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잇는, 나눔산책>은 아름다운재단 기부자님과 함께 나눔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는 자리입니다. 2018년의 두 번째 나눔산책 !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공유했던 시간을 소개합니다. |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리사회>의 저자 김민섭 작가가 아름다운재단을 찾았다. 그는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있다”는 말로 <마음을 잇는, 나눔산책> 두 번째 시간을 열었다. 아름다운재단으로 연결된 기부자들이 옥인동 아름다운 집에 모여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누구지?’ 질문에서 시작된 변화
“우리 혼인 신고를 못 할 것 같아.” 3년 전, 결혼을 앞둔 김민섭 작가가 아내에게 건넨 말이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그가 직장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지방대 시간 강사’였기 때문이다. 혼인신고를 하면 그는 부모님의 ‘피부양자’ 자격을 상실해 매월 10만 원에 가까운 의료보험료를 내야 했다. 당시 그가 시간 강사로 벌 수 있는 돈은 한 달에 80만 원이었다. 그조차 방학에는 받을 수 없었다. 그제야 주변에 결혼하고도 혼인 신고를 한 ‘시간 강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처음으로 의문을 품었다. 내가 사랑하는 ‘대학’이란 조직은 과연 상식적인 조직일까? 이곳에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대학이란 곳에서 무엇으로 존재하는 걸까? 내가 노동자가 맞나? 사회인이 맞나? 저는 10년 동안 대학에서 계속 노동을 해온 사람인데 거기에 답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써야 하는 논문은 안 쓰고 글을 한 편 써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어요.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나는 누구지?’에 답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나는 누구지?에 대한 답으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 쓴 글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한두 시간 만에 8만 명이 읽고,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다. “내 얘기를 해줘서 고마워.”라는 다른 시간 강사의 댓글과 함께 “우리 얘기를 해줘서 고마워.”라는 회사원의 댓글이 그의 눈에 띄었다. 이 문제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써서 올렸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혼인신고를 더 미룰 수가 없었다. 그는 ‘4대 보험 가능’이라는 구인공고를 보고 간 ‘맥도날드’에서 일을 시작했다. 맥도날드는 대학 보다는 좀 더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공간이었다.
“제가 맥도날드 점장님한테 우리 가족의 의료보험료를 낼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니까 점장이 ‘저희는 그냥 법을 지키는 거예요.’라고 하는 거예요. 저는 그때 정말 놀랐어요. 나는 대학에서 무엇으로 존재하는 걸까? 어째서 지식을 만드는 대학이라는 공간이 패스트푸드점보다 사람을 위하지 않은 걸까?”
나에게서 사회로, 확장된 물음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이 세상에 나온 뒤 김민섭 작가의 삶은 한 번 더 바뀐다. 익명으로 냈지만, 그의 책이 화제가 되면서 함께 일하던 이들이 찾아온다.
“책이 나온 뒤 동료들이 말했어요. ‘너는 그 글을 당장 중단하고, 이 공간을 모욕한 것에 대해 교수님한테 사죄해야 해,’ 그 말을 한 사람들은 다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었죠. 결국 대학을 나왔어요. 하지만 저는 그 사람들을 원망하진 않았어요. 개인보다는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대학을 나온 후 그는 대학 바깥에 더 큰 강의실과 연구실이 있음을 깨닫았다. 대학에만 있었던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는 글을 쓰기로 작심하고 ‘스터디 카페’를 다녔다. 하지만 글이 써지지 않았다. ‘노동하고 타인과 관계 맺는 사람의 글이 힘이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다시 선택의 기로에서 그는 ‘대리기사’를 선택했다. ‘누군가의 욕망을 대신 수행하는 대리인으로 살았던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리기사는 주체로 존재하지 못하고, 몸・언어 그리고 사유가 통제됩니다. ‘대답-동의-칭찬’ 이 세 가지를 꼭 해드려야 하는데, 처음에는 싫지만 시간 지날수록 편안해집니다.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맞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이 말만 하면 됐습니다. 과연 대리운전을 할 때 뿐일까요? 차 안에서만? 대학에서는? 일상에서는? 어느날 ‘이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다.’라는 문장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바로 집으로 갔어요. 그때부터 <대리사회>란 책을 썼어요.
당신이 잘 되면 좋겠습니다.
그의 물음표는 점점 확장됐다. ‘나는 누구인가?’(<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에서 시작된 질문은 내가 살았던 동네(<아무튼 망원동>)로, 그리고 사회(<대리사회>)로 확장되어갔다. 삶의 태도도 바뀌었다. ‘93년생 김민섭 씨 후쿠오카 보내기 프로젝트’도 그렇게 시작됐다. 작년 겨울 그는 예매해둔 여행 티켓을 취소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티켓을 취소하는 대신 다른 김민섭에게 그 티켓을 선물하는 방법을 택했다.
페이스북에 ‘김민섭을 찾습니다’는 글을 올렸다. 우여곡절 끝에 영문 이름 표기가 같은 ‘김민섭’ 씨를 찾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교통 패스나 숙박권 등을 아무 조건 없이 주겠다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심지어 93년생 김민섭씨의 여행과 졸업전시를 응원하겠다는 펀딩까지 이어졌다.
“제가 대학 나왔을 때 도와주겠다는 분이 정말 많았어요. 집필 공간을 제공해주고, 밥을 사주고. 그분들한테 왜 도와주냐고 물어보니까 “그냥 당신이 잘되면 좋겠어요.”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제가 들었던 말을 다른 김민섭 씨한테 돌려주게 됐어요. 이 평범한 대학생이 잘되면 다 잘 될 것 같았거든요.
이 말을 들은 93년생 김민섭 씨는 자신도 2003년에 태어난 김민섭 씨를 여행 보내주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아무 조건 없는 도움의 손길들을 보며, 우리가 모두 연결이 되어 있구나. 만나서 얼굴을 보고, 손을 맞잡지 않아도 그것으로 우리 사회가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나눔은 ‘나에게 물음표를 던지는 일’
김민섭 작가의 생생한 이야기는 함께 한 기부자들의 마음에 뜨거운 울림을 주었다. “작은 실천이 크게는 사회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니 더 감동적이었다.”, “좀 더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겠다.”등의 작은 다짐과 함께 마음에 긴 여운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김민섭 작가는 ‘나눔이란?’ 질문에 그답게 물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저에게 나눔은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에요. 누군가를 동정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는 게 아니라 온전히 그 사람 처지가 되어서 사유해보는 거잖아요. 그의 처지가 되어 생각하는 건 결국 나에게 물음표 던지는 일이 되지 않을까요?”
나에게서 시작되는 물음표는 주변으로 확장되어 이 사회와 이 시대로 나아갈 수 있다.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는 우리 모두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변화를 이끌어간다.
글 우민정ㅣ사진 김권일ㅣ영상 정희은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