험은 허술하지만 매혹적이며, 불완전하지만 강렬하다. 도무지 잊을 수 없다. 소년들의 첫 무인도, 입파도에서의 2박3일 역시 그러할 터. 끝없이 장작을 구해온 친구와 묵묵히 불을 피운 친구, 또 밤새 불을 지킨 친구 덕분에 삼시세끼 잘 먹고 기온이 떨어지는 한밤에도 내내 따뜻했던 그 섬의 추억은 들춰볼 때마다 웃음으로 번질 것이다.
글 고우정 l 사진 현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