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활동가 재충전 지원사업 해외연수부문’(이하 해외연수)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역량강화 및 해외 네트워킹을 위한 해외기관 및 현장 탐방, 국제회의 참석 등을 지원합니다. 2017년 7개 팀(개인 1팀, 그룹 6팀) 17명 활동가가 미국, 유럽, 일본 등의 시민사회운동 사례를 경험하고 돌아왔습니다. <발바닥인권행동>의 김정하, 여준민, 조아라님은 장애인 탈시설 및 지원체계 전환을 이행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정부기관 및 민간단체를 방문했습니다. 활동가들은 미국의 제도와 사례를 분석하고, 한국에서의 적용 가능성을 검토했습니다

미국의 탈시설 전환 지원체계를 배우다 ‘자유로운 삶, 시설 밖으로’

자유를 존중하고 안락한 물질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경우에조차도 시설은 쓸모없음과 따분함과 자존감 결핍이라는 형태로 시설생활인을 주변화한다. 인간의 활동은 사회적 협동의 환경 속에서 이루어진다. 시설화는 어떤 경우에도 장애인에게 인정과 상호작용의 환경 속에서 자신의 역량을 행사할 수 있는 문화적 조건들과 실천적 조건들, 제도화된 조건들을 박탈하고 유용한 사회생활 참여에서 추방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변화야 말로 가장 위험한 억압 형태이며 사회적 절멸이다.”- Iris Marion Young <차이의 정치와 정의>(2017)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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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연수를 떠나기 전 인천공항에서 찰칵! (사진 제공 : 발바닥인권행동)

“이번 미국 연수는 정말 갈 수 있을까?”
“무조건 가야지”
“진짜? 이렇게 뭘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는데…”

2017년 9월 16일 인천공항에서 만나는 전날까지 저희 활동가들이 나눈 대화입니다. 물론 짐을 꾸리면서는 “아, 가긴 가는구나” 했었죠. 계획하지 않은 인권위 조사활동과 부족한 재정을 채울 방도가 없어 빚을 내야 하나, 하는 현실적인 상황 역시 발목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2007년 일본, 2008년 미국 일리노이주, 2010년 영국을 끝으로 7년간 해외연수를 가보지 못했으니, 어떻게든 새로 활동에 결합한 활동가들을 위해서라도, 재교육을 위해서라도 선진국의 사례 경험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최근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장애인복지공약으로 ‘탈시설-지역사회 환경 구축’을 제시했습니다. 아직 그 실체를 확인할 길 없지만 정부가 못한다면, 안한다면, 우리가 준비를 해야지요. 서울시가 1차 탈시설 계획, 추진을 마무리하고, 2차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시점에서,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을 기준으로 정책 이행사항을 강도 높게 모니터하고 권고하겠다고 하니 객관적 상황은 그리 나쁜 것 같지 않습니다. 박능후 복건복지부 장관도 탈시설위원회 설치를 약속했으니까요. 그렇다면, 장애인들이 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살아간다면, 어떤 지원체계와 시스템이 있어야 할까요? 어떤 제도적인 변화가 필요할까요?

그동안 신체장애를 가진 분들이 탈시설할 때는 일단 돈과 집과 활동보조인만 있으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탈시설 하는 발달장애인 수가 증가하고, 시설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이 증가하면서 이 기본조건 외에 함께 삶을 살 수 있는 지원체계의 공고함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습니다. 발달장애인법 제정으로 발달장애인센터가 만들어지고, P&A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해 장애인권리옹호기관이 지역마다 설치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발달장애인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요? 삶의 질을 평가, 분석하는 틀과 시도 자체가 없기도 했지만, 여전히 활동보조시간은 적고, 낮에는 또 다른 시설로 전락한 주간보호시설이나 단기보호시설을 전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시설에는 아직도 수만 명의 장애인들이 하루하루 의미 없는 시간 보내기를 하며 구조적 억압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노동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하루 8시간 주 5일을 근무해도 5-15만원밖에 받을 수 없는 보호작업장 시스템은 발달장애인의 노동력 착취를 ‘어쩔 수 없음’으로 바라보는 저급하고 반인권적인 우리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회는 안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설’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우리가 언제까지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거나 부모님이 돌아가실 경우, “시설 밖에 대안이 없다”는 말을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할까요?

<발바닥인권행동>은 “시설이 없으면 장애인을 시설로 보내지 않을 것이다. 태초에 시설은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현존하는 시설을 모두 폐쇄해야 한다는 다소 과격한 주장을 해왔지만, 이는 우리 한국 사회가 시설을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견고한 ‘시설사회’이기 때문에 근본부터 생각해보자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구체적 설명으로 들어가면, 저희는 늘 ‘정책과 예산의 방향 전환’을 이야기해왔습니다.

시설 폐쇄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건축물을 제거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시설 폐쇄를 통해 가난하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 가족이 없는 사람들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편하고 안전하게 삶을 누릴 수 있는 지역사회 서비스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하는 게 바로 우리 목표이자 꿈입니다. 마을에서 안전하고 품위있게 살아가는 게 ‘꿈’입니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인정받는 구성원으로서 관계맺음을 지향합니다.

하지만 지역사회 서비스 지원체계가 구축되지 않으면 이 꿈은 악몽이 될 수 있습니다. 몇 해 전 한국을 방문한 미국 장애인 운동가 캐시 픽커 테릴의 말입니다. 이는 유럽연합의 탈시설 추진과정에서도 분명히 염두에 두어야 하는 과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적절한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의 무조건적인 시설 폐쇄는 탈시설 추진과정에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요.

우리는 그러던 중 미국의 ‘펜허스트 판결’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1970년대 미국에서 최초로 시설 폐쇄 및 거주인들에 대한 탈시설 지원을 이끌어낸 판결입니다. 3,500명의 사람들이 시설에 격리되어 사는 삶은 부당하며, 지역사회에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리며 살아야하며, 지역사회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지원서비스를 만드는 책임은 정부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그 판결로 인해 펜허스트에 살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집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린 궁금했습니다. 우리나라 최대의 수용시설 꽃동네만큼 대규모 시설인 펜허스트가 어떻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는지…

우리는 미국에서 한국에서 주목할 만한 주거서비스 제공기관과 지역센터, 대학연구기관 방문, 미국의 P&A시스템을 보고 왔습니다. 그와 동시에 이젠 미국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기존의 격리중심적인 거주시설과 보호작업장도 보았습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이제 거주시설뿐만 아니라 보호작업장 또한 장애인을 격리수용한다는 이유로 없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지역사회에 장애인이 단순히 ‘포함’되는게 아니라 진정으로 ‘통합’을 이룰 수 있도록 끊임없는 연구와 시도가 이뤄집니다.

제도에 사람을 맞추는 게 아니라 개인에게 최적화된 환경으로 1:1 스텝이 지원되며, 서비스 제한선을 두지 않고 지원하는 원칙이 존재합니다. 이는 당사자가 지역사회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필요한 토대입니다. 장애등급별로 나누어 획일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지원 원칙이었습니다. 그리고 낯선 우리를 ‘탈시설’이란 고리만으로 성심성의껏 환대해준 사람들은 소중한 동지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곳에서의 경험은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줍니다. 힘든 여건 속에서도 우리의 신념과 의지를 다시 확인하고 되새기며, 구체적인 탈시설-지역사회 지원체계를 만드는 법적 근거와 시스템, 이것을 추동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지 공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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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발바닥인권행동

“배워서 남주자!” 아니, “배워서 나누자!”

이제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는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더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이 내는 세금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 인프라를 만드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인 것 같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기존의 시설 체계를 더욱 공고히 유지하려는 기득권 세력의 저항, 장애인 인권감수성이 낮은 공무원들, 안주하려는 안일한 태도, 기존 시설세력들과의 관계, 법을 만드는 사람들의 무지, 돈이 되는 연구만 하려는 학자와 전문가들의 변화가 시급하고요. 시설 노동자들의 일자리 전환, 개인맞춤형 상담과 지원체계 구축, 관련 법과 제도의 변화, 시설 해체 모형 만들기, 시설의 기능전환,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등 수많은 과제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번 연수로 머리와 가슴을 “또 한 번 가보자”라는 마음을 충만히 채울 수 있었습니다. 2018년도 힘차게 달려보겠습니다.

<특별한 만남: 키셔 웰렌 UCLA 타전센터 자문위원>

“사람이 사는데 누구든지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나요?”

나는 키셔 웰렌이고, 지적장애인입니다. 여러분에게 제가 하고 있는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먼저 저의 과거에 대해서, 그리고 자기권익옹호를 주장하는 사람으로서 무엇이 중요한지 이야기하겠습니다. UCLA 타전센터는 자기권익옹호를 주장하는 사람이 왜 필요한지 강조합니다.

나는 1995년부터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스스로 공과금을 지불하고 처리하고 있습니다. 슈퍼에서 음식을 살 때도 내가 다 하는데,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에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어딘가에 갈 때 버스를 많이 타는데, 그래서 LA지역의 버스길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크라멘트(캘리포니아 주의 수도)도 주정부의 발달장애인협의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비행기도 타고 갑니다.

나에게는 연인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데 누구든지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나요? 이름은 에드워드입니다. 2001년부터 연애하고 있습니다. 친구가 몇 명 있는데 대부분이 같이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에이전시에서 독립생활을 위한 서비스를 받고 있습니다. 돈을 쓰는 것에 대해서 도움을 받습니다. 사회성을 키우거나 친구를 사귀는 등 대인관계에서도 도움을 받습니다. 그리고 영양식을 조리할 수 있는 방법,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습니다. 비디오게임을 하는 곳에 갈 때 도와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베쓰(키셔의 코디네이터)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당사자 권익옹호활동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나는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사자 권익옹호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문제를 접하게 됩니다. 그중 하나는 고용의 문제입니다. 지적장애인은 상당히 고용되기 어렵고, 고용주는 장애에 대한 이해가 낮습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의 고용문제는 나아지고 있습니다. 아까 말한 프로젝트를 통해 고용문제가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당사자로서 문제가 되는 것은, 지역센터를 통해서 내가 원하는 서비스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서 요구하면 발달장애인들의 상황이 더 나아지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자기권익옹호활동에 대해서 열정적입니다. 우리들이 힘을 합칠 때 사회는 더 나아지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운동이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법이 있었는데 이해가 안 되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현재 소속된 단체에 이 문제를 가져가서 토론한 것이 내가 활동을 시작하게 된 동기입니다. 단체는 장애인의 사회적으로 통합될 수 있는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대한 폭행을 예방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 이 분야에서 중점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폭행을 당하면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충격을 받기 때문에 폭행을 예방하기 위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폭행예방팀이 어떻게 하면 예방할 수 있는지 비디오 자료를 만들어 배포하고 있고, 장애인에 대한 범죄예방이나 형법에 대한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나는 10년 전부터 지역사회와 타전센터와의 연결망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타전센터의 스텝이 되기 전에는 지역센터에서 자원활동을 했는데, 타전센터에서 5개년 계획을 세울 때 자원활동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2012년에 자원활동을 하다가 올리비아에게 타전센터에 취직이 될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올리비아가 어서 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기 스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타전센터의 스텝으로서의 연락을 취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타전센터의 자문위원이 무엇인가? 그것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캘리포니아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발달장애인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논의하는 자리에 자문위원으로서 참여합니다. 타전센터가 일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에서 투입을 받아야 하는데, 내가 연락망으로서 그 역할을 많이 합니다. 또한 캘리포니아의 자기권익옹호단체들을 네트워킹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네트워크의 약어는 SSAN). 캘리포니아의 자기권익옹호단체들의 목표는 첫 번째가 고용(연방법에 ‘고용이 우선이다’라는 내용이 있음. 그것을 실천하는 것), 두 번째는 자기결정권을 증진시키는 일을 합니다. SSAN이 발행하는 인터넷 뉴스레터가 있는데 이를 통해 자기권익옹호활동을 알려나가고 있습니다.

몇 가지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지역사회의 완전 통합을 위해서 발달장애인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발달장애인이 원하는 것이나 지역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나 똑같습니다. 혼자 살거나 룸메이트와 살거나 독립적으로 살 수 있어야 하고, 가족, 연인, 친구들이 있어야 합니다. 낮에는 직장에 가거나 주간활동을 하거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하고, 휴식시간에는 혼자 또는 친구와 보내거나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연인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만약 임신을 했다면 그 선택권은 나에게 있어야 합니다. 종교적이거나 그 외의 것으로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글ㅣ사진 발바닥인권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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