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일(17세), 윤진하(17세), 이동현(17세), 하종범(16세), 김다솜(15세), 한이상(15세), 오은영(15세). 이상 7명은 중등무지개학교에서 여행살림반을 꾸려가는 친구들이다.

무지개학교에 2년 동안 세계여행을 다녀오신 선생님이 계세요. 그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여행지 중 가장 낯선 나라가 스리랑카였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 여행지가 아니라는 게 일단 좋았어요. 남들 다 가는 곳 말고 덜 알려진 곳을 가고 싶었거든요.” (고영일)

어디 붙어있는 나라인지, 추운지 더운지도 모르고 선택했다. 그 낯설음이 따지고 잴 것 없는 끌림의 결정적 이유다. 가장 베일에 싸인 나라를 여행지로 결정한 후 차차 알아가기 시작했다. 알수록 흥미로웠다. 스리랑카의 옛 국명이 ‘실론’임을, 모 브랜드 홍차음료 이름으로 알았던 실론티가 ‘스리랑카산 홍차’를 뜻하는 고유명사임을 알게 된 아이들은 저도 모르게 맺어온 스리랑카와의 작은 인연이 반가웠다. 때 묻지 않은 자연과 빛나는 유적과 홍차의 나라, 마르코 폴로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 극찬한 인도양의 섬나라, 신밧드가 발견한 보물섬 세렌디브도 스리랑카였으니. 16박 18일에 걸쳐 전개된 이 여행담, 혹은 모험담의 코드명은 다음과 같다. ‘다함께 차차차!’

네 명의 고등학생

다함께 차차차! 스리랑카의 추억을 소환해 보는 시간

스리랑카 여행 사진을 보면 고산지대 차밭 풍경이 정말 근사하거든요. 유명한 홍차 산지에서 차도 한 잔 마시고, 홍차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과정을 보는 것도 재밌겠다 싶었어요.” (윤진하)

다섯 개의 도시를 골랐다. 스리랑카의 경제중심지 콜롬보와 문화중심지 캔디, 홍차 산지 누와라엘리야와 하푸탈레, 남부의 아름다운 해변도시 갈레. 홍차 테마기행을 품고 가되,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를 두루 즐기고자 선택한 루트다.

콜롬보_ 스리랑카의 첫 인연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모인 시각은 새벽 5시. 그로부터 16시간 후 스리랑카 콜롬보 공항에 도착했다. 8시간 비행(인천⟶상해 2시간, 상해→콜롬보 6시간)에 환승 대기만 4시간. 온종일 이동과 지루한 기다림 끝에 도착한 낯선 도시엔 추적추적 비가 내렸고, 비오는 밤에도 대기는 후끈했다. 숙소까진 택시로 이동했다. 운 좋게도 한국어에 능통한 택시기사님을 만난 덕분에 긴장을 풀고 편안한 마음으로 숙소를 찾아갈 수 있었다.

한국에서 10년간 일하셨대요. 한국어를 되게 잘하시고 엄청 친절하셨어요. 스리랑카에 도착해 처음 만난 스리랑카 사람과 한국어로 이야기하니 신기했어요.” (오은영)

택시기사아저씨와 대화하고 있는 학생들

스리랑카와의 첫 인연 택시기사 아저씨

캔디_ 물갈이 환자 대거 발생!

캔디 여정은 첫날부터 먹구름이 잔뜩 꼈다. 도착한 날 저녁부터 동현이 앓기 시작하더니, 은영과 다솜, 영일까지 잇달아 앓아눕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동현이 구토와 설사로 전형적인 물갈이 증세를 보였다면, 은영과 다솜, 영일은 구토에 고열까지 겹친 상황. 뎅기열 증상과 똑같다며 아이들이 무시무시한 농담을 주고받는 동안, 진영아 선생님(무지개학교 담임교사)만 애가 바짝 탔다. 지사제와 해열제를 먹고 숙소에 누워있던 아이들은 하루를 꼬박 앓고 나서야 아팠던 순서대로 회복했다. 가장 상태가 심각했던 다솜(39.8도까지 열이 올랐다)이 병원까지 가긴 했으나, 의사가 처방해준 해열제를 먹고 금세 열이 내렸다.

새벽부터 열이 나기 시작하고 속도 안 좋아서 캔디 시내 구경을 포기하고 게스트하우스에 남아 내내 잤어요. 자다 깨다 무한 반복하다 열이 너무 심해져 선생님이랑 병원에 갔는데, 잘생긴 의사선생님이 되게 친절했어요. 닭죽 같은 맛이 나는 중국음식점 치킨수프를 사먹고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고 잤는데, 다음날부터 괜찮아지더라고요.” (김다솜)

기차를 탄 소년

고난(?)이 시작되는 것을 모르고 그저 해맑았던 캔디로 향하는 기차 안

물갈이를 독하게 앓았던 친구들이 모두 회복한 후 7명이 완전체로 방문한 시기리야 록. 밀림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는 이 바위요새를 건설한 사람은 5세기 싱할라 왕조의 카사파 왕으로, 부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 후 후환을 걱정해, 높이 200m의 바위산에 왕궁을 건설했다고 전해진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로 스리랑카를 손꼽는 근거 중 하나가 이 시기리야 록인 만큼 아이들에겐 기대해 마지않던 일정이었다. 하지만 길 위에선 기대를 배반하는 결과들이 숱했고, 시기리야 록도 그 중 하나가 됐다. 바위산을 오르는데 비가 오고, 덥고,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으니. ‘세계 8대 불가사의’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의 타이틀도 소용없었다.

바위요새 시리기야록

아름다운 바위요새 시리기야록

누와라엘리야_ 깊은 산속 차밭마을에서 보낸 5박 6일

몸은 고됐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찻길’의 명성은 헛되지 않았다. 느릿한 기차는 산자락에 펼쳐진 끝도 없이 푸른 차밭을 지나 풍경 속으로 스며들듯 달렸다. 해발고도 1830m의 고지대에 자리 잡은 누와라엘리야는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홍차 생산지 중 하나다. 대규모 차밭과 함께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유명 홍차기업들이 몰려있어, 홍차 테마기행의 명소로 손꼽힌다. 차차차의 여정에도 누와라엘리야는 중요한 도시였다. 방문했던 5개 도시 중 가장 오래 머문 것(5박 6일)도 그 때문. 홍차의 고향에서 아이들이 꿈꿨던 여행은 때 묻지 않은 자연과 순박한 사람들 속에서 잠시나마 ‘살아보는 것’이었다. 하여, 호튼플레인즈 국립공원 트래킹과 차밭 및 티 팩토리 견학 외엔 특별한 일정을 잡지 않고 단순한 일상을 즐겼다. 마을을 산책하고 재래시장에서 매일 장을 보는, 그런 소소한 여정이었다.

기차와 차창 풍경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찻길 누와라엘리야행 기차

누와라엘리야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택시기사는 스리랑카의 첫날, 콜롬보 공항에서 만난 택시기사처럼 좋은 인연이 됐다. 산티푸라 마을에 있는 자신의 집을 통째로 아이들의 숙소로 내준 것. 엄밀히 말하자면 민박업을 겸하는 택시기사가 살뜰한 영업을 펼친 셈이지만, 아이들은 보다 저렴한 가격에 산속 차밭마을에 자리한 민가에 묵게 된 걸 행운으로 여겼다. 집 한 채를 빌린 덕분에 매일 아침과 저녁을 지어 먹으며, ‘일상적인 여행’이 가능해진 까닭이다. 길 위에서 만난 좋은 인연은 그처럼 좋은 길을 열어주었다.

산티푸라 마을 아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 참 좋았어요. 우리가 특별히 뭘 해준 것도 없는데, 우릴 너무나 반기고 좋아해줘서 함께 즐거웠어요. 매일 홍차를 마신 것도 좋았어요. 고지대 숙소에선 추워서 마시고, 티 팩토리 견학 가서 마시고, 카페 가서 마시고, 하루에 한잔 이상 마신 것 같아요.” (하종범)

차 잎을 따는 스리랑카인

차 잎을 따는 스리랑카인

하푸탈레_ 구름 위의 휴식

스리랑카 중부 산간마을 하푸탈레는 마을 전체가 차밭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하푸탈레 차밭의 뷰포인트는 립톤싯(Lipton Seat)이라 불리는 언덕이다. 립톤 경(영국의 유명 차 브랜드 Lipton의 설립자)이 차밭을 감상하며 앉았던 자리라는데, 구름 위에서 바라보는 차밭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걸어도 걸어도 립톤싯은 보이지 않고 차밭만 계속 이어져 힘들었는데, 그렇게 2시간 정도 올라가 립톤싯에 도착하니 경치가 정말 멋있었어요. 립톤싯 매점에서 로띠와 홍차, 밀크티를 주문해 먹었는데, 구름 위에서 홍차를 마시니 되게 분위기 있었어요. (한이상)”

맆톤경이 차를 즐겼다는 립톤싯(Lipton Seat)

맆톤경이 차를 즐겼다는 립톤싯(Lipton Seat)

네 번째 도시 하푸탈레에선 멤버들의 컨디션이 가장 좋았다. 캔디에선 물갈이로, 누와라엘리야에선 감기로 고생했던 아이들도 모두 회복해, 모처럼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이틀을 묵는 동안 립톤싯 트래킹(차밭 산책이라 만만히 여겼으나 생각보다 힘든 트래킹이었다) 외엔 특별한 일정이 없었다. 아담한 마을을 산책하고, 예쁜 카페에 들어가 차를 마시고, 차밭 사이를 거닐며 소박한 휴식을 즐겼다. 하푸탈레를 떠나는 날 아침, 짐을 꾸리는 아이들 사이에선 ‘이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하루 더 묵을 걸 그랬다’는 아쉬움의 목소리들이 한동안 이어졌다.

스리랑카 현지 풍경

하푸탈레 거리 풍경

갈레_ 찬란하게 빛나는 섬의 진면목

하푸탈레의 힐링 포인트가 구름 위의 휴식이었다면, 갈레의 힐링 포인트는 에메랄드빛 바다였다. 스리랑카는 ‘찬란하게 빛나는 섬’을 뜻하는 말. 스리랑카의 거의 모든 해안이 세계적인 휴양지라지만, 콜롬보에서 남쪽 끝 갈레까지의 남서해안은 첫 손에 꼽는 휴양지다. 고산지대 차밭마을 여정이 계속되는 가운데 스리랑카가 인도양의 섬나라임을 잊을 뻔 했던 아이들은, 갈레에서 보낸 3일 동안 바다가 주는 기쁨을 실컷 누렸다.

악어를 보여주겠노라 홀려놓고 막상 체험이 시작되자 악어는 물 밑에 잠들어 볼 수 없다고 변명하는 ‘사기’스런 보트투어에 실망하다가도, 신나는 파도타기와 맛있는 참치 바비큐에 마음을 풀었으니. 휴양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즐거움과 언짢음을 두루 겪은 갈레에서의 3일은, 결론적으론 꽤 만족스러운 휴식의 시간이었다.

보트를 타는 건 재밌었지만, 악어를 못 본 게 억울했어요. 보트투어를 모집하던 아저씨는 처음부터 악어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로 우리를 꼬셨거든요. 그런데 막상 체험 당일엔 악어가 물 밑에서 자는 시간이라 못 본다는 거예요. 이건 사기다! 싶었지만, 아저씨가 점심으로 제공한 참치바비큐는 진짜 맛있었어요.” (이동현)

바닷가 풍경

찬란하게 빛나는 섬의 진면목을 보여준 갈레

수미상관, 길 위의 좋은 인연

스리랑카에 도착한 첫날, 공항에서 만났던 택시기사님과 콜롬보역에서 다시 만났어요. 전화를 걸어 공항까지 데려다주실 수 있는지 물었더니 흔쾌히 달려오시더라고요. 다시 뵈니 반가웠어요. 2주 동안 스리랑카를 여행하며 겪었던 일들을 아저씨와 한국어로 이야기하며 공항까지 갔어요.” (이동현)

자정을 넘겨 중국 쿤밍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쿤밍에서 칭다오로, 칭다오에서 인천공항으로, 환승을 두 번이나 거친 귀국길은 16박 18일의 여정 중 마지막 하루를 거의 꽉 채우고 마무리됐다. 21일 새벽 12시 45분에 콜롬보공항을 떠난 아이들이 집에 도착한 시각은 자정 무렵. 그 오밤중에도 다솜이는 된장찌개를 뚝딱 비우고, 은영이는 떡볶이를 먹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꽤 긴 시간 집을 떠나있는 동안, 가족과 일상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은 항상 구체적인 음식 냄새에 실려 오곤 했다. 된장찌개와 떡볶이와 김치에 대한 선명한 갈증은, 내 방 침대와 엄마, 아빠에 대한 그리움에 다름 아니었다.

16박 18일간 동고동락을 함께 했던 ‘다함께 차차차!’ 팀

16박 18일간 동고동락을 함께 했던 ‘다함께 차차차!’ 팀

 

글 고우정ㅣ 사진 현일수 & ‘다함께 차차차’ 팀

청소년 자발적 여행활동 지원사업이란? 아름다운재단이 진행하는 청소년 자발적 여행활동지원사업 ‘ 길위의 희망찾기’ 는 14세~19세 청소년에게 ‘스스로 기획하고 실천하는 여행 기회, 그리고 그를 통한 성장’을 지원합니다. 매년 15개 팀을 선정하여 여행활동 프로그램을 지원하며, 공정여행사 트래블러스맵과 함께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댓글 정책보기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