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교 도서관에 갔다가 이 책을 보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인생을 흘러가는 대로 살아온 40대 남자에게 20대의 고뇌가 몰려왔다. 20대에 고뇌를 회피한 벌처럼 느껴졌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하기 싫은 일이 무엇인지는 확실했다. 회사를 그만두었다. | |
| |
회사를 그만두니 비록 마음 한 켠이 쪼그라들어도 생각의 나래는 넓게 펼쳐졌다. 한 군데의 직장에서 정년 퇴직하는 삶의 시대가 이미 저물었음은 알고 있었지만, 이 책에서는 한 가지 직업에 머물지 않고 여러 직업으로 변환(Shift)하는 일의 미래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변환은 봉사, 여행 또는 학습이 매개하는 것이었다. 나의 다음 직업은 무엇이 될 것인가. 그리고 무직자가 지금 할 수 있는 봉사는 무엇일까. 생각보다 쉽지 않은 문제였다. | |
| |
작가는 시골살이에 대한 도시인들의 막연한 동경을 빗대어 울타리 안의 가짜 어른을 힐난하고 있었다. 나도 그 대상 중 한 명이었다. 40대 남자가 함부로 직장을 박차고 나와 마주하는 세상은 – 비록 죽지는 않겠지만 –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없었다. 세상은 넒고 ***는 많더라. 정신을 차리고 스스로를 더 벼려야 했다. | |
| |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백수의 시간. 이러다가 내 인생에 직업생활은 이대로 영영 끝나는 것은 아닐까. 백수의 시간이 길어지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고작 두어 달의 백수 생활과 예닐곱 번의 면접을 떨어진 것으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이 모습이 바로 나였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공이 40대인 점, 퇴직을 할 때 아내가 별 말이 없었던 점, 아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 점이 마치 나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쓴 것 같았다. 아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수컷의 권위를 세울 밑천이 전혀 없었던 그 때가 오히려 아들을 대하기 가장 편했던 것 같다. 그 뒤로 가끔 아들은 아빠가 백수 시절에 만들어주던 컵밥 얘기를 하곤 했다. | |
| |
어쩌다 이 책이 내 눈에 띄었을까.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저자의 캐릭터와 상황들이 나와 너무 비슷해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저녁에 집어든 책을 새벽까지 쉬지 않고 읽어나갔다. 다 읽고 난 다음에도 책 내용의 여운에 한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책의 내용 대부분은 그냥 누구나 아는 일반적인 얘기였다. 마음을 후벼팠던 얘기는 에필로그의 이 얘기, “방향이 어긋난 헌신은 보상받지 못한다.”였다. 저자는 자신이 맡은 일에서 자신의 신념과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겠지만,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의 문제 해법은 그 일을 없애고 인원을 줄인 것이었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둔 후 저자 또한 자신의 사업을 하였으므로, 조직의 해법이 옳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회사 일을 내 일처럼 여긴다고, 회사가 자아실현의 터전이라고 부린 독단은 곧 어리석음에 불과했구나. 뒤늦게 깨달았다. | |
| |
내가 회사를 그만두기 5일 전에 나온 이 책은 ‘기술은 직장에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당연한 진리를 일깨워 주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니, 비록 나의 직업 인생은 단조로웠지만 나의 인생이 단조롭지는 않았다. 직업 인생만 기록되어 있던 종전의 이력서가 갑자기 다채롭고 풍부한 이력서로 바뀌었다. 주식 공부하면서 배운 것들, 캠핑의 취미, 아파트 입주예정자 동호인회 활동, 도서관에서 일한 것, 예전에 책쓰기를 배운다고 주워들었던 여러가지들…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찬 이런 잡다한 것들은 내가 맡은 일에 변화가 생겼을 때 다 ‘경력’이 되었다. 인생을 길게 보면 쓸데없는 일도, 실패도, 없는 것 같다. |
댓글 정책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