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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웃 – 아시아의 친구들 <화성외국인보호소 정기방문과 모니터링>-
일산의 한 주택가 단지를 돌다 보면 눈에 띄는 따뜻한 느낌의 나무 간판이 보입니다. 출입문도 나무로 되어 있어 동네와 조금은 다른 느낌을 줍니다. 이곳의 이름은 “아시아의 친구들”. 한국에 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주민들을 돕는 곳입니다. 이 단체의 1인 활동가이신 김대권 국장님을 만나보았습니다.
Q. 아시아의 친구들이라는 이름부터 친근합니다. 단체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2002년에 박노자, 차미경 선생님이 공동으로 설립하였습니다. 차미경 선생님이 ‘미안해요 베트남’ 캠페인이 끝나고 우연한 기회에 박노자 선생님과 이곳에 러시아 이주 노동자들에게 한글교육을 하면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곳에 가구공장이 많아 이주노동자들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가구공장이 많이 망하기도 하고, 파주나 김포쪽으로 이사를 가 이주노동자 분들도 함께 이주하였습니다만, 그 당시에는 실무자들이 10여명 필요할 정도로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현재는 1인 활동가 한 명만 일하고 있는데요, 저희는 정부나 지자체 보조금을 전혀 받지 않고 있어 재정적인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유지하기 위해 원하지 않는 돈을 받느니, 재정을 줄여서라도 필요한 일을 하고자 하여 사업도 줄이고, 인력도 줄였습니다. 2006년 이후로 다른 단체들이 저희와 같은 교육사업을 많이 하고 있어 우리가 이런 활동을 하는 것이 맞나, 여러 단체들이 중복적으로 하고 있는 상담, 한국어 교육이 어떤 의미가 있나 근본적인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다른 종교 단체나 기관에서 하면 더 잘할 수도 있는데, 우리가 처음 했다고 해서 계속 유지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습니다.
Q. 활동이 많이 축소된 것 같은데요. 그럼, 그때와 현재의 활동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그때는 이주민 존재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 자체가 없었을 때였습니다. 그들에 대한 대우도 형편 없었습니다. 이들에게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을 목적으로 임금체불, 산재, 한국어교육, 시민인식개선 활동 등을 했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그러한 것들이 해결되었는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단체에서 우후죽순으로 많이 하는 한국어 교육을 할 의미는 없었으며, 재정도 부족한데, 임금체불 등의 여러 일을 지원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2007년 여수외국인 보호소 화재 참사 이후 외국인 보호소에 관심을 갖고 있던 중 이 부분이 한국사회에 취약점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정부 보조금 단체는 이 문제에 대해 접근하기 어렵고, 한국사회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기 어려운 이슈였습니다. 이에 지원을 계속 하였고, 이주민 중에 취약한 지점에 대한 활동을 계속 유지 중에 있습니다. 현재는 외국인 보호소 정기 방문 및 체류 자격 없는 분들의 건강보험인 “희망의 친구들” 지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고등학생 인권교육, 난민 관련 토론회도 하고요.
Q. 재단이 지원하는 사업이 화성외국인보호소 정기 방문인데요.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구체적으로 말씀 주실 수 있을까요?
외국인 보호소에 장기 구금되어 있는 외국인을 격주로 만나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외국인 보호소에는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끼리 앉아 하루종일 티비보며 갇혀 있습니다. 이분들에게 필요한 것을 지원하기도 하고, 말동무가 되어 드리기도 합니다. 1:1 케어로 지속적으로 한사람이 한 외국인을 담당하는 시스템입니다. 외국인도 여러사람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방문하는 인원은 5명 ~ 6명 정도 고정되어 있고 1인당 2명 ~ 3명의 외국인을 만나서 돕고 있습니다.
Q. 일반인이 생각하기에 보호소라는 개념은 숙박도 되고 하는 곳인데, 구금, 갇혀 있다고요?
일반적으로 외국인 보호소라고 하면 노숙인 보호소 등을 생각하는데, 보호소라는 것은 사전적인 보호소와 상관이 없습니다. 구금 시설입니다. 교정시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24시간 창살로 가려진 작은 방안에서 생활해야 합니다. 질병이 나도 적절한 치료를 받기가 어렵습니다. 자국 정부도 관심이 없고, 한국 정부도 관심이 없는 분들이 보호소에 있고, 외국인 근로자가 다수입니다. 관광비자, 취업비자로 들어왔다가 체류 기간이 넘어 출입국 관리소 단속에 걸려 보호소에 수감 되는 것입니다. 자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가 자국상황도 있고, 자비로 10일에서 한달내에 출국해야 하는데, 임금을 못받거나, 임대 보증금을 주인이 돌려 주지 않거나, 다친 부분 치료를 더 해야 하면 못 나갑니다. 또한 같이 온 가족들이 한국에 있거나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도 있고요. 난민 신청하신 경우에도 계속 보호소에 남아 난민 인정이 될 때까지 구금 상태에 있게 됩니다.
Q.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구금시설에 갇힌다는 것은 조금 이해가 어렵습니다.
미등록 체류가 범죄는 아닙니다. 누구를 다치게 하거나 피해 준 것이 아니고, 이분들은 행정법 위반, 출입국 관리법이라는 행정법 위반인데 위반에 대하여 구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권위에서 창살 없애는 것을 권고하였고 이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현재 모니터 중이고 가족이 있는 경우 가족실 등을 마련하려 하고 있습니다.
Q. 트럼프 대통령이 했던 불법 체류자 대응과 비슷한데요?
맞습니다. 그것과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불법체류자를 찾아 구금하는데, 구금하는 과정에 폭력이 난무합니다. 때로는 강제 출국시켜 가족과 생이별 시키기도 합니다.
Q.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임금체불 문제를 빨리 해결해 준다든가, 항공비를 준다든지 등의 유인책이 필요한데, 한국은 공포를 조장 합니다. 구금 될 때 하도 많이 맞아 두려움에 떨다 자진출국하신 분도 있고, 보호소 시설이 열악해 임금체불이 되어 있음에도 그냥 나가신 분도 계십니다. 타 지역에 가서 2년 ~ 3년 정도 살다 보면 고향처럼 편해집니다. 그 상황이 되면 그곳이 생활 근거지가 됩니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처음 4년 8개월 체류 하고, 한 번 출국 했다가 다시 4년 8개월 두 번 체류합니다. 이렇게 9년 이상 산 사람들이 어디가 편할까요?
Q. 활동을 하면서 안타까운 사례가 있다면?
4년 8개월 동안 갇혀 계신 분이 있었습니다. 난민 신청자였고, 난민인정을 받기 위해서 기다렸으나 대법원에서 2번이나 패소, 현재 변호사가 하고 있는 것은 인도적 체류 지위라도 달라 요청하고 있습니다. 5년 동안 갇혀 기다린 시간이 아무 의미 없게 되어 버린 것이지요. 그 분은 한국에 들어온지 한 달 만에 잡혔고, 보호소에 들어온 외국인을 통해 한국말을 배우며 난민 신청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중 본국 부모님이 돌아가셨구요. 본국 상황이 좋지 않으니 돌아갈 수도 없고, 한국사회는 보호소가 전부여서 한국 적응도 쉽지 않고… 이 분은 대체 어느 곳에 가야 할 까요?
Q. 아무래도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이 계실 터라… 통역이나 서류 작성 등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네. 어려움이 많습니다. 본인이 한국어 공부를 잘 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통역을 붙여 만나거나 서류 작성을 해야 합니다. 특히 법적인 논쟁이 있을 경우는 매우 중요합니다. 난민 신청 할 때 출입국 관리소에 통역 요청을 하면 통역을 붙여 주기도 합니다. 희귀 언어는 통역사를 찾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아랍어 등은 비싸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출입국 관리소에서 학생 알바를 고용하기도 합니다.
“난 그곳에 돌아가면 죽는다”를 “난 한국에 일하러 왔다” 로 통역하여 난민신청이 안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양한 단체들이 조력을 하지만, 대부분 1차 작업은 본인이 해야 합니다. 단체들이 하는 것은 소송 할 때. 신청이 거부 될 때 거부에 대해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도 몇 개 안되는 단체에 몇 명 안되는 변호사 들이 하고 있어 과부하가 있습니다.
Q. 반면에 보람찬 사례가 있다면?
보호소 1년정도 계셨던 분이 난민 인정을 받았습니다. 나와서 환영 파티를 해 드렸는데, 누구도 한국에서 환영해 줄 사람이 없는데, 파티를 해 줘서 너무 좋아하고, 감사해 했습니다. 보호소에서 스트레스성 병이 들어 한 여름에도 계속 춥고, 손이 떨리고 하더니만, 밖에 나와서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활기가 넘쳤습니다. 이 분은 에디오피아 사람인데, 에디오피아에서 반정부 활동을 하다 남아프리카로가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헌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다른 흑인에 대한 제노포비아가 발생하여 한국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한국에 오자마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받은 여권상의 이름과 실 이름이 달라 위조 여권으로 판정되어 바로 구금되었습니다.
Q. 이주민, 난민 많은 용어가 요즘 뉴스에 많이 나옵니다. 구분이 어떻게 될까요?
이주는 자발적인 이동이라고 할 수 있고, 난민은 비자발적인 이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칼처럼 구분되지 않습니다. 복합적으로 나타나며 혼합되어 있습니다. 보통 난민은 밀항으로 들어온다고 여기는데, 그것은 고정관념입니다. 근로자로 들어왔다가 본국 상황이 나빠져 돌아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면 난민입니다.
Q. 우리는 멀리있는 아프리카 아동을 돕는 것에는 눈물을 흘리며 기부하지만, 제주도에 있는 난민에게는 비난하고 때로는 혐오하기도 합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난민들을 일방적으로 도와줘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멀리 있는 대상은 1 ~ 2만원 주고, 쉽게 도와주었다는 효능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난민은 우리사회에 들어오면 영구적으로 부담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도, 프로이트도 난민이었습니다. 난민들도 그 사회일원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이고, 교육을 받은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이 한국사회에 기여하고, 문화적 다리가 되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자국에 전쟁이 났다면 탈출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며, 돌아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Q. 매우 어려운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일을 하게 된 동기가 있을까요?
한국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있을 때 한국노동운동이 관료화 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헌데,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운동을 보면서 운동의 초심을 보았습니다. 이 분들은 기득권이 없기 때문에 항상 초심입니다. 체류 자격, 불법구금 등의 많은 문제들을 위해 농성하고, 자살을 하는 등 힘겨운 투쟁을 하였습니다. 농성을 하면서 본인들은 혜택을 못 볼 것이라고 뻔히 아는데도 말이지요. 우리가 가더라도, 한국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올텐데,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에 따라 그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기 때문에 노동운동을 한다고…
Q. 한국사회는 이주민 혹은 난민을 바라보는 시선이 상당히 보수적입니다. 이러한 편견을 깰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하더라도 “내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들 것입니다. 거만하게 들리겠지만,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란 누구나 다 결함이 있습니다. 우리사회도 결함이 있습니다. 무균실 같은 완벽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데, 무균실이 사람을 더 약하게 만듭니다. 저항을 키우고, 교류하면서 자라야지 더 튼튼해 지고 강해 집니다. 무균실에서 산다고 안전해 지는 것은 아닙니다. 교류 하면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제주도 예멘 난민 이야기가 연일 뉴스에 나올 때 제 주위사람들도 두려움 느끼며 혐오 발언을 많이 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뭐 그렇게까지 두려움을 느낄까? 하였습니다. 그리고 궁금하였습니다. 아프리카 아동을 돕는 것에는 그렇게 선하면서 왜 가까이에 있는 난민은 싫어할까? 가깝기 때문에 더 크게 보이고, 더 이상하게 보이는 것일까? 고민도 해보고, 각자 생각하는 답도 들었지만, 딱히 이것이다 라고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습니다.
김대권님의 답변에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가 있습니다. ‘이렇게 9년 이상 산 사람들이 어디 가 편할까요?’, ‘이 분은 대체 어느 곳에 가야 할 까요?’ 저도 답이 궁금합니다. 혐오가 아니라, 같이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도 일제 강점기, 6.25 전쟁 시 모두 난민을 택해야만 했던 민족이었으니까요.
글 송혜진 간사 ㅣ사진 권연재 간사
2018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은 시민사회단체 및 시민의 공익활동을 지원합니다. 올해는 총 38개의 단체와 7개의 시민모임이 선정되었습니다. 1년간의 사업수행 기간 중 선정 단체와 모임의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중간방문을 진행하였습니다. 그중 7개 단체와 1개 시민모임을 방문하였고, 8개의 인터뷰 콘텐츠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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