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속, 청년 기부자들이 뜬다
-88만원 세대를 위해 매월 8,800원씩 기부하는 기부자
-경제 위기에서도 공짜 점심, 택시비 모아 기부하는 ‘알뜰 기부자족’ 등장
-아름다운재단 1%기부자 중 2,30대 연령 비율 가장 높아
‘청년 기부자들’이 뜬다.
경제 불황 여파로 ‘청년 실업자’가 100만 명을 넘어선 현실에서도 청년들의 기부는 여전히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아름다운재단에서 펴낸 통계에 따르면, 지난 해 1%기부자 중 2,30대 기부자 비율이 64%로 다른 연령대를 재치고 1위로 나타났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최근 청년 기부자들의 사례도 다양하고 참신해졌다.
고려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이해황(25) 씨는 얼마 전 재단에 100여만 원을 쾌척했다. 최근 펴낸 대입 수험서가 베스트셀러가 된 탓이다. 그가 기부한 100여만 원은 곧 출간될 수험서의 계약금 전액이다. 과외를 하다가 “좀 더 많은 학생들이 함께 공부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수험서를 썼고 그 수험서가 몇 주 만에 수험서 1위를 차지하게 됐다. “나 역시 가정형편 때문에 중, 고등학교 시절에 주변에서 도움을 많이 얻었다”는 이 씨는 3년 전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운 고등학생 수십 명에게 남몰래 수험서를 지원해오기도 했다.
경제적 불황을 대변하는 ‘알뜰 기부족’도 있다. 회사원 박성규(36) 씨는 공짜 점심을 먹을 때마다 남는 점심값을 기부하는 알뜰 기부족의 대표주자다. 회사에서 팀 회식을 하거나 내기 당구에서 이겨 공짜 점심을 먹게 될 때마다 돈을 모아 기부를 한다. 사이버대학에서 틈틈이 사회복지를 공부하며 ‘나눔’의 마음을 키워온 것도 알뜰한 기부를 하게 된 중요한 동기다.
또 다른 알뜰 기부족인 박은진(27) 씨는 택시비를 아껴 기부하고 있다. 약속시간에 늦을 때마다 타게 되는 택시비를 모아서 기부를 하는 것이다. 박 씨의 비법은 ‘약속 잘 지키기’다. “조금만 부지런 떨면 택시비 몇 천원을 아낄 수 있어요. 그 택시비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니 정말 좋지 않나요”라는 박 씨는 매달 정기기부를 신청했다.
좀 더 뜻 깊은 기부를 시작한 기부자도 있다. 부산에 사는 박소영(가명? 30)씨. 박 씨는 매월 8,800원의 정기기부를 하고 있다. 그가 굳이 8,800원이라는 금액을 기부하는 건 이유가 있다. 바로 88만원 세대를 위한 기부기 때문이다. 현재 비정규직 직종에서 일하는 박 씨 역시 88만원 세대다. 박 씨는 “그 누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위한 기부라 생각하며 시작했다”며 “크건 작건 매월 일정한 금액을 떼어내 기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년들의 기부 바람은 대학가에서도 불고 있다.
광주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학생들은 얼마 전 신나는 바자회를 열었다. 아름다운재단에 기부를 하기 위해서다. <영어와 문화>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이 주축이 되고 영어영문학과 교수님들까지 합세한 이 바자회에서는 다양한 생활용품부터 생과일주스까지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바자회였다. 이 바자회를 통해 남은 수익금 140여만 원. 영문과 학생들은 수익금 전액을 아름다운재단의 ‘책날개를 단 아시아기금’에 기부했다.
서울대학교 학생들 역시 나눔의 행렬에 동참했다. 지난 5월에 열린 축제 기간 동안 ‘아름다운재단과 함께하는 빛 한줄기 희망모금’을 진행했다. 축제기간동안 지속가능하고 친환경적인 학교를 만들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일상에서 가능한 에너지 절약 서약’에 1명이 서명을 할 때마다 1,000원씩 기부를 했다. 이 모금을 통해 재단에 전달된 금액은 621,000원이다.
경북대학교에서도 소박한 기부가 있었다. <마이크로 프로세스 설계실험> 과목을 듣는 수강생 전원이 한 학기 동안 짬짬이 모은 금액 20여만 원을 재단에 기부했다. 아름다운재단에 이미 공간기부 등으로 나눔에 참여한 적이 있는 강양구 교수의 나눔에 대한 이야기가 큰 시발점이 됐다고 한다.
미국의 직거래 자문회사 Grizzard Communications Group이 지난 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노년층이 어려운 경제 상황 때문에 기부를 줄일 계획인데 반해, 젊은 층은 오히려 기부를 늘릴 계획이었다. 단 한번이라도 기부를 한 경험이 있는 기부자 5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25~34세의 참여자들은 어려운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기부를 늘리겠다”고 조사된 것이다.
아름다운재단의 기부자 비율에서도 지난 해 1%기부자 중 2,30대 기부자가 60%를 넘었다. 수년간 2,30대 기부자 비율이 1위를 차지했지만, 경제 불황이 극심했던 지난해에도 순위는 변하지 않았다.
경제 불황으로 인한 ‘청년 실업자’들이 사회의 문제로 대두됐다.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 역경을 딛고 나눔을 실천하는 청년들이 희망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