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활동가 재충전 지원사업 휴식부문’(이하 휴식)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새로운 영감과 신선한 활력을 얻고, 지속가능한 활동기반을 만들기 위한 휴식을 지원합니다. 2017년 10개팀(개인 9팀, 그룹 1팀) 13명의 활동가가 비움과 채움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녹색연합>의 황인철 님은 4대강사업, 설악산케이블카 등의 현장에서 우리나라의 생태와 환경을 지키기 위해 일하고 있는 8년차 활동가입니다. 활동가는 약 800km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스스로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
준비
7년 만의 긴 휴식이었다. 2017년 꼬박 1년간, 안식년이라는 시간을 얻었다. 내가 일하는 녹색연합은 활동가에게 일반 직장인들이 꿈꾸기 힘든 이런 기회를 제공한다. 안식년 동안 무엇을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산티아고 순례였다. 그런데 만만치 않은 비용이 문제였다. 고맙게도, 그리고 다행히도,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이제 준비해서 떠날 일만 남았다. 애초 산티아고를 가고 싶어 한 친구와 동행하려고 했지만, 그 친구의 직장문제가 꼬이는 바람에 나 혼자 순례를 준비하게 되었다. 챙겨야할 것도 살 것도 알아야 할 것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 긴 준비 시간을 거쳐 가을이 시작되던 9월 5일 유럽행 비행기에 올랐다.
출발
산티아고 순례길은 스페인 국경 근처의 프랑스 작은 소도시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갈 때는 보통 프랑스 파리행 비행기를 탄 뒤 기차로 생장까지 가게 된다. 파리 도착 후 일주일 정도 프랑스 여행을 한 뒤, 9월 11일 순례길의 출발지 생장으로 이동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일명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이하 까미노)는 스페인 북동부에 위치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이하 산티아고)를 향해 가는 길을 가리킨다. 중세시대 이래 1천여 년 동안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순례지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산티아고에 열두 사도 가운데 한 명인 성 야고보의 유해가 안치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유럽 각지에서 산티아고로 가는 다양한 순례길이 있는데, 특히 스페인-프랑스 국경지대의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하는 약 800km의 ‘프랑스 길(Camino Frances)’이 가장 유명한 루트다. 20세기에 유럽연합이 까미노를 유럽의 문화유적으로 지정하고,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이 길을 찾게 되었다. 과거처럼 종교적 이유만이 아니라 문화에 대한 관심, 정신적 치유, 휴양 등 다양한 이유와 목적을 가진 순례자들이 까미노를 걷고 있다. 내가 이 길을 걷고 싶었던 이유는 신앙의 동기뿐만 아니라 내 삶을 좀 더 단순하고 가볍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안에 쌓여있던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들을 비워내는데 ‘걷기’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비워내고 덜어낸 자리에 무엇이 채워질지 궁금했다.
순례
순례의 출발지 생장피에드포르에 도착한 사람들은 순례자 사무소에서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고, 숙소와 루트 안내를 받는다. 그리고 다음날 해발 1,500미터에 달하는 피레네 산맥을 넘으며 순례를 시작한다. 피레네 산맥을 넘는 길은 까미노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면서 동시에 가장 힘든 구간이기도 하다. 산을 넘으면서 국경을 지나게 된다.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틀에 걸쳐 피레네 구간을 넘었다. 처음부터 무리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이제 산맥을 넘어 도착한 론세스바예스에서부터 스페인 북부 지방을 가로지르며, 팜플로냐, 부르고스, 레온 등의 대도시와 5개의 지자체, 100여 개의 시골 마을을 지나 스페인 북서부에 위치한 산티아고를 향해 걸어가게 된다. 매일 20-30km 정도의 거리를 걸었다. 순례 코스를 따라 곳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마을에 있는 바(bar)에서 휴식을 취하고, 숙소와 식당에서 숙박과 끼니를 해결했다. 하룻밤 1만원 안팎의 저렴한 숙박시설(알베르게)은 순례자들만 이용할 수 있다. 이런 저렴한 숙소 덕분에 한 달 넘는 장기간의 순례가 가능하다. 다만 오래된 숙박시설에서는 종종 순례자들을 괴롭히는 빈대가 나타나기도 했다. 스페인의 음식들은 훌륭했다. 풀코스에 와인까지 포함한 ‘순례자 메뉴’가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되었다. 가끔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숙소식당에서 직접 요리를 해 먹기도 했다.
자연
9-10월, 스페인의 날씨는 아름답다. 순례 출발할 때와 도착할 때 며칠간 내린 약간의 비를 제외하면, 나머지 기간에는 화창한 가을 날씨를 만끽했다. 순례길의 자연경관은 숲, 강, 농경지, 도시, 메세타(사막과 같은 고원지대) 등 다채롭다. 아침 숙소를 나설 때 서늘한 공기 위로 보이던 새벽별, 동이 터올 때 흙길을 비추던 아침 햇볕, 그리고 손을 뻗으면 파랗게 물들 것 같은 한낮의 코발트색 하늘을 볼 때 새삼스레 가슴이 설레기도 했고, 그런 나 자신이 낯설기도 했다.
순례자
까미노의 순례자들은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되는 곳이다. 서로 다른 언어 탓에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다들 여러 가지 사연을 갖고 이곳을 찾는다. 어떻게 까미노에 오게 됐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1년간의 안식년을 갖게 되어 왔다”라고 하면 다들 놀랐다. 복지천국이라는 북유럽에서 온 친구들도 부러워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일 뿐, 많은 한국의 직장인들이 1년에 1주일 휴가를 갖기도 힘들다”는 이야기에 이들은 다시 한 번 놀랐다. 까미노에서는 전 세계에서 온 순례자들을 만날 수 있다. 한국인 순례자도 매우 많다. 외국의 순례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왜 이렇게 많은 한국인이 까미노를 찾는가?”였다. 다음으로 많이 들었던 질문은 북한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둘러싸고 북한과 미국 간 험악한 긴장이 조성된 탓이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복잡한 정치적 관계와 기나긴 갈등의 역사는 답을 하는 쪽도 답을 듣는 쪽도 쉽지 않았다. 마침 소설가 한강의 글이 <뉴욕타임스> 칼럼에 실린 탓에 그 글을 보여주며 답을 대신하기도 했다.
약함
800km나 되는 길을 걷다 보면 한계에 부딪힐 때가 온다. 몸으로도, 정신으로도… ‘내가 지금 왜 이 길을 고생하며 걷고 있나’라는 의문이 든다는 순례자들이 많았다. 다행히도 나에겐 이런 정신적인 회의감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순례를 시작한 지 3주가 지나갈 즈음, 몸이 고장 났다. 오른쪽 다리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한걸음만 내디뎌도 정강이가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아스토르가라는 도시에 도착하여 약국을 찾아갔지만, 처방받은 약도 소용이 없었다. 병원을 가야했다. 구글번역기의 도움을 받아가며 진료를 마친 후, 의사는 “다리 힘줄에 고장이 났는데, 걷지 말고 쉬어야 한다”고 했다. 순례를 잠시 멈추고 3박 4일 동안 한 도시에서 쉬어야만 했다. 함께 걷던 순례자들이 내 앞을 지나쳐 갔다. 한국 사회의 속도 경쟁에 익숙해진 탓인지, 순례길에서 다른 사람에 비해 뒤쳐진다는 사실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나는 환경운동가로서 산과 강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직업이기 때문에 걷는 것에 자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자만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걸을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감사해야할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약함을 대면하면, 이를 통해 잊고 지낸 소중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매튜 폭스라는 학자는 “고통은 잃은 것에 비례한다.”고 말했다. 아픈 만큼 소중하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 사회의 고통과 아픔은 그 사회에서 무엇이 소중하고 중요한지 가르쳐준다. 망가진 자연환경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쳐준다. 어디가 아픈지 잘 살펴야, 무엇이 중요한지도 알 수 있다. 아픈 것을 아픔으로, 나약함을 나약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통각점이 필요하다. 개인에게도 사회에도…
단순함
순례를 하면서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나의 삶이 단순해진다는 것이었다. 순례자의 하루는 단순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걷고, 먹고, 쉬고, 씻고, 잔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걷는다. 하루에 6-8시간씩 걷는 동안 몸과 마음이 단순하고 가벼워짐을 느꼈다. 단순함이 나 자신과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게 했다. 별과 바람과 햇살과 하늘이 새삼스럽게 느껴지고, 걸을 수 있는 건강한 다리가 소중하고 고맙게 느껴진 건 순례를 하는 동안 단순해진 마음 덕분인 것 같다. 순례 중에 읽었던 책 속에 이런 구절이 있다.
“보행은 일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 그저 존재하는 것과 뭔가를 해내는 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다.” – 리베카 솔닛 <걷기의 인문학>
“마음속에서 일이 일어나려면 몸의 움직임과 눈의 볼거리가 필요하다. 걷는 일이 모호한 일이면서 동시에 무한히 풍부한 일인 것은 그 때문이다. 보행은 수단인 동시에 목적이며, 여행인 동시에 목적지다.” – 리베카 솔닛 <걷기의 인문학>
지금, 길 위에
순례를 시작한지 38일이 지난 10월 19일,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들이 교차했다. 순례길은 인생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순례는 삶의 비유다. 흐린 때가 있으면 해가 비치는 때가 있다. 오를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다. 힘이 날 때가 있으면 아플 때가 있다. 목적지는 ‘아직’ 멀리 있지만, 길은 ‘이미’ 목적지에 맞닿아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서 걷는 한 걸음이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 여기서 나의 배낭을 짊어진 채 온몸으로 정직하게 내딛는 한 걸음 밖에 없다. 머나먼 스페인에서의 순례는 어찌 보면 일상의 길을 걷는 법을 배우는 학교일지 모른다. 일상의 삶이라는 길을 잘 걷는 방법도 결국 ‘지금 현재의 한걸음’에 달려있다. 사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환경운동을 하며 우리가 다다르고 싶은 세상이 너무 멀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서 좌절하고 힘들어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은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지점’이 아니라, 끝없이 우리 길을 안내하는 ‘화살표’가 아닐까? 누군가가 현실 안에서 이상향에 도달했다고, 지상낙원을 이루었다고 주장할 때, 그것들이 결국 오만과 어리석음이 낳은 허구로 밝혀지는 경우를 역사 속에서 자주 목격하지 않았는가. ‘올바른 화살표’를 따라 걷고 있는지 살피면서, ‘현재의 발걸음’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길 위에 서 있는 사람의 최선일 것 같다. 순례길에 들렸던 어느 작은 성당에서 노수녀님이 ‘순례자의 행복’이라는 글을 나누어주셨다. 거기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행복하여라,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목적지를 향해 함께 걸어가는 것에 마음을 두는 순례자여.
행복하여라, 길을 명상할 때, 그 길이 수많은 이름들과 여명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하는 순례자여.
행복하여라. 진정한 길은 그것이 끝났을 때 비로소 시작한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례자여.”
순례가 끝나는 자리에, 다시 길이 놓여있다.
글ㅣ사진 황인철(녹색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