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이라는 지향과 동력

경계가 불분명한 공간을 채우는 일은 고단하다. ‘무엇’을 ‘어떻게’ 이전에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고민하느라 시작조차 버겁다. 또렷한 좌절과 불가능마저 비껴간다. 흔들리는 토대라서가 아니라 발 딛고 설 영토가 없어 불안하다. 그래서 안정을 지향한다. 자신의 경계를 세우고 탄탄한 현실을 만드는 게 목표다. 김다은(가명)과 박인우(가명) ‘안정’은 굉장한 동력이었다.

“처음엔 토목을 전공했어요. 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취업하려는데 모두 계약직이고 미래가 안정적이지 않더라고요. 졸업 후 시설에서도 나와 불안정한 상황에 놓이니까 지금까지 뭐했을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여행을 떠났어요. 여러분들께 조언도 구하고요. 다른 전공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한 뒤 선택한 게 간호과였어요.”

안정적인 취업만큼이나 섬세하고 타인을 잘 챙기는 인우 씨의 성격이 도전의 뒷심이었다. 토목과는 그를 담아내기 어려운 분야였다. 직장일 순 있지만 직업이 될 순 없었다. 좀 더 자신이 지향하는 삶을 닮은 게 간호사였다. 물론 ‘잘할 수 있을까’ 의심은 들었다. 낯선 학문을 처음부터 공부하는 결심이니 큰 심호흡이 필요했다. 시설 선생님들을 만나 기운도 얻었다. 겨우 다잡은 마음으로 새로운 출발선에 서자 현실적인 문제가 들이닥쳤다. 등록금이었다.

“전공을 바꾼 터라 국가장학금을 4학기밖에 받을 수 없으니 나머지 4학기를 어떡하나 고민할 때였어요. 원에 계시던 선생님이 어떻게든 길이 있으니까 걱정될 때 꼭 연락하라던 말씀이 떠올랐죠. 아름다운재단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 이야기를 해주시더라고요. 부랴부랴 지원하고 1년 동안 교육비 지원을 받게 됐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솔직히 머리가 생각보다 안 좋고(웃음) 제겐 정말 어려운 분야를 공부하니 따라가는 게 벅차거든요. 거기에 성적장학금을 고민하려니 이 공부를 계속할 수 있을까, 마음이 무겁고 다급했는데 다른 방법을 둘러볼 만큼 여유가 생겼어요.”

미래를 위한 시간을 선물 받다

들쑥날쑥한 가계로 일상이 흔들렸던 다은 씨가 안정을 위해 선택한 진로는 공무원. 그 중 활동적인 자신에게 어울리는 경찰공무원이 현재 그녀의 목표다. 경찰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그녀는 올 상반기에 졸업 이수 학점을 채우고 여름부터 경찰공무원시험에 전념했다.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학원과 인터넷으로 수업을 듣느라 매일이 빠듯하다. 할 수 있는 게 공부밖에 없지만 마음은 여유롭다. 미래를 위해 노력할 시간을 허락받아서다.

“대학 4년 내내 국가장학금 받으면서 일했어요. 2년 동안 근로장학생으로 일한 돈은 무조건 저금했고요. 못해도 천만 원은 모아둬야 경찰공무원 시험공부가 가능해서요. 돈 모으는 게 쉽진 않았어요. 책 한 권 사는 것도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몇날 며칠을 고민했어요. 강의도 1년짜리는 사본 적 없고요. 그런데 교육비 지원을 받으니 그게 가능한 거예요. 책을 마음껏 살 수 있구나, 생각하니 정말 좋더라고요.”

무엇보다 좋았던 건 지원서를 쓰는 작업이었다. 지난 4년 내내 자신이 얼마나 불행하게 사는지, 가정환경이 얼마나 불우한지에 대해 구구절절 썼고 그 대가로 장학금을 받은 그녀에게 교육비 지원사업은 감동이었다. 꿈에 대해서 쓰라니! 가까운 친인척도 묻지 않는 나의 꿈을 궁금해 한다니 신기했다. 시혜적인 단발성 기부가 아닌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에게 보내는 응원과 지지라고 느껴져서다.

“200만 원은 학원비랑 강의료로 쓰고 50만 원여는 교재비, 나머지는 휴대폰 비용, 장보는 데 썼어요. 130만 원 되는 학원비를 일시불로 내니 좋았어요, 하하하. 원래 나가던 돈을 안 쓰니 장학금 받은 게 실감나고. 이렇게 내년 9월까지 딱 1년 정말 밤낮 없이 공부할 거예요. 그리고 안 되면 미련 없이 포기할 겁니다. 받쳐주는 사람도 없는데 누구한테 민폐 끼치기 싫어요. 후회 없이 진로 2지망인 마케팅으로 나가려고 해요. 기획도 발표하는 것도 좋아하니까.”

여유를 경험하며 터닝 포인트에 서다

400만 원을 지원받아 한 학기 등록금을 납부하고 나머지를 책값과 학업생활보조비로 사용한 인우 씨는 평소에 살 수 없던 것을 구비하느라 잠시 동안 설렜다. 그 중 하나가 안경이고 또 다른 것은 책이다. 절실했으나 우선순위에서 밀리던 필수품이 해결되니 마음이 풍요로웠다. 거기에 신발과 음료, 식품 구입 등으로 아주 잠깐의 여유를 맛보기도 했다.

“작년 6월에 독립했으니 혼자 지낸지 1년 반인데 외롭고 힘들어요, 하하. 늘 급급하게 쓰니까 체계적인 게 무의미했고요. 개념도 없죠. 운용할 여지가 없으니까. 그런데 지원금을 받으니 무엇에 써야 할지 효율적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안경, 신발, 책이 그런 거예요. 일종의 보험 같은 거죠. 1년 앞을 바라보는 거예요, 불안해하는 게 아니라 계획하는 거죠. 덕분에 쓰임을 체계적으로 생각하며 가계부도 써요(웃음). 반찬 사다가 집에서 밥도 해먹으려고요.”

다은씨도 다르지 않다. 한 달 단위이거나 학기로 끊어서 허우적대며 지내다 1년 예산을 다루니 긴 안목으로 미래를 꿈꾸게 됐다. 사유의 폭도 깊고 넓어졌다. 저축을 좋아하던 그녀에겐 더 많이 저축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통장과 별개로 저금통으로 돈 모으는 걸 좋아해요. 제 저금통엔 가고 싶은 여행지가 적혀 있거든요. 처음엔 ‘유럽’이었는데 열 명 중 열이 다 웃었죠. 그리고 저는 유럽에 갔어요. 학교에서 보내줘서 가긴 했지만 어찌됐든 갔어요(웃음). 두 번째 저금통 이름이 ‘일본’인데 거기도 다녀왔고요. 이제는 꿈을 적어 넣는데 이번 저금통엔 ‘경찰’이라고 적혀 있어요. 언제부터 모으기 시작했는지 날짜도 적어놓고요. 그냥 항상 되새긴다는 그 자체가 좋아요.”

소소하게 ‘오늘은 뭐 하고 싶네. 이번 달엔 뭐 해야지’ 생각하며 살고 싶은 다은 씨와 인우 씨. 아름다운재단 대학생 교육비 지원 사업은 그들이 바랐던 소소한 일상을 쥐어주었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순간이라고, 조금 더 용기 내어 꿈을 품으라고 독려했다. 안정을 거머쥐기 위해 불안하던 그들에게 미지의 설렘을 선사했다. 보여주기 위한 행사, 기울어진 관계의 온정이 아니라 자신을 덜 생각하며 손 내밀어 준 타인이라서 가능했다. 다은 씨와 인우 씨가 대학생 교육비 지원 사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유다.

 

“삶의 패턴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어요. 1주일에 한 번은 지원사업을 생각했어요. 앞으로 남은 대학생활 동안 어떤 성적장학금을 받든 다른 무슨 특별한 장학금을 받든 간에 오래 기억날 거예요.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으니까요(박인우).”

“저는 솔직히 돈은 별로 못 드려도 재능은 드릴 수 있으니까 언제든지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취직해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제가 가진 뭔가를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요. 세워둔 목표가 많은데 하나가 더 생겼어요(김다은).”

글 우승연ㅣ사진 임다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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