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향영화’는 의도치 않게 저절로 낮은 수준을 향하고 있는 영화 감상문 입니다.
여기에는 심각한 스포일러와 몰이해, 영화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난달에 1985년도 영화 구니스를 다시 봤습니다. (한국에서는 1986년에 개봉을 했었습니다.)
구니스에는 악당도 나오고 말썽쟁이 친구들도 나오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 어른들도 나오고, 전설 속 보물도 나오고, 해적도 나오고, 사랑도 나오고… 재미있는 모든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당연히 다시 본 구니스도 재미있었습니다. 물론 다시 보니 허술한 지점들이 많이 보이긴 했지만요. 그래도 여전히 명랑 쾌활한 성장 모험 영화였습니다. 심각한 역할 전문 배우인 조쉬 브롤린이 개그를 담당하는 캐릭터로 나온 것도, 나중에 커서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를 가장 아끼는 친구 샘이 된 숀 애스틴의 호리호리한 어린 시절을 볼 수 있는 것도 참 재밌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시절 봤던 제 기억 속에 구니스에는 해적이 막나오고 아이들이 악당을 물리치고 막 보물을 찾고 완전 신나고 이런 기억들만 있었는데 다시 보니 영화가 새롭게 보이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해적이 남긴 보물을 찾으러 모험을 떠나는 이유 그 이유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다시 보니 그 이유는 자신들이 사는 마을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마을은 철거되고 그 곳에 골프장이 지어질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골프장을 건설하려는 사람에게 빚을 진 주인공의 아버지는 내일까지 빛을 갚지 못하면 집을 넘겨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동네 전체가 철거되는 것이라 아이들은 내일이면 서로 헤어져야 했고요.
아이들은 자신들의 마을이 철거 되지 않도록 지키기 위해서 해적의 보물이 꼭 필요했던 겁니다. 다시 보면서 느낀 것은 해적의 보물을 찾는 과정이 매우 위험했다는 겁니다. 그 위험은 정말 당장 죽을 수 있는 무시무시한 위험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자신의 마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악당들과 싸우고 해적이 만들어 놓은 무시무시한 함정들도 돌파합니다.
아이들은 어마어마한 보물을 발견하지만 결국 악당들에게 뺏기고 겨우 몸만 빠져나옵니다. 보물을 빼앗긴 아이들은 철거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에 절망해 울다가 악당들이 미쳐 발견 못 해 뺏지 않은 구슬 주머니 속에 넣어둔 보석들을 보고 기뻐합니다. 그 보석으로 결국 빛을 갚고 마을을 구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어마어마한 보석이 있었는데 고작 보석 몇 개만 겨우 건진 겁니다. 이때 저의 머릿속에는 가져나오지 못한 엄청난 양의 보석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마 저 아이들이 좀 더 크면 두고두고 저 못 가져 나온 보물 생각에 가슴이 아플거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아이들은 그저 마을을 철거에서 벗어난 것만으로 너무도 기뻐합니다. 못 가져나온 보석에 대해선 누구도 언급하거나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이 아이들은 마냥 행복했습니다. 왜냐면 이제 친구들과 헤어질 필요가 없어졌으니까요.
재개발이 될 때 가장 중요하게 사람들이 판단하는 기준이 뭘까요? 저는 재개발을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집값일 것 같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일것 같구요. 집값이 올라 돈이 되는지 안되는지에 가장 관심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구니스에서 아이들은 개발 이익, 시세 차익 따위는 애당초 관심이 없습니다. 친구들과 헤어져야 우리 사랑하던 이 마을이 없어지느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 아이들 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 많이 있을까요? 일단 저 자신부터도 확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구니스를 보고 마음 한 구석이 조금 찔렸습니다. 그래서 ‘마을, 이곳에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 추억속의 풍경들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어 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아이들처럼 잘 할 자신은 전혀 없지만요..
글 | 이창석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