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의 절대 뿌리를 찾아서
한건희(15세/아지트스콜레 2기), 한태희(16세/아지트스콜레 2기), 김용규(16세/아지트스콜레 1~2기), 장민서(17세/아지트스콜레 1~2기), 채윤기(18세/아지트스콜레 3기), 곽영광(19세/아지트스콜레 3기). 이상 중2부터 고3까지 6명의 남학생들로만 구성된 백두원정대는 안산에 거주하는 십대 청소년이란 공통점 외에 아지트스콜레란 연결고리로 엮여 있다. 아지트스콜레는 경기도 안산시에 위치한 비영리단체 기부이펙트에서 운영하는 방과 후 대안학교다. 총 4개월 과정으로 운영되며, 입학여행으로 백두대간 등반에 도전한다. 백두원정대 6명 역시 기수마다 다르긴 하나 설악산․소백산․지리산 중 한 곳 이상을 종주한 친구들이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가장 크고 긴 산줄기를 부르는 옛 이름, 백두대간. 아지트스콜레 활동을 통해 백두대간의 남쪽 구간을 오르며 산행 이력을 쌓아나간 아이들은 하나의 산줄기로 연결되어 있건만 38선에 가로막혀 닿을 수 없는 그곳, 백두대간의 북쪽 줄기가 궁금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시작점인 백두산에 대한 관심이 컸다.
2017년 봄, 기부이펙트 김희범 대표는 아지트스콜레 페이스북에 ‘청소년 자발적 여행활동 지원사업’ 공지를 올린다. 이 흥미로운 여행 공모전 소식은 아지트스콜레 1기부터 당시 활동 중이던 3기 청소년을 대상으로 퍼져나갔고, 여섯 명의 소년이 이에 도전 의사를 밝힌다. 여행지는 당연히 백두산. 백두대간의 절대 뿌리를 찾아가는 백두원정대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6개월 전부터 시작된 여행
‘길 위의 희망 찾기’ 공모전을 접하고 이에 도전하기로 결심한 3월은 지원신청서 작성에 매진했다. 이 여행을 왜 가고 싶은지, 여행을 통해 내가 꿈꾸는 바는 무엇인지, 6명 모두 깨알 같은 글씨로 솔직한 제 목소리를 담아냈다. 서류심사 통과 후 4월엔 프레젠테이션과 질의응답으로 이루어진 면접을 치렀다. 발표자론 용규․민서․윤기가 나섰는데, 발랄한 용규와 꼼꼼한 민서, 엉뚱한 윤기의 캐릭터를 십분 발휘해 면접까지 좋은 성적을 거두며 지원대상 팀으로 선발됐다.
8월 초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모여 여행준비 활동을 이어갔다. 백두산 탐방로는 물론 이도백하, 연길, 도문, 용정 등 방문지 관련 정보를 조사하고, 숙박과 교통편을 탐색했다. 일단 팀을 2개 조로 나눠 숙박 예약과 맛집 정보 취합은 건희․태희․민서가, 교통편 예약은 용규․윤기․영광이가 맡았다. 항공권, 기차표, 호텔 예약은 이를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는 중국여행 전문 사이트 씨트립(www.ctrip.co.kr)을 통해 해결했다. 최저가를 찾되 전체 일정과 동선을 고려해야 하는 터라 골머리를 좀 앓았으나, 숙소의 경우 후기까지 하나하나 확인하며 5박 6일 여정을 촘촘히 설계했다.
중국어 기초회화 수업도 두 차례 진행했다. 그러나 여행지에서 사용해본 말은 ‘처소(화장실)’와 ‘피아오량(아름답다)’ 두 마디 뿐이었는데, 정작 화장실이 다급한 순간엔 ‘처소’도 통하지 않아(아무리 ‘처소’를 외쳐도 현지인들이 못 알아듣더란다) 마임 수준의 몸짓언어를 사용했다. 단, ‘피아오량’의 마법은 언제 어디서나 100% 통했다. 예쁜 누나만 보면 “피아오량!” 하고 인사하는 용규에게 얼마나 많은 누나들이 웃음으로 답해주었던지.
선양역 키재기 굴욕의 전말
2017년 8월 7일. 드디어 6개월에 걸쳐 준비했던 여행이 시작됐다. 첫날은 오직 연길 도착을 목표로 ‘비행기-버스-기차-택시’를 차례로 갈아타며 길 위에서 하루를 다 보냈다. 인천공항에서 선양공항까진 두 시간이 채 안 되는 짧은 비행이었지만, 선양에서 연길까진 고속열차를 타고도 네 시간을 달렸다.
선양역에선 중국의 독특한 교통요금 체계로 인한 작은 사건이 있었다. 어린이용 티켓을 소지한 건희와 태희를 쓱 훑어본 역무원이 갑자기 이들을 데려간 것이다. 말도 통하지 않는 무뚝뚝한 역무원에게 ‘연행’된 두 소년은 기차역 한쪽 벽면에 그려진 눈금자에 키를 재게 됐고, 150cm가 넘는다는 이유로 성인요금에 준하는 추가요금을 내야만 했다. 성인과 어린이를 가름하는 기준이 나이가 아닌 키, ‘150cm’였던 것.
역무원 아저씨들이 알아들을 수도 없는 중국어로 뭐라 뭐라 하면서 건희랑 태희를 데려가는데, 좀 무서웠어요. 우리가 일부러 어린이용 티켓을 끊은 것도 아니고, 씨트립에서 기차표를 예매할 때 만 14세 미만이라 자동적으로 할인 받은 건데, 갑자기 키를 재고 성인요금을 내라 하니 황당하더라고요. 저는 운 좋게 안 걸렸어요. 역무원 아저씨들이 지나갈 땐 작아 보이려고 몸을 잔뜩 웅크리고 앉아있었거든요.” (김용규)
여름 일몰처럼 긴 여운을 남긴 5박 6일
둘째 날과 셋째 날은 백두산 아랫마을인 이도백하에 숙소를 잡고 각각 북파코스와 서파코스로 백두산 등정에 나섰다. 백두산 관광코스는 천지까지 버스와 지프차를 타고 올라가는 까닭에, 트래킹의 묘미는 덜한 게 사실이다. 그나마 정상까지 오르는 마지막 구간에 1442개의 계단이 배치된 서파코스가 아니었다면 조금 서운할 뻔도 했다.
북파는 정상까지 차를 타고 올라가서 그런지 가슴 벅찬 느낌이 덜했는데, 서파는 차를 타고 가다가도 마지막 구간은 걸어 올라가기 때문에 정상에서 느끼는 뿌듯함이 더 컸던 것 같아요. (한건희)
북파코스에 장백폭포가 있다면 서파코스엔 야생화군락과 금강대협곡이 있었다. 백두산은 남한의 산과는 또 다른 절경을 쉴 틈 없이 쏟아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풍광은 역시 천지였다.
맑은 천지를 보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북파코스와 서파코스 두 번 다 맑은 천지를 봤으니 정말 행운이 따랐던 것 같아요. 사진으로만 봤던 천지를 제 눈으로 직접 보니, 말이 안 나올 정도로 감동이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산을 중국을 통해 오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더라고요. 백두대간 줄기를 따라 도보로 금강산을 거쳐 백두산까지 오를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곽영광)
넷째 날과 다섯째 날은 중국 내 조선족 자치주의 중심지인 연길을 거점 삼아 도문과 용정을 둘러보기로 했다. 연길에서 버스로 약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한 도문 국경지역에선 강폭이 불과 50m도 되지 않는 두만강 너머로 북한을 건너다 볼 수 있다. 북한과 중국을 잇는 도문대교 위론 국경선이 지나간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국경선 바로 앞까지 밟아볼 수 있는데, 오후 5시 30분까지만 입장가능하다. 이를 몰랐던 백두원정대는 마감시각보다 10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국경선까지 다리를 건너보려던 로망을 이루지 못했다. 택시를 5분만 일찍 탔더라면, 거기서 헤매지만 않았더라면… 무수한 ‘-더라면’의 후회 속에, 시간 체크는 여행의 기본임을 새삼 깨달았다고.
도문대교를 건너지 못한 게 아쉽긴 하지만, 두만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북한을 봤던 게 기억에 남아요. 정말 가깝더라고요. 찡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 그리고 공항처럼 큰 기차역에, 고속열차를 타고도 엄청 오래 이동하는 걸 보며 ‘대륙의 클래스’를 실감했어요.” (채윤기)
마지막 날은 일제치하 민족운동의 요람인 용정을 찾았다. 윤동주 시인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를 배출한 용정중학교와 윤동주 시인의 생가 순례를 마치고 다시 연길로 돌아와 여행의 마지막 밤을 맞았다. 여행에서 식도락은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최후의 만찬을 위한 스페셜 메뉴론 양꼬치를 선택했다. 양고기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식재료를 꼬치에 꿰어 구워먹는 집이었는데, 식사시간만 되면 ‘백두미식회’가 되어 별점을 매기는 백두원정대가 만장일치로 별 다섯 개를 준 집이다. 5박 6일 동안 별 다섯 개를 받은 식당은 양꼬치집을 포함해 두 곳에 불과한데, 또 다른 별 다섯개 식당은 한국음식이 그리워 찾아간 ‘장닭한마리집’이었다.
5박 6일은 짧은 여름밤처럼 훌쩍 지나갔다. 허나 백두산 천지에서 두만강까지, 친구들과 함께한 길 위의 이야기들은 꼬리가 긴 여름 일몰처럼 오래오래 그리움으로 남을 것이다.
이 멤버, 아주 칭찬해!
함께 하면 든든한 가방 요정_ 한태희
백두원정대의 가방 요정. 배고플 땐 과자가 나오고, 목마를 땐 생수가 나오고, 추울 땐 바람막이점퍼가 나오는 요술가방을 메고 다닌다. 내 짐, 네 짐 가리지 않고 살뜰히 챙겨 넣은 태희의 요술가방 덕분에 춥고 배고픈 순간을 잘 넘길 수 있었다고.
대륙의 소통왕_ 곽영광
백두원정대의 맏형. 현지인들과 가장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아 ‘소통왕’이란 별명을 얻었다. 화장실을 찾을 땐 몹시 다급한 상태를 표현하는 몸짓언어로, 식당을 찾을 땐 주변에 조선족을 먼저 찾아 인근의 맛집을 물어보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길을 잃었을 때나 화장실이 급해 버스를 멈춰야 했을 때에도, 길 위에서, 버스 안에서 수시로 “여기, 조선족 계세요?”를 당당히 외쳤다. 조선족 자치주로만 다닌 까닭에 어딜 가나 조선족을 만날 수 있었다고.
민서의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_ 장민서
백두원정대의 기자. 언제 어디서나 노트와 펜을 꺼내 기록하는 민서에게 멤버들은 ‘기록하는 민서쿤’이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택시비와 이동구간별 소요시간, 음식 메뉴와 가격, 별점까지 꼼꼼히 기록한 민서 덕분에 여행에서 돌아와 포토북을 제작할 때 한결 수월했다. 뿔뿔이 흩어진 기억들이 민서의 노트 속에 촘촘히 박혀 있었던 것. 길 위에서 민서가 노트를 펼칠 때면 제 등짝을 책상처럼 내어주며 원활한 메모를 돕던 친구들의 협조도 아주 칭찬해야 할 요소.
글 고우정 ㅣ 사진_ 임다윤 & 백두원정대
청소년 자발적 여행활동 지원사업이란? 아름다운재단이 진행하는 청소년 자발적 여행활동지원사업 ‘ 길위의 희망찾기’ 는 14세~19세 청소년에게 ‘스스로 기획하고 실천하는 여행 기회, 그리고 그를 통한 성장’을 지원합니다. 매년 15개 팀을 선정하여 여행활동 프로그램을 지원하며, 공정여행사 트래블러스맵과 함께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