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주거안정지원사업 _ 정릉동 골목의 다세대 주택

정릉동 골목길

스무 살 즈음은 아이에서 어른으로 거듭나는 신비로운 지점이다. 행복한 삶을 상상하고, 소중한 꿈도 그려보는 그야말로 푸르른 시절(靑春)이다. 그 나날에 오롯이 장성하려면 일상의 터전이 중요하다. 폭염과 혹한을 막아주고 인생과 자아를 가다듬을 최소한의 보금자리가 필요하다.

아름다운재단과 아동자립지원단은 그래서 복지시설퇴소 및 위탁가정보호종료 청소년을 대상으로 주거안정지원사업을 실행했다. 올해는 모두 82명이 선정됐고, 1인당 최대 500만 원이 공급됐다. 갑작스러운 시설퇴소와 위탁종료로 스무 살 즈음의 그들은 행복한 삶이나 소중한 꿈을 추구하는 대신 매일같이 거주와 생계 때문에 속앓이 중이었다.

현수 씨(가명・21세) 역시 그중 1인이다. 최근 자립하는 동안 세상이 뿜어내는 혹독한 비바람에 무척이나 당황했다. 하지만 주거안정지원사업 지원대상자로 선정돼 다행히 한숨을 돌렸다. 이제는 새로운 보금자리 가운데 청년으로 성장해나가는 현수 씨의 얼굴에서 슬그머니 희망의 빛이 엿보인다.

‘안전성’과 ‘편의성’이 확보된 일상을 살아가길

지난 11월 1일이다. 주거안정지원사업을 통해 현수 씨가 새집으로 이사했다. 시설퇴소 후 주거지를 전전한 지 1년 6개월 만이다. 그의 새집은 정릉동 골목에 위치한 다세대 건물의 지하에 자리한다. 면적은 10평 정도에 방은 2개다. 다달이 월세를 지불해야 하고, 아직 가구나 가전기기는 장만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간절히 소망했던 보금자리였다.

아동자립지원단 이정현 원구원과 이택호 연구원은 현수 씨가 이사하고 보름 후쯤 그 새집에 노크했다. 집들이로 이사를 축하하고, 주거환경도 모니터링하려는 까닭이다. 보통 주거환경의 모니터링은 1인 최대 3회씩 진행되고 있다. 이정현 연구원은 살갑게 일행을 맞이하는 현수 씨에게 애틋한 미소를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정현 연구원은 그의 힘겨운 사정을 십분 이해하고 있다.

2017 주거안정지원사업

2017 주거안정지원사업

다세대건물 지하에 위차한 현수 씨(가명)의 새로운 보금자리


“시설퇴소 후 현수 씨는 고시원에 거주했는데요. 그 고시원이 불법 구조물이라 폐쇄 명령이 떨어졌어요. 그래서 고시원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와서 여관방에서 한 달간 지냈죠. 그 사이 지원금이 적잖이 사용됐어요. 아무래도 여타 지원대상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가의 집을 계약할 수밖에 없었죠.”

이정현 연구원과 이택호 연구원은 현수 씨의 안부를 확인하곤 구석구석 주거환경을 모니터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부환경과 공용공간을 구분해 방, 주방, 세탁실은 물론 현관, 계단, 복도를 지표에 따라 세심히 점검해나갔다. 그 이면에는 현수 씨가 안전하게 거주하길 소원하는 마음이 녹아있다. 그 진심을 깨달은 듯 현수 씨는 내내 감사의 표정을 머금고 있었다.

“처음에 자립하기 위해 이것저것 노력했어요. 그러나 세상이 예상과 달라서 참 막막했어요. 특히 주거지를 구하지 못해 노숙인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서웠죠. 그쯤 주거안정지원사업 지원대상자로 선정되어서 천만다행이었죠(미소).”

현수 씨한테 새집의 시설을 세부적으로 확인하며 내부환경 및 공용공간 모니터링은 그새 일단락돼갔다. 무엇보다 이정현 연구원은 지하라 채광이 비치지 않아서 제법 염려했고, 아무래도 이택호 연구원은 욕실 내 커다란 턱이 위험해 꽤 걱정했다. 현수 씨는 그들의 언급에 수긍하며, 그래도 새집에서 점차적으로 육체적 건강 및 심리적 안정을 회복하는 중이라고 얘기했다.

이제 이정현 연구원과 이택호 연구원은 모니터링을 매듭짓는 수순으로 주위환경을 살펴볼 참이었다. 현수 씨의 동선에서 안전성을 짚어나가고, 마트나 병원의 편의성도 확인하려는 생각이다. 그것은 그를 위한 애정이고 관심이다. 따라서 주위환경이 혹여 열악하더라도 그들은 그 가운데 안전성과 편의성이 확보된 삶의 이정표를 그에게 안내해주리라 기대한다.

‘보통의 삶’ 너머 ‘무지갯빛 꿈’을 실현하길

주거환경의 모니터링을 통한 애정과 관심에 힘입어 현수 씨는 새집에서 생기로운 일상을 계획하는 중이다. 지금 그는 새집에서 5살 터울의 친형이랑 더불어 거주하고 있다. 그간 형제는 사정상 함께하지 못했다. 그러나 현수 씨의 시설퇴소 이후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생활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요즘에는 택배회사에 출근해 야간에 물류를 분류하는 아르바이트 중이에요. 형이랑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일하고 있어요. 작년에는 굴삭기 기사로 활동하려고 자격증도 취득했는데요. 경쟁이 심해서 쉽사리 일자리가 생기지 않더라고요.”

2017 주거안정지원사업

2017 주거안정지원사업 선정자 현수 씨(가명)

그동안 현수 씨는 자립을 위해 안간힘을 기울였다. 음식점 서빙, 막노동 보조, 에어컨 설치 등 다방면에서 아르바이트에 열중했다. 하지만 성격이 내성적이라며 사흘 만에 해고당하기도 했고, 부당한 계산법으로 급여가 삭감되기도 했다. 현수 씨는 여러모로 절망했으나 결코 마음의 소망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그는 단기적으로, 또한 장기적으로 내일의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

“조금 막연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목표는 정했죠. 지금은 우선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구비하려 하는데요. 무엇보다 책상을 들여놓고, 다음에는 미술도구를 장만하고 싶어요. 그림을 그리면 마음이 평온해지거든요. 그래서 훗날 캐릭터를 생산하는 회사에 디자이너로 입사하고 싶어요.”

실제로 현수 씨는 청소년기부터 미술에 재능을 드러냈다. 사생대회에서는 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까지 그림을 그리며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최근에 고시원에서 내몰리며 미처 미술도구를 챙기지 못하고 분실했다. 그런즉 그는 학원비 지원 및 물품 후원도 병행되면 무척 유용하리라고 조심스럽게 속마음을 풀어내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상에서 현수 씨는 그저 보통의 삶이 절실한 소원이었다. 하지만 외따로 보통의 삶을 실현하고자 감내했던 세상사는 정말이지 녹록치 않았다. 사실 그는 시설퇴소 후 행복했던 순간이 전무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우여곡절을 경험하는 가운데 그는 나날이 강인해지는 듯했다. 그것은 그가 시설퇴소 및 위탁종료 후배에게 얘기하는 메시지에서도 확연하게 나타난다. 이제는 그가 새집을 보금자리 삼아 보통의 삶 너머 무지갯빛 꿈을 실현하길 응원한다.

“한창 힘겨웠던 시기에 우연찮게 글귀를 발견했어요. ‘자살을 뒤집으면 살자다’라는. 시설퇴소 후 외로우면서 두려웠는데, 지속적으로 노력하니까 조금조금 상황이 나아졌어요. 그래서 부정적인 생각을 줄이고, 우리 긍정적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웃음).”

2017 주거안정지원사업

새집을 보금자리 삼아 보통의 삶 너머 무지갯빛 꿈을 실현하길 응원합니다.

글 노현덕ㅣ사진 조재무

[시설퇴소 및 위탁종료 대상 주거안정 지원사업]
부모의 이혼이나 사망, 빈곤 등으로 인해 아동복지시설이나 위탁가정에서 보호받는 아동은 만18세에 도달하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보호가 종료됩니다. 정부와 민간에서 여러 자립지원을 하고 있지만 충분한 준비나 유예기간 없이 자립 생활을 시작하기 때문에 사회정착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은 불평등한 출발선에 있는 이들의 자립을 응원하며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아동자립지원단과 함께 <시설퇴소 및 위탁종료 대상 주거안정 지원사업>을 통해 2016년부터 현재까지 약 200여 명 대상으로 1인당 최대 500만 원의 주거비 지원과 자립역량 강화에 도움이 되는 교육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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