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단체들은 우리 사회와 소외된 이웃을 위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삶의 터전 곳곳에서 변화와 대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공익활동에 헌신하는 풀뿌리단체 중에서는 아직 시민들의 후원이 부족하거나 정부의 지원이 없어서 활동의 어려움과 한계에 봉착하기도 합니다. 이들이 만들어가는 작은 변화의 시나리오로, 우리의 세상과 삶을 더 아름답게 변화할 수 있도록 [변화의 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누구나 한 줄 헌법을 작성할 수 있다 – 녹색헌법 만들기
녹색가치를 중심에 둔 시민참여형 개헌안 만들기, 즉 <녹색헌법> 만들기가 이 사업의 전체 줄거리입니다. 생명, 정의, 참여, 평화의 가치를 반영하는 녹색헌법을 만들기 위해 시민토론회를 열어 기본권, 국민주권, 지방분권을 강화하고, 정부 형태에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실질화한 개헌안을 형성해나가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지방선거에 개헌안을 올리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며, 국회도 ‘개헌특위’를 구성하여 국민토론회를 개최하는 등의 활동을 진행 중입니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복수의 개헌안이 나와 있으며, 개헌을 계기로 각자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입니다.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개헌 과정은 ‘누구나 한 줄 헌법을 쓸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회 개헌특위가 진행한 국민토론회는 준비과정이나 형식, 홍보 등에서 시민참여 과정을 소홀했던 측면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 진중한 토론이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녹색헌법 만들기는 30년 전에 만들어진 헌법이 담지 못한 새로운 가치에 대해 밀도 있게 토론할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녹색헌법 만들기를 위한 세 차례 토론회는 크게 8가지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1) 2014년 국회의장 직속 헌법개정 자문위원회 개헌안, 2) 2015년에 대한민국 시도지사협의회에서 헌법학회에 의뢰하여 내놓은 개헌안, 3) 2016년에 대화문화아카데미라는 민간단체가 발표한 개헌안, 4) 2016년에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이라는 민간단체에서 낸 개헌안이라고 말했다. 개헌안 외에도 5) 세계인권선언, 5) 한국녹색당강령, 6)세계녹색당헌장을 참고했으며, 7) 세계 각국의 헌법, 8) 헌법을 알기 쉬운 우리말로 풀어쓴 책들을 참고했습니다.
토론에 참여했던 분들의 의견들은 매우 소중했습니다. 국민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며, 삶의 기반이 지속가능해야 한다는 점이 제시되기도 했고, 태양, 바람, 물, 공기 등의 공유자원이 점점 사유화되고 있다면서, 이런 공유자산은 공익을 위해 소중히 관리되어야 하며 거기서 나오는 이익이 있다면 전체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상당수였습니다. 이는 공동체가 보유한 공동자원과 여기서 나오는 이익은 공동으로 분배되어야 한다는 가치와 철학을 바탕으로 합니다. 무엇보다 녹색헌법은 헌법에서 규정하는 가치가 경합할 때, 녹색헌법이라면 지금처럼 생명이나 평등이 뒤로 밀리지 않아야 한다고 참석자들은 강조했습니다.
녹색헌법이라면 최소주의를 지향하며 가볍고 유연해야 한다는 주문도 있었습니다. 헌법에서 의무로 규정하는 사항을 최소화하고 자율적이고 성숙한 토론으로 사회의 주요 사항을 결정해가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대표적인 사회권의 하나인 주거권이 헌법에 균형 있게 반영되기를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현행 헌법에도 거주이전의 자유가 명시되어 있지만 실상은 2년마다 이사를 강요당하는 현실임을 지적하면서 주거권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지난 촛불 정국을 거치면서 정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면서 정당득표율과 의석수가 일치하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헌법이 명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개헌에 앞서 선거제도 개혁이 우선이라는 데에도 특별한 이견은 없었습니다.
지방분권에 대한 관심도 높았습니다. 특히 과거 헌법재판소가 관습 헌법을 근거로 수도 이전이 무산된 점을 고려한다면, 국민이 원하면 수도를 옮길 수 있다는 정도의 조문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경제에 대해서는 현행헌법에도 보장된 사회적 시장경제에서 더 나아가 생명 존중의 사회적 시장경제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무거웠습니다. 또한, 통치기구 구성에서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다양한 방안이 모색될 수 있도록 헌법이 구성되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되었습니다.
이런 논의의 결과로 “개헌에 신중한 당신에게 녹색 헌법을 제안합니다”라는 최종 결과물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세 차례 토론회에서 나온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 결과물입니다. 그러나 이 녹색헌법은 완전무결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시민이 일상의 언어로 한 줄 헌법을 작성해나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녹색헌법은 첫째, 생명중심주의가 근간이 될 것을 제안합니다.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 생명중심주의가 헌법 정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녹색헌법에는 “모든 생명은 존엄한 가치가 있다.”라는 것을 명시하였고, “모든 사람에게 산, 들, 강, 바다를 포함한 자연과 식물, 동물을 포함한 생물 그리고 유형, 무형의 문화유산을 미래세대를 위하여 보전할 의무가 있다.”라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또한, 자연은 유한하며 낭비할 수 없습니다. 물만이 아니라 땅, 불(화석연료), 공기와 같은 자연은 공동자원임을 확실히 하여 특정 개인이나 기업, 공공단체가 남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인간 존엄을 지키기 위해 누구나 평등하게 쓰게 해야 합니다. 모두의 것이니 누구도 남용하지 말자는 취지입니다. 그래서 “자연은 공동자원이므로 특정 개인이나 기업, 공공단체가 남용하지 못하며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삶을 살기 위해 누구나 쓸 수 있다.”라는 조문을 삽입하였습니다.
녹색가치는 내용만큼이나 과정을 중시합니다. 오히려 과정에서 녹색 가치가 발현됩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생명을 중시하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권력이 집중되면 안 됩니다. 왜냐면 권력이 강할수록 과정을 무시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녹색 헌법의 특징은 자치와 분권을 강조한 점입니다. 우리 사는 세상을 스스로 가꿔갈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하자는 뜻입니다. 더 작게 나누고, 더 작은 노력들을 모아보고, 그리고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영역을 넓히고 우리 의견이 더 잘 반영되게 하고, 선거연령도 낮춰서 청소년의 의견도 반영하고, 국가기관의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여 국민을 함부로 억압하지 못하게 하자고 녹색헌법은 말합니다.
글 | 조주은 (녹색전환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