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활동가 재충전 지원사업 해외연수부문’(이하 해외연수)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역량강화 및 해외 네트워킹을 위한 해외기관 및 현장 탐방, 국제회의 참석 등을 지원합니다. 2017년 7개팀(개인 1팀, 그룹 6팀) 17명 활동가가 미국, 유럽, 일본 등의 시민사회운동 사례를 경험하고 돌아왔습니다. <녹색연합>의 윤소영, 서재철, 배제선님은 일본 야쿠시마 세계자연유산, 대마도 난대림, 카라츠 해안림을 방문했습니다. 활동가들은 원시 그대로 보전된 일본의 숲 탐방을 통해 백두대간과 우리 숲 보전 활동의 방향성을 모색했습니다. |
삼나무 수만 그루가 수백 년째 자태를 뽐내는 곳
압도적이었다. 하늘을 향해 뻗은 거목의 위세는 대단했다. 원시림 진입로에 들어서자마자 풍광에 압도되었다. 규슈에서 남서쪽으로 약 60㎞ 떨어진 섬 야쿠시마의 시라타니운스이 협곡은 원시림의 경연장이다. 뿌리부터 줄기까지 이끼로 치장한 채 하늘을 향해 뻗은 키 큰 삼나무들이 자랑하듯 원시성을 맘껏 뽐낸다. 삼나무 수만 그루가 수백 년간 말없이 숲을 지켜왔다.
가고시마현의 야쿠시마에 가는 길은 꽤 까다롭다. 규슈의 후쿠오카나 가고시마에서 비행기를 타거나 가고시마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은 시라타니운스이 협곡에 들어서는 순간 말끔히 사라진다. 협곡에는 온통 초록빛으로 도배한 듯 이끼가 그득했다. 그 사이사이로 하늘을 향해 줄기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솟아난 삼나무가 펼쳐져 있다. 이 협곡에는 삼나무 원시림이 즐비하다. 나나혼스기(七本衫)라는 안내판에 ‘수고 18m, 흉고주위(가슴높이 둘레) 8.3m, 표고 800m’라고 쓰여 있었다. 삼나무 밑동의 지름이 2m를 넘는다. 우람함 그 자체였다. 시라타니운스이 협곡은 일본의 대표적 애니메이션인 <원령공주>의 배경이 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1993년 세계자연유산에 등재
이곳에 이끼가 그득한 건 습기가 많기 때문이다. 야쿠시마의 연간 강수량은 1만㎜ 정도. 일본에서 강수량이 가장 많은 곳으로 꼽힌다. 수량이 풍부하다 보니 숲속 곳곳엔 사시사철 크고 작은 계곡물이 흐른다. 비가 내리는 사이사이에 햇살도 강렬하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섬 특유의 강렬한 햇볕이 광합성을 돕는다. 이처럼 충분한 수분 공급과 따뜻한 기온이 한데 맞물려 삼나무가 자라기에 더없이 좋은 최적의 조건을 이룬다. 이곳이 삼나무 원시림을 유지하게 된 배경이다.
시라타니운스이 산장을 지나 능선 지대에 이르도록 원시림은 이어졌다. 동북아시아에서 탐방로로 개방된 원시림 지대 중 아마도 가장 긴 코스가 아닐까 싶었다. 바위전망대에 이르니 시라타니운스이 협곡과 아라카와 협곡 등이 한눈에 들어왔다. 해발 1000m 근처엔 산책로 겸 관찰로인 야쿠스기랜드가 잘 정비돼 있었다. 한두 시간 가볍게 걸으면서 원시림을 살펴볼 수 있도록 제한적으로 길을 낸 것이다. 이곳에 이르니 삼나무숲 사이사이로 솔송나무와 일본전나무도 즐비했다. 일본전나무는 우리나라의 전나무보다는 분비나무와 더 닮아 보였다.
야쿠시마는 1993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지역이라 탐방로 5곳만 개방돼 있다. 하지만 어느 코스를 택하더라도 풍광은 남다르다. 특히 탐방로 곳곳에서 야쿠시마 사슴과 원숭이를 여러 차례 만날 수 있었다. 원시림에 사는 동물답게 사람을 피하기는커녕 자연스레 유유히 제 할 일만 하며 노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온 관광객도 많았다. 저마다 원시림을 체험하고 싶다는 욕구가 컸다. 일본에서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은 모두 4곳. 야쿠시마를 포함해 도호쿠지방의 아키타와 아오모리의 시라카미산지, 홋카이도 시레토코 등 3곳이 원시림을 근간으로 세계자연유산에 선정됐다. 온전히 보존된 원시림을 직접 체험하고 나니 새삼 부러움도 커졌다.
백두대간 일부에 흔적만 남아
한반도의 원시림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일제는 군사적·산업적 목적으로 조선의 원시림을 마구 베어 갔다. 조선총독부의 지원 아래 곳곳에서 체계적인 벌목이 이뤄졌다. 원시림의 주종은 일본이 삼나무라면 우린 소나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금강소나무 원시림은 모두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 태백산 지역인 경북 봉화군 소천면 고선리 구마동계곡에서는 1930년 전후부터 일제의 임업주재소가 설치돼 금강소나무 원시림을 베어 갔다. 강원도 고성군 수동면 고성재부터 동해안 수계에 해당하는 골짜기에서도 아름드리 원시림 금강소나무가 무참하게 베어져 나갔다. 당시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5만분의 1 축척의 조선전도 고성지도를 보면 ‘경성제대 농과대학 연수림’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일대를 대학 연습림으로 지정해 체계적으로 벌목에 나선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의 실체가 수탈이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식민지가 끝난 뒤에도 전쟁을 거치며 벌목은 이어졌다.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일대의 5000㏊가 넘는 숲에는 궤도를 설치해 체계적으로 금강소나무를 베어서 인근 동해안의 원덕항까지 반출했다. 삼척 풍곡리 금강소나무 원시림 벌목은 1959년 9월 사라호 태풍으로 벌목용 궤도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됐다. 당시 벌목용 궤도의 노반은 지금도 계곡에 5㎞ 이상 남아 있다. 또한 궤도로 사용된 레일도 계곡 곳곳에 박혀 있던 것을 몇 년 전 동부지방산림청과 풍곡리 주민들이 수거해 따로 보관하고 있다.
현재 한반도에서 원시림은 북한의 백두산보호구에 일부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마고원에서도 대규모 벌목이 이뤄졌다는 증언이 있다. 남한에는 원시림의 일부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설악산국립공원의 내설악 지역인 인제군 북면 용대리 일대가 그 예다. 이 일대 전나무숲과 신갈나무숲을 비롯해 오대산국립공원의 상원사에서 북대사로 이어지는 골짜기에 전나무숲과 잎갈나무숲, 그리고 경북 울진 금강송면 소광리와 북면 두천리의 금강소나무숲, 지리산국립공원의 함양 마천면 추성리 일대인 천왕봉-중봉과 칠선계곡 등의 침엽수림 정도가 어렴풋하게 흔적이 남아 원시림의 잔상을 추정할 수 있을 정도다. 이 지역의 거목들은 대부분 10㏊ 이하로 분포하고 있어 학술적으로 원시림이라 규정하기는 어렵다.
원시림은 태곳적부터 이어져 오며 인간의 간섭을 받지 않고 보전된 숲을 말한다. 현재 남한에 이런 숲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지금의 숲을 잘 보전해 나간다면 100년 후에는 한반도 자연의 원형을 되살려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울러 남북관계가 개선돼 북한의 백두산보호구역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하는 사업을 남북이 함께 추진하는 일도 염두에 둘 만하다. 이 생각이 일본 원시림 탐방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글ㅣ사진 서재철(녹색연합 자연생태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