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 불안정의 취약성을 넘기 위해
아동복지시설이나 위탁가정에서 보호받는 만 18세 아동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보호가 종료된다. 보건복지부의 2016년 발표에 따르면 3만여 명의 아동 중 약 2천 명이 충분한 준비나 유예기간 없이 자립 생활을 시작한다. 물론 정부와 민간에서 여러 방법으로 자립을 지원한다. 그러나 턱없이 부족한 자원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주거 관련 사업이 마련됐지만 아직 시작 단계다. 척박한 현실을 바꾸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그 사이에 기초생활수급과 노숙을 경험하며 취약해진다. 사회 초년생의 시급으로 기숙사나 고시원, 월세에 거주하느라 지출 중 상당수를 주거에 할애해 일상을 안정적으로 꾸리지 못한다. 주거 지원 관련 제도 및 법령이 안정화 궤도에 오를 때까지 어떤 완충 장치가 간절하다.
혜택 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보완적 지원 사업이 절실하다. 그래서 2016년, 아름다운재단은 <시설퇴소 및 위탁종료 대상 주거안정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경험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취약성이 굳어지지 않기를 바라서다. 주거의 불안정이 누군가의 미래를 축소시키거나 결정짓지 않도록 한 발짝 더 나아간 지원을 결심했다.
현실을 직시하고 차근차근 미래 계획하기
2년째 진행 중인 <시설퇴소 및 위탁종료 대상 주거안정 지원사업>은 올해 82명에게 최대 500만 원의 주거비와, 최대 3회 이상 담당자의 주거지 방문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 지원사업의 세부 프로그램 중 하나가 지난 2017년 8월 26일 서울에서 진행된 자립역량강화프로그램이다. ‘스마트한 원룸정리법’과 ‘사회초년생이 기억해야 자산관리’라는 제목의 두 강연은 자립한 이들이 탄탄한 일상을 꾸리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특히 이승훈(가명) 생명보험 재무설계사의 강연은 참여자들의 큰 호응을 이끌었다. 자립에서 가장 중요한 ‘돈’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이야기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희망팔이가 아닌 현실 기반의 정보를 친절하고 섬세하게 설명한 까닭이었다.
“지원 받은 돈 몇 백만 원 밖에 없고 이제 겨우 일자리를 구한 친구들에게 몇 천, 몇 억 이야기를 하는 게 눈높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고요? 글쎄요. 저는 달라요. 서울에서 공공주택을 얻으려면 보증금 2,000만 원은 있어야 해요. 서울시 원룸 월세 없는 보증금도 1억이잖아요. 이게 현실인데 그걸 무시하고 마냥 좋은 얘기만 할 순 없어요. 재무교육은 내 위치를 알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제시하는 거예요. 저는 친구들이 현실을 직시하기를 바라요.”
설핏 들으면 지원 대상에 관심 없는 원칙주의자 재무설계사의 속 편한 직면 타령 같다. 한데 그의 이야기엔 묘한 따뜻함이 있다. 무시나 멸시, 열외와 차별이 없다. 외려 동등한 위치에 서서 자기 삶의 주체로서 대화하는 느낌이다. 당연하다. 누구보다 그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막막한 자립의 현실, 그로 인한 불안과 두려움, 설렘과 바람까지도 제대로 공감할 수 있는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여의치 않아서 입소했고 학부 졸업할 때까지 시설에 있었습니다. 기업 장학재단 장학금으로 학부를 졸업하고, 정부에서 지원하는 해외인턴십도 1년 동안 다녀왔어요. 그리고 2014년 2월에 한국에 왔는데 눈이 참 많이 왔어요. 그때가 스물일곱이었는데 주거지가 없었죠. 시설원장님께선 시설에 머물러도 괜찮다고 하셨지만, 하루 빨리 자립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로 취업준비를 했고 생명보험사 재무설계사가 됐어요.”
과거도 지금도 앞으로도 괜찮을 거예요
돈을 많이 벌어서 사회에 기여하고 싶었던 그가 재무설계사가 된지 4년째지만 서울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2014년 4월에 상경해서 친구와 함께 생활하다가 2년 전부터 보증금 없는 월세 원룸에서 지내고 있다. 목돈을 마련하려면 월세가 아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지난해 시작한 아름다운재단의 <시설퇴소 및 위탁종료 대상 주거안정 지원사업>을 알게 되었다.
“지난해 500만 원 지원 받아서 월세로 사용했고 그 만큼 저축할 여력이 생겼죠. 그게 가장 큰 장점이었어요. 돈을 모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습니다. 정말 고맙고 든든한 기회였어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좀 더 긴 기간 지원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주거 안정을 가질 수 있는 종자돈을 마련하기엔 1년은 정말 너무 짧거든요.”
그처럼 직업도 있고 나이도 있는 사람을 지원한다는 게 좀 이상해 보일 수도 있지만 아무 기반 없는 사회 초년생이 50만 원 월세 내고 50만 원 저축하면서 최소한의 주거 안정 비용을 마련하기는 어렵다. 청년실업이 화두인 요즘엔 더욱 고려할 지점. 그래서 이승훈 재무설계사는 정부의 지원 제도에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주거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직은 시설퇴소와 위탁종료 대상에 머물지만 앞으로 더 확장해 보편적 청년 주거 지원이 실행되기를 희망한다. 한편으로 전보다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게 된 그는 ‘좀 더 돈을 벌고 나서’, ‘안정이 되면’, ‘성공한 후에’라는 나중이 아닌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과 경험을 활용하여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을 위해 재무교육 강의와 실제 자립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는 활동을 했다.
“자립 교육에 초점을 둔 멘토 활동을 했는데 좀 더 현실적인 피드백을 해주는 것이 목표예요. 자수성가한 40-50대 분들과 다른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 싶어서 시작했거든요. 과거에 무척 꼴통이었던 나도 성실하게 노력하다보니 좋은 기회가 많더라. 너희들은 나보다는 덜 꼴통이지 않느냐, 가 핵심이고요(웃음). 친구들이 현재 자신의 모습으로 10년 후의 미래를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과거에 어려움은 충분히 좋은 자양분이 될 수 있고, 지금부터 노력하면 앞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을 살 거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는 바라고 생각하는 방향대로 삶이 흘러간다는 말을 믿는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좋은 쪽으로 행동하려 노력한다고. 그게 결국 스스로의 가치를 보존하는 일이더라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아름다운재단은 이승훈 재무설계사가 그렇게 자신을 지탱할 수 있도록 말없이 지지하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막막할 때 잘 찾아보면 기회와 맞닥뜨리게 되더라고요. 제 인생은 그 깨달음의 연속이었어요. 깨달음 중에는 제가 세금으로 자랐다는 것도 있습니다. 그 힘으로 이 자리까지 오게 됐으니 그걸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봐요. 성실하게 일해 국민으로 납세의 의무를 다해야 하고요. 이제 자립을 준비하는 친구들에게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힘들 때 곁을 둘러보시면 분명 도와줄 분들, 기관이 있을 거예요. 그들과 함께 온전한 자립이 가능해 졌으면 좋겠어요. 눈앞의 현실이 여러분의 무엇도 억압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글 우승연ㅣ사진 김권일
[시설퇴소 및 위탁종료 대상 주거안정 지원사업] 부모의 이혼이나 사망, 빈곤 등으로 인해 아동복지시설이나 위탁가정에서 보호받는 아동은 만18세에 도달하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보호가 종료됩니다. 정부와 민간에서 여러 자립지원을 하고 있지만 충분한 준비나 유예기간 없이 자립 생활을 시작하기 때문에 사회정착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은 불평등한 출발선에 있는 이들의 자립을 응원하며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아동자립지원단과 함께 <시설퇴소 및 위탁종료 대상 주거안정 지원사업>을 통해 2016년부터 현재까지 약 200여 명 대상으로 1인당 최대 500만 원의 주거비 지원과 자립역량 강화에 도움이 되는 교육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