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의 3년차 장학생 휘진과 2017년도 신규 장학생 유정을 만났다. 장학금은 휘진의 촘촘한 미래 설계에 톡톡히 한몫을 담당했고, 유정이 막연했던 꿈과 한 발짝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 아이들의 꿈을 응원해야 하는 이유를, 교육비 지원의 의미를 새삼 생각해본다. ‘장학(奬學)’은 ‘공부나 학문에 힘쓰도록 북돋워준다’는 말. 장학금이 성적순으로 주는 ‘상금’이 아니라 배움과 미래를 향한 의지에 힘을 실어줄 ‘희망’이어야 하는 이유는 저 글자의 본뜻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휘 쌤의 촘촘한 미래 설계도
이름을 물으니 ‘휘진’이란다. 희진인지 휘진인지 확인 차 다시 묻자, “휘파람 할 때 ‘휘’요!” 라고 선명히 박음질 한다. 계획대로 착착 진행된다면, 휘진은 2~3년 후 디자이너 ‘휘 쌤’으로 불릴 것이다. 헤어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사용할 멋진 예명을 생각하던 중, 제 이름에서 특히 마음에 드는 가운데 글자 ‘휘’를 골랐단다. 꿈을 이야기할 때, 휘진의 얼굴은 마치 휘파람을 부는 것 같다. 골똘한 집중 속에 그 순간을 몹시 즐기는 표정이다.
제천산업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휘진은 아름다운재단 ‘고등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의 장학생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3학년에 이른 지금까지, 매년 200만원의 장학금을 지원받았다. 휘진은 그 장학금으로 통학 길에 사용하는 교통카드를 충전하고 미용학원에 등록했으며, 미용재료비와 자격증 시험 응시료를 해결했다.
“가위나 가발 같은 미용재료비가 비싸거든요. 자격증 시험에 한번 응시할 때마다 시험 응시료에 재료비까지 포함하면 3, 40만 원 쯤 들어요. 자격증을 한 번에 딸 수 있는 것도 아니라 부담스런 금액인데, 장학금 덕분에 걱정 없이 준비할 수 있었어요.”
휘진은 다섯 번의 도전 끝에 미용사(일반) 자격증을 취득했다. 온종일 연습시간을 갖는 성인과 방과 후 두세 시간 밖에 연습시간을 갖지 못하는 학생의 경쟁에선 아무래도 연습량이 부족한 후자가 밀릴 수밖에 없었다.
“전공이 뷰티미용과라, 학교에서 자격증을 딸 수도 있었어요. 자격증 시험 감독관이 학교로 오시거든요. 아무래도 학생들끼리의 경쟁이라, 학원에서 치르는 자격증 시험보다는 쉽게 딸 수 있죠. 저 같은 경우는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로 돌아간 셈인데, 자격증 취득도 중요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제 실력이 향상되는 거라 생각했어요. 저는 유명한 미용사가 되고 싶거든요.”
헤어디자이너를 꿈꾸게 된 건 중학교 2학년 때부터다. 당시, 제천지역자활센터에서 주관하는 청소년 진로캠프에 참가했던 휘진은 헤어디자이너란 직업의 세계에 눈을 반짝 떴다. 요리사를 꿈꾸던 소년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건 ‘사각사각’, 경쾌한 가위질 소리였다. 누군가를 아름답게 꾸며주는 일이 더없이 멋져 보였다. 휘진은 꿈을 향해 직진했다. 뷰티미용과가 있는 특성화고에 진학한 것도 그 때문. 2학기 때 취업하고픈 헤어숍과 훗날 차리고픈 자신의 숍까지 구체적인 미래를 촘촘히 설계했다.
“가고 싶은 곳이 있어요. 천안에 본점을 둔 헤어숍인데, 업계 2위에요. 여러 숍을 놓고 직원 복지, 월급, 스태프 기간까지 조건을 꼼꼼히 따져 비교해봤는데, 제가 딱 원하는 숍이에요. 2학기 때 원서 넣으면 10월 초 쯤 취업을 나가게 되겠죠. 2년에서 2년 반쯤 스태프 기간 거쳐 주니어 디자이너까지 마친 뒤, 군대 갔다 와서 본격적인 디자이너로 일할 수 있을 거예요.”
직원 숙소로 제공되는 아파트 평수까지 환히 꿰고 있는 휘진의 꼼꼼한 설계에 감탄을 연발하자 의젓하게 응수한다.
“제 미래가 걸린 일인데, 당연히 신중해야죠.”
꿈을 향해 한 발짝 앞으로
제천디지털전자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유정은 올해 ‘고등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의 장학생으로 선정됐다. 유정의 장학금 사용 용도는 휘진과 비슷하다. 유정이 역시 헤어디자이너를 꿈꾸는 까닭이다. ‘유명한’ 헤어디자이너를 향한 포부도, 중학교 때부터 헤어디자이너의 꿈을 키워왔다는 것까지 닮은꼴이다.
“헤어숍을 하는 친척 분들이 여럿이라, 어려서부터 미용실에서 노는 일이 많았어요. 사각사각 가위질 소리나 샴푸, 펌, 염색약 냄새 같은 미용실 특유의 소리와 냄새가 그냥 다 좋았어요. 헤어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사실 막연했죠. 학교 전공도 보건간호과라…. 장학금을 지원받아 가장 좋은 건 미용학원에 등록한 거예요. 하고 싶은 일을 향해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간 거 같아 기분이 좋아요.”
학교 수업을 마치자마자 바로 학원 수업으로 이어지는 빽빽한 하루가 피곤할 법도 하거늘, 선망하는 직업세계와 가까워졌단 생각에 요즘 유정의 집중력은 최고조다. 장학금을 지원받은 첫 해라 영수증 증빙 등 장학금 지급에 필요한 서류 처리가 서툴 법도 한데, 차분한 유정에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는 3년 차 장학생인 휘진에게도 마찬가지. 교통카드 충전 영수증을 깜빡했다가 다시 챙긴 적이 한번 있었을 뿐, 증빙 서류 제출로 애태운 일은 딱히 없다. 다만 미용학원의 재료비가 비싼 편이라, 품목당 5만원․연간 20만원으로 제한된 교구비 때문에 다소 곤란했던 적이 있었다고.
2년차 인생 선배 휘진에게 같은 꿈을 꾸는 후배를 위해 해줄 말이 없는지 묻자, 기술은 말로 팁을 전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며 손사래 친다. 그러면서도 결국 이런 명언 한 마디 남기고 마는 섬세한 휘 쌤.
“좋아서 시작했지만 그래도 하다보면 가발을 집어던지고 싶을 만큼 하기 싫을 때가 있을 거야. 하지만 그때 가발을 단단히 고정시키고 네 마음도 고정시킨다면, 자격증도 빨리 따고 네가 원하는 길로 갈 수 있을 거라 믿어.”
끝내 마음을 붙들어 고정시킬 수 없는 날엔 어떻게 하느냐 묻자, 그땐 공을 차는 수밖에 없단다. 친구들과 운동장을 뛰며 공을 좀 차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것. 휘진에게 축구가 있다면 유정에겐 노래방이 있으니, 가발을 집어던지고 싶은 날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글 고우정 l 사진 현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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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교육비 지원사업] 가난해서 배우지 못하고, 배우지 못하면 또다시 가난해집니다. 세대를 잇는 빈곤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안정적인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배움과 미래에 대한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지탱해줄 버팀목이 필요합니다. 아름다운재단의 ‘고등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은 성적순으로 주는 ‘상금’이 아니라 미래를 개척하고자 하는 의지에 힘을 실어줄 ‘희망’이 되고자 합니다. ‘고등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은 ‘한국청소년자활지원관협의회’와의 협력사업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