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소 이후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 아동복지시설의 청소년들
아이들이 여행을 직접 기획하고 꾸리는 ‘자발적 여행’이라는 컨셉이 좋았어요. 그 과정에서 ‘자립심’을 키울 수 있을 거 같아서 <길 위의 희망 찾기>를 신청했어요.”
정기인 선생님은 ‘아이들의 자립심을 어떻게 키울지’ 늘 고민이었다. 그가 일하는 <늘사랑아동센터>는 6.25 전쟁 속에서 전쟁고아를 돌보기 위해 1953년에 설립된 아동복지시설이다. 원래 0~6세를 보호하는 영유아시설이었는데, 십 년 전 0~19세 청소년을 보호하는 시설로 바뀌었다. 청소년들을 만나며 새로운 이슈가 생겼다. 바로 아이들의 ‘퇴소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이다.
아동복지시설에 거주하는 청소년들은 만 18세가 되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시설을 떠나야 한다. 그 순간부터 살 집과 일자리를 스스로 구하고, 모든 생활과 생계를 홀로 꾸려나가야 한다. 시설의 보호사들은 “남들보다 빨리 어른이 되길 강요받는” 이 상황이 안타까우면서도, 자립 준비를 돕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요리나 빨래, 전철이나 버스를 혼자 타는 법, 은행 업무 보는 법 등 사소해 보이지만, 배우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래서 여행은 이들에게는 더 특별한 기회다.
이 아이들은 좋든 싫든, 능력이 있든 없든 남들보다 빨리 어른이 되길 강요받아요. 준비가 안 된 채 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상황에서 자립을 준비하는 데 여행이 도움이 많이 돼요. 장소며 계획이며 자기가 직접 알아보고 해야 하는 거잖아요.”
곡성으로 떠난 ‘농촌 활동’
이번 여행을 함께한 멤버는 늘사랑아동센터의 청소년 8명과 선생님 2명이다. 이들 모두 2박 3일 여행은 처음이다. 매번 50명이 넘는 센터 아이들이 함께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늘 당일에 돌아와야 했다. 게다기 이미 짜인 계획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처럼 소규모로 2박 3일이나, 그것도 자신들이 원한 여행을 온 건 처음이다. 놀라운 건, 이들이 선택한 여행이 물놀이장이나 놀이동산처럼 누리는 여행이 아닌, 농(農)을 경험하며 땀 흘리는 여행이라는 것이다.
어디 가고 싶어?’ 했을 때 막상 대답이 잘 안 나오더라고요. 그때 은성이가 ‘시골’, ‘야생’이란 키워드를 말하더라고요. 수진이는 ‘기차 여행’을 하고 싶다고 하고요. 그 접점으로 선택한 곳이 ‘곡성’이었어요.”
농촌 활동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했던 은성이는 올해 열네 살이다. 여행팀 중 가장 막내지만 센터에서는 자치회장을 맡을 만큼 책임감이 강하다. 이번 여행에서도 가장 적극적이었다. “농촌 활동을 하고 싶었던 이유”를 묻자, 까까머리에 까맣게 그을린 피부를 지닌 은성이는 느린 말투로 또박또박 힘 있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한다.
저는 꿈이 요리사에요. 제가 요리할 때 쓰는 재료가 어떻게 나는지 모르니까 농촌에 와서 직접 만져보고 싶었어요. 요즘 TV에 ‘쉐프’들도 많이 나오잖아요. 저도 그 사람들처럼 멋있는 ‘요리사’가 되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이 제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 기분이 좋아요.”
은성이는 이번 여행에서 ‘요리팀’을 맡았다. 아직 도구 다루는 게 서툴러 주방 보조를 맡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은성이는 충분히 진가를 발휘했다. 정기인 선생님은 “은성이가 설거지를 얼마나 꼼꼼하게 했는지 모두 놀랐다”라며,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은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계기”라고 말한다.
‘나 이런 경험도 해봤어’하는 자신감을 키워주는 여행
‘교통팀’인 세하(15)에게도 이번 여행은 새로운 것투성이였다. 기차 예매를 맞았던 세하는 “하마터면 곡성에 오자마자 대전으로 돌아갈 뻔했어요”라며 준비 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웃는다. 다행히 오기 전에 실수를 발견해 기차표를 제대로 예매했다. 덕분에 이제 어딜 가든 기차표 정도는 예매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성경이는 올해 열일곱 살로 센터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 늘사랑아동센터에서는 가장 먼저 퇴소를 경험할 청소년이기도 하다. ‘요리팀’인 그녀는 이번 여행에서 식단 계획부터 장보기, 요리와 뒷정리까지 척척 해냈다. ‘진행팀’인 정민이(15)는 래프팅 예약을 맡았다. 여행의 주는 농촌 체험이었지만, 즐거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 레일 바이크 타기와 래프팅 체험 같은 놀이도 적절히 계획했다.
정기인 선생님의 바람은 이 ‘자발적 여행’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 방학만 되면 바다로, 계곡으로 떠나는 학교 친구들과 달리 센터 아이들에게는 여행의 기회가 많지 않다. 이 아이들에게 이번 여행은 문득문득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자, ‘나 이런 것도 해봤어’하는 자신감이다. 집(센터)을 떠나보는 경험도 소중하다. 센터 안에서는 받는 것에 익숙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뒤로 물러서던 아이들이 여행을 통해 스스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이 신기하다.
시설에서 이전에 했던 프로그램보다는 아이들이 직접 한 부분이 많은 여행이에요. 지연이는 직접 숙소랑 통화하고, 정민이 래프팅 예약도 하고요. 이전과 달리 직접 해본 경험이 자립심을 키우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여행을 계속하기에는 경제적 어려움이 크다. 보육사의 숫자도 턱없이 부족하다. 2교대로 일하며 보육사들이 헌신하고 있지만, 열 명이 넘는 아이들을 한 명의 보육사가 돌보니 소규모 여행은 꿈꾸기 어렵다. 보육사가 늘어나면 아이들 한 명 한 명 더 따뜻하게 돌볼 수 있고, 이런 소규모 여행도 수월하게 떠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그의 생각이다.
막상 와보니 아이들만큼 선생님도 즐겁다. 땀 흘리며 일한 뒤 정자에 앉아 수박을 먹으면 웃을 때는, 나중에 돌아볼 ‘추억의 장면’이 생겼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마음이 든다. 그는 부디 자발적 여행이 이어져 ‘추억의 장면’의 사진첩이 매년 두툼해지길, 그래서 ‘나 이런 경험도 해봤어’하는 아이들의 자신감도 함께 쑥쑥 크길 바란다.
글 우민정ㅣ사진 임다윤
김동찬
요리팀 성경이 누나와 은성이, 교통팀 세하, 진행팀 정민이, 숙소팀 지연이, 아이들이 빛납니다. 2018년 아이들 힘으로 이룬 추억 여행이 사는 동안 문득 떠올라 힘이 될 겁니다. 보이지 않는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신 정기인 선생님 감사합니다.
한덕연
이렇게 좋은 이야기를 소개해 주신 아름다운재단과 이야기 속 아이들과 정기인 선생님, 고맙습니다.
저 아이들이 잘되기 바랍니다. 저 아이들의 오늘과 미래를 응원합니다.
아름다운재단 공식블로그
한덕연님, 아이들의 오늘과 미래를 함께 응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