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집중 탐구생활
파란 하늘만 바라봐도 설레는 가을 주말. 맑은 날씨에 흥겨운 축제가 지천이건만, 왁자한 즐거움을 뒤로 하고 조용한 집들이에 참석한 이들이 있다. 아름다운재단과 나눔으로 첫 인연을 맺고 옥인동 아름다운 집으로의 초대장을 받아든 새내기 기부자들이다. 지난 9월 16일 아름다운재단 사옥에선 새내기 기부자들을 위한 ‘처음자리 마음자리’가 열렸다. 오리엔테이션이라 해도 좋고 집들이라 해도 어울릴 소박한 이 자리엔 열두 명의 반가운 손님과 기부자소통팀 간사들이 함께 했다.
특히나 이번 처음자리마음자리에는 올해 진행 중인 ‘어쩌다 슈퍼맨’ 캠페인의 취지에 공감해 인연을 맺은 기부자가 많이 참석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비유하자면 이들은 이름과 안면을 트고 몇 마디 나누다가, 내 인생의 영화 혹은 음악과 같은 특정 화제에서 교감 지수를 확 끌어올린 상태라 할까. 통한다는 느낌은 강하게 받았으나 아직 상대방을 속속들이 알진 못하는 단계. 하여 ‘처음자리 마음자리’를 통해 본격적인 ‘아름다운재단 탐구생활’이 시작되었다.
올해부터 교육, 환경, 건강, 주거, 노동, 안전, 문화, 사회참여 8개 영역으로 확대 개편된 지원사업을 영역별로 들여다보았다. 기초 지원은 물론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정책 개선까지, 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로 변화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의지와 고민의 흔적을 지원사업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아름다운재단의 다양한 사업을 소개한 기부자소통팀 박해정 팀장은 ‘아름다운재단에 존재가치를 부여해주는 기부자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며, ‘기부자 각자가 품고 있는 나눔의 가치를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실현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나눔에 관해 우리가 나눈 말들
8개 사업영역에 대한 브리핑을 마친 뒤, ‘처음자리 마음자리’에서 여운이 가장 오래 남는 특별한 시간이라 할 수 있는 새내기 기부자들의 ‘나눔 한마디’가 이어졌다. 나눔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나에게 나눔이란 어떤 의미인지, 나눔에 관한 생각을 되새기고 공유하는 시간. ‘나에게 나눔이란 [ ]이다’의 빈 칸을 채우기 위해, 먼저 아름다운재단 1호 기금 출연자, 故 김군자 할머니의 이야기가 담긴 영상을 감상했다. ‘나눌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며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고 떠난 할머니의 생전 모습은 먹먹한 감동으로 쉬 사라지지 않는 잔상을 남겼다.
기실, 한 시간 남짓 한 테이블에 둘러앉았을 뿐인 낯선 이들 앞에서 자신의 마음자리를 짚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익숙한 관계보다는 차라리 낯선 관계 속에서 끄집어내기 쉬운 성찰과 진심을 우리는 종종 경험한다. 나눔 한마디도 어쩌면 그러한 영역일 터. 기부자들의 솔직한 한 마디, 한 마디가 이를 증명한다.
먼저, 씩씩하게 첫 테이프를 끊어준 안지은 기부자. 그는 [갚음]이란 단어로 빈칸을 채웠다.
“제가 20대 중후반을 시험 준비로 다 보냈어요. 나라에 이슈가 많을 때였는데, 시험 준비를 이유로 사회 참여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의 미안한 마음이 계속 남아있었어요.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작으나마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생각하던 차에 남편의 추천으로 아름다운재단을 알게 됐고, 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은 씨의 옆자리를 지키던 윤석현 기부자가 배턴을 이어받았다. 새내기 기부자는 아니지만, 자신의 소개로 재단과 첫 인연을 맺은 아내를 응원하기 위해 동행했다고. 2년 전 ‘처음자리 마음자리’에 참석해, 기부자소통팀 간사들에게도 무척이나 반가운 얼굴이다.
“저는 2년 전에도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당시, 정기기부를 시작하며 새내기 기부자 모임에 초대받아 아름다운재단을 방문했는데, 그 기억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기부와 사회 참여에 관심이 많은 아내에게도 권해 같이 기부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나눔은 [공유]라고 적었는데요, 제가 공감할 수 있는 사회활동이나 단체에 기부하면서 그 가치를 공유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내와 일곱 살, 다섯 살 아들 형제를 동반하고 나들이 가듯 아름다운재단을 찾아준 김종언 기부자. 그에게 나눔은 [배움]이다. 나눔은 마음이 동해야 가능한 일이지만, 그 공감은 ‘앎’을 통해 일어난다. 알면서, 배우면서, 공감하고 나누는 것.
“교과서적인 이야기지만, 저에게 나눔은 [배움]인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은 노란봉투 캠페인을 통해 알게 됐고 그때 처음 기부를 했어요. 최근에 ‘어쩌다 슈퍼맨’ 캠페인을 접하고 정기기부를 시작했습니다. 매번 기부할 때마다 느끼고 배우는 게 많습니다.”
오성민 기부자와 이종현 기부자에게 나눔은 부메랑이다. 결국은 나에게로 돌아온다고 믿는 까닭. 옳다고 믿는 가치와 지향점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길 위에 마음을 보태는 일이기에 가능한 믿음이다.
“이른둥이 지원사업을 통해 아름다운재단에 관심을 갖고 기부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한 달 일찍 태어났다고 해요. 심각한 케이스는 아니었지만 조금 위험하기도 했던가 봅니다. 이른둥이 지원사업을 보며, ‘만약 내가 태어날 당시에도 이런 지원사업이 있었다면 어머니께 큰 도움이 됐을 텐데…’ 싶더라고요. 나눔은 [나를 돕는 것]이라 적어봤는데요, 남을 돕는 게 결국은 나를 돕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입사 3년차의 신입사원으로, 스스로 돈을 벌면서 부터 기부를 시작했습니다. 나눔은 [선택이 아닌 의무]인 것 같습니다. 살면서 알게 모르게 다양한 나눔의 혜택을 받아왔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나눔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저는 ‘어쩌다 슈퍼맨’ 캠페인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공익제보자분들이 큰 용기를 내주신 덕분에 우리가 누리는 혜택을 생각하며, 그분들에게도 작은 도움이나마 되어드리고 싶었습니다.”
아직 나눔 빈칸을 채우지 못한 채로 배턴을 이어받은 김준열 기부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나눔을 선택한 케이스다.
“다른 분들 말씀을 들어보니 기부와 나눔 활동을 오래하신 것 같아요. 저는 작년 겨울, 촛불집회 때부터 기부를 시작했습니다. 촛불 집회 자원봉사자들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생각하다가 여기저기 조금씩 기부하기 시작했고, 최근엔 아름다운재단에도 기부하고 있습니다. 조금씩이나마 오래, 나눔 하겠습니다.”
부부가 나란히 나눔의 가치를 공유하는 풍경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김성범&최진주 기부자의 나눔은 ‘용기있는 시작’이다.
“나에게 나눔이란 계좌이체다, 라고 쓰려다가(웃음) [용기]라고 썼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참석한 와이프 소개로 아름다운재단을 알게 됐습니다. 사실, 기부를 시작하기 전엔 마음이 좀 복잡합니다. 월급도 팍팍한데 여유가 있을까? 다음 달 카드 값도 걱정인데…. 하지만 기부를 함으로써 얻는 게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사회문제들이 나의 자그마한 참여를 토대로 개선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보람도 그 중 하나일 텐데요, 그런 기쁨을 누리려면 처음에 용기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NGO 단체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기부금을 어떻게 쓰는지 봤기에 기부금으로 운용되는 단체를 잘 안 믿었어요. 아름다운재단에 기부를 시작한 이유는 사실 개인적인 인연이 바탕이 됐는데요, 재단 배분팀에 근무하는 모 간사님이 대학 동기입니다. 사사로운 자리에서 친구의 고충 토로를 듣다보니, 본인은 어려움을 털어놓는데 듣는 저에겐 ‘아름다운재단은 굉장히 투명하게 운영되는 구나’ 하는 믿음이 생기더라고요. 내가 시작하니 내 옆에 또 한 사람(남편)도 시작하게 됐던, 전파 과정을 떠올리며 나눔은 [시작]이라고 적어봤습니다.”
마지막 차례를 기다려 나눔 한마디를 나눠준 서성희 기부자에게 나눔은 꿈꾸는 사회를 향한 [기다림]이다.
“아름다운재단을 알게 된 건 최근입니다. 우연히 팟캐스트를 통해 ‘어쩌다 슈퍼맨’ 캠페인을 접했고 ‘아, 이건 꼭 해야겠구나’ 싶더라고요. 우리 사회의 변화를 간절히 기대해왔지만, 한순간에 천지개벽하듯 바뀌는 것 같진 않습니다. 그래서 저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장 바뀌지 않는다고 실망한 채 포기한다면 얻을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나눔 또한 우리가 원하는, 공정하고 아름다운 사회가 오길 기다리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부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갖기 위한 노력 중 가장 쉬운 선택이 아닐까요? 그런 생각 위에서 나눔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집들이를 마치며
재단 알기, 혹은 집들이의 마지막 순서로 1층부터 옥상까지 ‘아름다운 집’ 구석구석을 돌며 구경한 뒤, ‘나눔의 씨앗’을 심는 상징적인 이벤트를 가졌다. 다섯 살, 일곱 살 꼬마도 꽃삽을 쥐고 모처럼 제 할 일이 생겨 신바람이 난 시간. 모두의 눈길이 귀여운 형제에게 집중된 가운데, 윤석현 기부자는 언젠가 아이를 동반하고 다시 재단을 찾고 싶다는 훈훈한 희망사항을 전하기도 했다.
나눔 씨앗을 심은 화분을 품고 돌아가는 기부자들을 보며, 이런 시 구절이 떠올랐다.
우리는 태양을 직접 바라볼 수 없다
태양으로 길러지고 빛나는 것으로만 확인할 뿐
사랑 또한 볼 수 없고 단지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 사랑 ‘덕분에’ 살려지고 있으니
-박노해 시인
‘사랑’ 자리에 ‘나눔’을 넣어 읽어 본다. 전혀 어색함이 없다. 나눔으로 길러지고 빛나는 존재들을 바라본다. 나눔 덕분에 살려지고, 살아지는 우리네 삶을.
글 고우정ㅣ사진 김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